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신변잡기 토크쇼,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라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어제 오후,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DJ 김광한 씨의 급작스런 별세 소식을 전하기에 잠시 채널을 고정했다. 그렇지 않아도 인터넷 단신으로만 비보를 접했던 터라 돌아가신 분의 발자취를 짧게나마 짚어주는 것이 고맙고 다행이다 싶었던 것. 향년 69세, 도무지 남의 일 같지가 않은 것이 그분의 방송을 통해 팝송을 듣고 배우며 성장했던 중장년층이라면 아마 다들 엇비슷한 상실감을 느꼈으리라.

그런데, 화면 가득한 그분의 환한 웃음을 마주하고 있자니 문득 지난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추억의 팝송이 그리워지는지라 찾아 듣고자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차, 순간 내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행자가 배시시 미소를 띠며 패널로 나온 기자에게 던지는 질문이 하도 기막혔기 때문이다. “김광한 씨가 김기덕 씨를 라이벌이라며 싫어했다면서요?”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돌아가신 분을 두고 그게 할 소리야?” 혼자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결국 ‘오해에서 빚어진 해프닝에 불과했다’가 답이었으니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얘기였지 않나.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아니 될 말조차 구별 못하는 방송, 공감 능력이 이렇게 떨어질 수가. 게다가 뒤를 잇는 뉴스 제목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연예인들’이다. 그걸 왜 시사 프로그램에서 봐야 하느냐고! 한숨이 절로 나올 밖에.

사실 가끔 TV를 하급 문화로 여기는 분들과 마주치곤 한다. 그런 분들은 하릴없이 TV를 보고 무슨 소감까지 쓰느냐며 세칭 방송평론가인 나를 한심하게 보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놓치면 아까운 프로그램들을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 가며 추천하는 등 변명 아닌 변명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내 쪽에서 “맞아요, 정말 심하죠?” 하고 즉시 수긍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바로 한 사람을 입 도마 위에 올려놓고 물고 뜯는 토크쇼들이 언급될 때다. 뒷담화하자고 판을 벌이는 대국민 험담 방송이라고 할까. 이러한 형식의 토크 프로그램이 허구한 날 전쟁이라도 난 양 목소리를 드높이며 격론을 벌이는 시사토크쇼와 함께 어느새 몇몇 종합편성 채널의 주력 상품으로 자리 잡은 모양이다.



종편 출범 초기에 ‘남 얘기하기’로 도드라졌던 건 아마 MBN <아궁이>일 게다.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사건들을 소재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사건 뒤 숨겨진 진실을 알려주는 신개념 스토리쇼’ 라고 그럴듯한 간판을 내걸긴 했으나 실제로는 연예인의 과거와 현재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방송일 뿐이 아닌가. 지난주 주제만 봐도 ‘스피드 이혼의 비밀’이었으니 두 말하면 잔소리가 아닐는지. 당사자에게는 분명 들추고 싶지 않은 상처일 테고 급속도로 이혼에 이른 그 속사정을 어느 누가 구구절절이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진행자부터 패널들까지, 앞다퉈가며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얘기들을 마치 사실인 양 늘어놓는다. 확인은 하고 하는 얘기야?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묻고 싶을 지경이다.

다 좋다. 사적인 모임에서도 연예인 뒷얘기는 언제나 수다의 단골 소재이니까. 너나 할 것 없이 남의 얘기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래도 상식선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특히 이미 세상을 떠난 분이라든지 재혼해서 잘 살고 있는 연예인의 과거사를 적나라하게 들춰내서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연예인 과거사 털기로 <아궁이>가 한동안 화제이다 보니 한 사람의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를 들려주는 콘셉트였던 TV조선 <대찬인생>도 포맷을 바꿔 연예인 뒷얘기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러다 이내 종영하고 후속으로 <솔직한 연예토크 호박씨>라는 프로그램을 출시했는데 사실 TV조선은 이 방면으로 발군인 것이 <연예해부 여기자 삼총사가 간다>도 <강적들>도 알고 보면 다 남 얘기하자고 벌려놓은 판이 아니겠나. 이제 막 발걸음을 내딛은 <솔직한 연예토크 호박씨>만큼은 누군가의 애써 아문 상처를 헤집어 파헤치는 일은 없기를, 또한 연예토크에 나서는 진행자 및 패널들은 부디 역지사지를 되새기며 방송에 임해주길 바란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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