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 연애 못하고 사는 게 죄는 아닐진대


3강. 누구 안 만나? [누구+안+만나]

[합성어]
1. 연애를 하고 있지 않은 이에게 연애의 의사나 의지를 묻는 질문
2. “나는 네가 솔로라는 걸 놀리고 그걸로 예능을 만들 거야”라는 속뜻


[엔터미디어=이승한의 TV키워드사전] 내일 모레 마흔이 되는 사람들과 이미 40대 중반이 된 남자들이 20대 여성을 가운데에 놓고 채근 중이다. “너 진짜 좀 그런 게 있어. 지난 번에 통화할 때 말투도 그렇고. 이러니까 걔가 너 생각에 밤잠을 설치는 거야.” 번역하자면 ‘네가 끼를 부리니까 걔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거다’ 정도의 뜻을 담고 있는 문장이 끝나자, 반대편에 앉아있던 남자가 여성의 팔을 붙잡으며 말한다. “이런 디테일 미치잖아요.” “그러니까, 너 이런 거 하지 마. 알고 하는 거지?” 소매 기장이 팔보다 길어서 끝단을 쥐고 있었을 뿐인데, 이 남자들은 뭐든 엮어서 ‘너는 끼를 부리고 있다’는 결론으로 달려간다. 머리카락을 넘기는 것조차 하지 말란다.

뭐지 이건? 회식 자리 진상들인가? 아니다. <무한도전>이다. 불려온 20대 여성은 유이, “너 진짜 좀 그런 게 있다”며 뜬금없이 책임을 유이에게 돌린 건 유재석, 소매 기장을 놓고 제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건 하하다.

지난 27일 방영된 MBC <무한도전> ‘로맨스가 필요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중신을 서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 주변에 무례를 흩뿌리고 다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유이에겐 이런 자리라는 걸 말도 하지 않은 채 일단은 불러놓고는 뜬금없이 광희와 단 둘이 식사를 하라고 한 제작진도 결례였지만, 유이의 입장 같은 건 아랑곳 없이 “한 2주만 시간을 줘봐”라고 말하는 하하나, “광희는 제 어디가 좋대요?”라는 진지한 물음에 “다”라고 퉁 쳐서 말하는 정형돈이나 모두 유이의 입장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광희가 유이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 나온 이후부터, <무한도전> 멤버들은 끊임없이 유이를 언급하거나 광희에게 유이를 언급시켰다. 요 몇 주간 “광희야 힘내라! 유이가 보고 있다!”는 기존 멤버들이 광희를 대하는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이쯤 되면 거의 서동요 수준이 아닐 수 없다. 300회 특집 ‘쉼표’에선 자신들 때문에 가족이나 옆에 있는 동반자가 불필요한 주목을 받게 될까 걱정했던 기존 멤버들은, 자기 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뜬금없이 언급된 상대의 입장엔 무심했다.



김영철, 김제동, 지상렬과 김숙, 송은이, 신봉선 등을 불러 소개팅을 해주겠노라는 2부 ‘싱글남녀 커플 이어주기’ 또한 기혼자의 시선에서 비혼 상태로 나이를 먹은 이들을 일방적으로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무한도전>의 인력 풀 안에서 누구를 섭외할지 눈에 선한 게스트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상형을 묻고는, 이상형을 찾지 못했다며 서로라도 만나보라 등을 떠민다.

새로 시작한 팟캐스트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중인 경력 23년, 21년 차의 예능인 송은이와 김숙이나, 자신의 이름을 건 쇼를 시작해 자리를 확고하게 다지고 있는 김제동이나, <무한도전>의 세계관 안에 들어오는 순간 그 성취로 존중 받는 대신 그저 ‘나이 먹고 혼자인 사람들’의 카테고리로만 활용된다. 심지어 송은이와 김숙은 과거 길과의 데이트 특집에도 고스란히 불려 나왔던 멤버들 아닌가. 뻔한 게스트를 더 뻔하게 활용하는 소식을 전하는 기사 밑에 댓글이 달린다. “섭외할 게스트가 그렇게 없나.”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연애 버라이어티인데 왜 유독 <무한도전>만 가지고 그러는지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첫째는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연애 버라이어티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무한도전>이기 때문이다.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이들이라면 연애 버라이어티에 나가면 될 일이지, 이렇게 비혼 상태라는 이유만으로 <무한도전>에 불려 나와서는 오로지 비혼이라는 점만 놀림 당해야 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무한도전>이 비혼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이들을 집요하게 놀리거나 짝을 지어주지 못해 안달인 게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무한도전>은 정준하의 결혼 문제를 몇 년씩이나 붙잡고 있었고, 과거 하하나 노홍철, 길이 공개 연애를 할 때 끊임없이 멤버들의 당시 애인을 언급하거나 전화 연결을 통해 <무한도전>의 세계 안으로 끌어 들였다. 시청자들의 사연을 받아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짝사랑을 해결해주겠다며 ‘연애조작단’ 특집을 하기도 했고, 노홍철과 장윤주 사이에 케미스트리를 만든다며 집요하게 가상부부 체험을 시키기도 했다. 심지어는 일반인 여성들을 줄 세워놓고 품평하던 ‘홍철아 장가 가자’ 특집은 불편함을 항의하는 시청자들의 원성에 사상 처음으로 특집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연애 상태’라는 목적지로 가기 위해 몰래카메라를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에게 의향이나 진지한 생각을 묻는 과정이 생략되며, 나이 먹고 연애 상태가 아니면 웃음거리로 만든다. 출연진의 사소한 사생활까지도 쇼의 요소로 차용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장르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가장 개인적인 영역이어야 할 연애의 여부를 놓고 “왜 안 하냐”, “사람 좀 만나보라”며 방송에서 비혼/비연애 상태를 이렇게까지 웃음의 소재로 삼아도 되는가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김태호 PD 본인도 다른 사람의 연애 이야기에선 모두가 제3자가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칼럼니스트 정덕현의 인터뷰집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에서, 김태호 PD는 ‘연애조작단’ 특집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의 사랑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다른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서 우리는 모두 제3자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걸 아시는 분이 왜 계속 제3자의 자리에서 훈수를 두고 계신 건진 모르겠지만.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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