한국영화 등장하는 실패한 남성 캐릭터의 공통점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최근 한국영화에 여성캐릭터의 비중이 턱없이 부족하고 그 남은 소수도 묘사가 얄팍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이를 지적하는 글들도 많이 나오고 있으니 굳이 이 이야기를 여기서 또 반복할 필요는 없다. 필자가 덧붙일 수 있는 말은 이런 현상이 한국 영화계에서 거의 질병수준이며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완전히 반대방향의 것이다. 왜 요새 한국 상업영화의 남성캐릭터들은 이렇게 매력이 없는 것인가.

매력은 주관적이다. 필자가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에게 매력을 느끼는 관객들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배우 개인의 스타성을 무시하고 한 번 최근 몇 년 동안 만들어진 영화 속 남자 주인공들의 매력을 평가해보라. 비정상적일 정도로 척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영화 속 주인공들이 매력적일 필요는 없다. 부패경찰이 주인공인 <끝까지 간다>와 같은 영화에서 두 주인공은 관객들에게 자기 매력을 호소할 필요는 없다. 자업자득인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긍정적인 인물들인 <소수의견>이나 <극비수사>의 주인공들에게도 캐릭터의 매력은 우선순위 뒤로 밀린다. 재판에 이기고 유괴당한 소녀를 찾는 게 먼저이고 관객들의 감정이입의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이 그 다음이다. 하지만 캐릭터의 매력이 언제나 우선순위의 뒤로 밀리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들 영화들이 의도적으로 남성주인공을 매력없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무뢰한>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영화의 남자주인공인 형사는 사실 그렇게 악질은 아니다. 기만적인 행동을 하지만 거기엔 이유가 있고 동료에 비해 심하게 부패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렇게 선한 인물도 아니고 과거에 그가 한 몇몇 행동은 심하게 불쾌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양심은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런데도 필자가 그의 얼굴을 보면서 한없는 기시감과 지루함을 느꼈던 이유는 뭘까. 설명을 하자면 얼마든지 깊이 팔 수 있는 이 인물이 결국 최근 끝도 없이 접했던 한 그룹에 수렴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자기 죄의식에 도취된 남자이다. 아무리 공들여 인물을 만든다고 해도 비슷비슷한 선배들의 비슷비슷한 행동이 겹쳐 떠오른다면 지칠 수밖에 없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 비슷비슷한 인물들 중 최악은 <우는 남자>의 장동건 캐릭터인데, 멋있으려고 발악을 하는 꼴이 더욱 노골적이라 결과는 더 비참했다.

최근 멋있고 입체적이려다가 실패한 남성 캐릭터들은 대부분 비슷한 단점들을 품고 있다. 결함 속에서 입체적이 되려다가 자아도취에 빠지는 것이다. 가방길이에 따라 김기덕파와 홍상수파로 구분될 수 있을 거 같은데, 결과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원본에서 아슬아슬하게 자기 비판의 위치에 있는 애들이 그런 자기가 너무 멋있어서 허우적거리거나 그냥 이런 게 멋있는 거려니, 하고 영혼없이 따라가다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지점에서 추락하는 것이다.

이들이 이런 지경에 떨어지는 이유는 대부분 하나다. 한마디로 한 남자가 매력적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객관적으로 깊이 연구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미 자아도취적 틀이 그 답을 제공하고 있는데 왜 깊은 생각을 할까. 하지만 자아도취는 자문자답에 불구하고 여러분이 그에 걸맞는 엄청난 천재가 아닌 이상 여러분에게 결코 의미있는 답을 주지는 않는다.



캐릭터의 결점에 대한 한없는 관대함이 생각만큼 ‘예술적’이긴 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만 하다. 뻔한 예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맥스를 보라.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속죄를 하려하는 인물이지만 자신의 죄의식을 전시하지 않는다. 그는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올바른 행동만을 한다. 한국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들은 이런 인물이 지나치게 ‘밋밋하고 심심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라. 정말 그런가? 올바른 일을 하는 것. 자신을 온전하게 극복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없는 일인가? 이런 퇴행적인 나쁜 남자들의 반복적인 등장은 결국 그들이 그런 문제점들을 게으르게 미적거리며 개선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핑계에 불과한 게 아닌가? 이런 것들이 한국 남성에 대한 정확한 기술이라고 해도 이것들이 반복되며 자기도취의 틀만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무뢰한><극비수사><매드맥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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