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셀’, 굳이 게임 덕후가 아니라도 즐겁다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픽셀>은 1980년대 아케이드 게임에 푹 빠졌던 이들에게는 대단히 특별한 영화다. 그들은 PC 게임 이전, 오락실에서 동전을 넣어가며 했던 갤러그나 동키콩, 팩맨을 기억할 것이다. 50원 짜리 동전을 집어넣고 한 시간 넘게 게임을 하면 마치 구경이라도 난 듯 아이들이 모여 감탄사를 흘리고, 주인아저씨는 동전을 되돌려주며 다신 오지 말라고 했던 그 기억. <픽셀>은 그 기억을 회고하는 것을 넘어서 그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영화다. 어찌 열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이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다. 홍보용 영상을 보면 마치 <인디펜던스 데이>같은 외계인 침공의 액션 블록버스터처럼 오인될 소지가 있다. 만일 그런 영화를 기대했다면 <픽셀>은 실망감만 안겨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80년대 아케이드 게임의 감성을 자극하는 가벼운 코미디 영화라고 본다면 빵빵 터지는 웃음 코드와 함께 꽤 유쾌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물론 <픽셀>이 그리고 상상하는 세계는 꽤 철학적이다. 현실 세계로 게임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캐릭터들에 의해 도시가 파괴된다는 이야기는 얼토당토않은 유치한 상상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거기에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져가는 작금의 디지털 세계의 단면이 들어가 있다. 이미 현실 위에 가상의 이모티콘과 표식들을 집어넣는 증강현실은 점점 우리의 실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가상과 현실의 차이는 진짜냐 가짜냐 같은 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실제에 가까운가 아닌가 하는 양적인 차이(픽셀의 차이)라고 얘기한 빌렘 플루서의 이야기를 <픽셀>은 농담처럼 던지고 있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픽셀>이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메시지로 던지는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이러한 가상과 현실에 금을 긋고 있는 관객들에게 그걸 사정없이 깨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코미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 이 영화의 묘미다. 즉 팩맨이 도시를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대통령서부터 국방부 장관까지 심각해지는 상황들이나, 무수한 훈련으로 단련된 군인들이 지네게임의 지네들이 쏟아져 내려오는 것에 어쩔 줄 몰라 할 때, 한때는 아케이드 덕후로 살다 이제는 루저가 된 이들이 광선총으로 지네들을 일망타진하는 상황이 그렇다. 우습지 않은가. 한 도시와 국가의 미래가 게임 덕후이자 루저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이.



이것은 게임 같은 것을 가상으로 여기며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해온 기성세대들의 뒤통수를 때린다. 가상이 더 이상 가상이 아니라 현실로 들어왔을 때 그 달라진 현실의 영웅은 다름 아닌 가상에서의 영웅들이다. 게임을 좋아하고, 인터넷에 푹 빠져 현실보다 더 그 가상의 세계가 익숙한 중년들은 물론이고 디지털 네이티브인 젊은 세대들이라면 이 이야기가 주는 풍자적인 웃음이 통쾌함마저 줄 수 있는 이유다.

<픽셀>은 그러나 굳이 게임 덕후가 아니라도 즐거울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 틀을 갖고 있다. 즉 루저들의 성공기가 그것이다. 한때는 잘 나갔었지만 성장하며 변방으로 밀려난 그들이 어떤 계기를 맞아 영웅이 된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즉 루저가 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계기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

또한 이 영화는 아케이드 게임을 즐겼던 중년들이 이제 앱 게임에 빠져있는 아이들과 함께 보며 어떤 덕후적(?)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픽셀>은 한때는 모두가 그랬을 덕후들을 추억하는 영화면서 동시에 어딘지 소외되어 변방으로 밀려난 이들을 한바탕 웃게 해주는 영화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픽셀>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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