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할 영향력을 밉지 않게 과시한 ‘무도-가요제’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이제부터 약 한 달 간 <무한도전>의 세상이다. ‘무도 가요제’가 진행되는 동안 예능계는 <무도>발 대형 태풍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고, 가요 음원 시장도 마찬가지다. 이는 예능 프로그램의 한 특집이 가요 시장의 1년 농사를 좌지우지했던 지난 몇 해의 기록이 증명한다. 게다가 올해는 <무도>의 10주년. 의미가 남다른 해이니 만큼 연초부터 ‘2015 무도 가요제’는 관심거리였다.

그런데 이번 가요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대 속에 작은 우려도 깃들어 있었다. ‘복면가왕’ 콘셉트를 지키기 위한 제작진의 불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요제 관련 소식과 참여 뮤지션들의 면면이 속속 전해지면서 기대감의 한편에서 <무도>가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을까하는 우려 또한 깊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역시’였다. 프롤로그에 가까운 이번 주 방송만으로도 ‘무도 가요제’가 장기 특집 중 가장 성공한 브랜드인 이유와 <무도>가 10년 동안 굳건한 팬덤을 가지고 사랑받는 예능이 될 수 있는 이유를 보여줬다.

우선, <무도>가 가진 가공할만한 영향력을 밉지 않게 과시했다. <무도>는 자신들의 입지와 영향력에 걸맞게 유희열, 윤종신, 이적 등 오디션쇼의 심사위원급 뮤지션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했다. 참가자도 GD, 태양, JYP 등 가요계의 최정상급 인기 뮤지션들과 함께했다. 그런데 그런 한편에서 자이언티, 혁오밴드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손을 뻗어 더 큰 무대로 끌어올렸다. 또한 아이유부터 윤상까지 다양한 음악적색과 연령대의 뮤지션을 섭외하면서 주류 가요시장에서 구현하지 못한 넓은 스펙트럼의 큰 그림을 그렸다.

정준하는 이번 가요제의 밑그림을 젊은 세대의 유행에 따라 힙합으로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무도>가 그린 그림은 가요의 ‘다양성’이었다. 기존 산업 시스템과 주류 시장 문법에 소외된, 대중에게 덜 소개된 ‘핫’한 젊은 아티스트들을 선택하면서 세련된 취향으로 호응을 이끌고, 예능의 강력한 영향력을 가요계와 프로그램 모두 상생하고 선순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휘했다.



이 그림은 <무도>의 급에 맞게 최고의 위치에 있는 제일 잘나가는 가수, 제일 큰 회사, 30대 시청자들의 팬덤과 편하게 손잡는 대신 이른바 여전히 <무도>다운 역할과 모습에 고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너무 상업화되고 대형화되는 것 아니냐는 기우에 가장 적절한 현답이고, 이러한 일종의 올바른 태도는 많은 사람들이 <무도>를 좋아하는 바탕이다. 이런 믿음 위에서 어떤 무대와 노래가 나올지에 대해 마음 놓고 기대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무도 가요제’의 흥행은 단순히 음악과 큰 잔치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끼를 드러내고 예능에 익숙지 않은 게스트와 긴밀하게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무도> 본연의 캐릭터쇼의 묘미가 살아난다. 가요제의 길고 긴 준비과정이 흥할 수 있는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무도>의 원톱은 누가 뭐래도 욕심 많고 이기적이고 화가 많은 캐릭터의 박명수다. 지금은 웃음 사냥꾼이지만 리즈시절 박명수에게 웃음이란 바닷물 속의 플랑크톤 같은 거였다. 이효리의 대치동 시절, 모두가 떠받들던 그녀에게도 박명수는 가차 없었다. 게스트 이효리에게 내지르던 거성의 일갈은 예능 프로그램의 관습을 깨트린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그 후 예능방송에서 예의와 가식은 분리됐고, 새로운 태도가 자리 잡게 됐다.



나름 적자생존의 구도가 그려지는 가요제는 박명수가 간만에 활기를 찾을 수 있는 무대다. 인지도가 낮은 게스트는 철저하게 무시하고, 뜨기 이전 아이유에게 함부로 했다며 빠르게 사과를 한다. 방송에 익숙지 않은 자이언티와 혁오밴드 등은 박명수의 꿀단지다. 단답으로 일관하는 자이언티에게 ‘여기가 장학퀴즈냐?’고 일갈하고 그보다 더 토크가 어려운 오혁에겐 ‘나가서 세수 좀 하고 오라고’ ‘있어도 되나 싶으면 가라’고 몰아붙인다. 매니저 좀 보자고 타이르기도 한다. 자이언티가 오혁과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니까, 본방은 어려울 것 같다며 나지막하게 ‘이번 방송은 imbc로 내보내야겠다’고 판단할 줄 아는 남자다. 노래 실수한 윤상에게 ‘저 사람은 옥의 티입니다’라고 내지르는 무례하지만 웃기는 형으로 돌아온 것이다.

정형돈은 지금이야 4대천왕 소리를 듣지만 원래는 2년에 딱 한 번씩만 터지는 가요제의 사나이였다. 다시 말하면 2년간 존재감 없는 멤버로 지낸다. 그런 그가 GD 같은 게스트 앞에서 시건방을 떠니까, 이게 빵 터지는 거다. 이번에도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도도하게 앉아서 윤상에게 화성학을 지적하는데 지난 번 ‘늪’ 같은 무대나 ‘동묘 앞’ 같은 상황을 기대하게 한다.

<무도>는 잔치를 어떻게 치르는지 잘 아는 종갓집 며느리 같다. 이번에도 멍석을 제대로 깔았다. 사람들은 혁오와 자이언티의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예능이 낯선 게스트들과 함께하면서 멤버들은 내공의 간극차로 웃음을 만들어낸다. 가장 화려한 게스트 군단과 대대적인 물량이 투입되지만 <무도>만의 영향력을 밉지 않게 과시하면서 가장 기본에 충실하면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그림이다. ‘무도 가요제’가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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