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를 위한 드라마 ‘오렌지 마말레이드’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KBS 금요드라마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평균 3%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소수만이 시청하는 드라마다.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방송시간에 있어서도 소수의 설움을 톡톡히 당한 작품이다. 바로 앞 시간대에 방송한 <프로듀사>의 작가와 출연진들 화려한 면면 때문에 시작부터 큰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대책 없는 <프로듀사>의 연장방송 여파로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드라마 중반에 이르고서야 처음 제 시간에 방송이 가능했다.

아쉽게도 <오렌지 마말레이드>의 시청률 3%는 현재 주간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KBS 주말연속극 <파랑새의 집>의 시청률 20% 초중반에 비하면 초라한 기록이다. 하지만 <파랑새의 집>에 비교해서 <오렌지 마말레이드>가 재미가 없느냐, 라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온갖 주류 가족극 클리셰 범벅이지만 재미라고는 닭털만큼도 없는 <파랑새의 집>에 비해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몇몇 치명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요소요소 은근히 뜯어먹을 재미가 있는 드라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그 재미를 음미하고 있는 시청자들은 3%의 소수에 불과하다. 그나마 꾸준히 그 소수에 속했어야만 <오렌지 마말레이드>의 재미를 음미할 수 있다. 이 드라마를 드문드문 보는 이들에게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학원물에서 어느 날 뜬금없이 사극으로 변해버린 드라마에 불과하다. 그것도 제목이 <오렌지 마말레이드>인데 오렌지가 없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사극이라니, 어이 상실. 아마 이 정도가 대부분 주류의 반응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렌지 마말레이드>의 극적 재미는 의외로 ‘병맛’이 아닌 진지함에 있다. 이 드라마의 로맨스는 애절함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주요 줄거리는 흡혈귀 소녀 백마리(설현)와 그 소녀에게 반한 소년 정재민(여진구) 사이의 로맨스다. 그것도 지금 현재만이 아닌 전생까지 엮여져 있는 인연이다. 즉, 이 드라마는 현재 이야기인 <오렌지 마말레이드>부터 과거 유자청은 있었을 법한 조선시대 전생까지 넘나들며 이 로맨스의 깊은 인연의 끈을 보여준다.



특히 드라마의 배경음악이나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름다운 장면들은 이 로맨스를 달달하게 만들어준다. 심지어 ‘아청법’ 시대에 교복 입은 남녀주인공 사이에 미묘하게 에로틱한 분위기가 흐르는 장면을 연출하는 위험한 줄타기까지 감행한다. 여기에 현생에서나 전생에서나 백마리를 짝사랑하는 한시후(이종현)의 해바라기 사랑까지 더해진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오렌지 마말레이드>의 로맨스 또한 주류 아닌 소수의 사랑에 가깝다. 흡혈귀는 소수자 그것도 주류를 위협하는 무서운 소수자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존재다. 흡혈귀는 낯선 유색인종 혹은 성소수자의 요괴 버전이 셈이다. 심지어 현재극에서건 사극에서건 남자주인공 정재민은 늘 흡혈귀포비아로 등장한다. 물론 그건 정재민이 유달라서가 아니다. 현재건 과거건 상관없이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흡혈귀를 혐오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현재극에서 흡혈귀는 인간과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다. 표면적으로 흡혈귀를 인정해 주는 시대인 셈이다. 단 정부에서 관리를 받아야하고 인간의 피 대신 동물의 피를 마시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흡혈귀는 언제나 인간의 혐오 섞인 시선을 받기에 자신의 본질인 송곳니를 함부로 드러내지는 못한다. 여주인공 백마리와 백마리의 가족, 그 집에 얹혀사는 한시후는 언제나 흡혈귀라는 사실을 감추며 살아가야 한다.



백마리가 주인공 정재민을 좋아하지만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백마리는 평범한 여자애가 아니라 흡혈귀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남자의 체취가 아닌 달콤한 피 냄새에 끌리는 존재이니 말이다. 그나마 그래도 현실에서 흡혈귀는 인간과 함께 살아갈 수나 있다. 두 사람의 전생인 과거에서의 흡혈귀란 그야말로 때려잡아도 상관없는 요괴에 불과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흡혈귀를 혐오하는 정재민은 현재에서건 과거에서건 이 흡혈귀 소녀에게 첫눈에 반하고 만다. 특히 과거 사극에서 무관집안의 자손인 정재민은 백마리가 백정의 딸이어도 별반 상관하지 않는다. 허나 그녀가 흡혈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정재민은 그야말로 ‘멘붕’에 이른다. 얼마나 충격이겠는가? 심지어 현생에서 정재민은 꿈속의 흡혈귀 백마리를 보고 몽정까지 한 상태이니.

하지만 ‘멘붕’은 절망의 끝이 아니다.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진짜 사랑의 시작은 ‘멘붕’과 희생에서 시작한다는 걸 보여준다. 마음의 붕괴, 혹은 정신의 붕괴는 단단한 선입관의 껍질이 깨지는 순간이며 동시에 새로운 감정을 받아들일 준비기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전생이건 현생이건 정재민의 짐작보다 훨씬 더 정재민을 사랑하는 백마리는 그를 위해 희생을 자처한다. 특히 백마리는 흡혈귀에 물린 정재민을 인간으로 되살리려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조금 우스꽝스러운 설정이지만 온몸의 피를 다 뺀 흡혈귀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흘린 피만이 흡혈귀에 물린 인간을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 ‘멘붕’과 희생을 넘나드는 흡혈귀와 인간의 로맨스는 드라마 <오렌지 마말레이드>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설정이자, 드라마의 주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드라마가 다소 산만하긴 하지만 <오렌지 마말레이드>의 주제는 꽤 뚜렷한 편이다. 심지어 <오렌지 마말레이드>라는 제목에 녹아 있기도 하다. <오렌지 마말레이드>의 현생 편에서 정재민과 학교 친구들과 함께 백마리는 오렌지 마말레이드라는 밴드를 만든다. 공연 후에 백마리는 왜 자신이 밴드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 관객들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들려준다. 흡혈귀를 숨긴 여고생이지만 흡혈귀의 마음을 전하는 의미로.

“오렌지를 먹을 때 보통 껍질은 먹지 않고 버리잖아요. 그런데 오렌지 마말레이드를 만들 때는 꼭 껍질을 넣거든요. 잘게 썰어서요. 그럼 아삭하게 씹히면서 새콤한 맛을 낸대요. 쓰레기통에 버려질 운명이었던 오렌지 껍질조차도 오렌지 마말레이드에서는 꼭 필요한 거예요. 너는 다르니까 싫다고 버려지지 않아요. 우리 밴드는 그런 밴드면 어떨까 해서요. 다르다는 이유로 더 이상 밀쳐내지 않고 오렌지 껍질처럼 쓸모없다고 외면 받아왔던 것에 자리를 내주고. 함께 담아낼 수 있는 마말레이드 같은 음악을 하면 어떨까 하고.”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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