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사태가 배우들에게 남긴 시사점

[엔터미디어=이만수의 누가 뭐래도] 이병헌이 지난 24일 <협녀: 칼의 기억> 제작발표회 무대에 올랐다. 지난 50억 협박 사건 이후 첫 국내 공식석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많은 이들의 이목은 영화보다 이병헌에게 더 집중됐다. 물의와 실망을 준만큼 그가 첫 공식석상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 언론의 관심도 쏟아졌다.

그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어떤 비난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했다. 또 “나 때문에 제작진 분들의 노고가 가려지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 영화가 이렇게 지연되어 상영된 것에 대해서도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탓이라고 말했다. 이병헌은 회피하거나 변명하려 하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를 얘기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병헌의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되고 있다. 자신의 이런 사과가 여러 언론에 집중되는 사이에 정작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들은 저 뒤로 묻혀져 버렸다. 대중들은 제작발표회가 끝났지만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또 그 기대되는 대목은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대신 이병헌의 공식석상 등장과 사과만이 뇌리에 남았다.

이것은 지금 현재 이병헌이 처한 사면초가를 잘 말해준다. 그는 지난 <터미네이터 제네시스>가 개봉됐을 때도 거의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포스터에서조차도 볼 수 없었다. 물론 그의 역할이 지대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영화 속에서 그의 존재감이 분명히 있었다는 건 사실이다. 통상적으로 할리우드 영화가 우리네 배우를 쓰면서 영화 홍보에 해당 배우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어벤저스2>에서의 김수현과 비교해보라. 이병헌은 김수현보다 더 비중이 있는 배역이었지만 거의 영화 홍보에서는 빠져 있었다.

물론 어떤 매체들은 괜찮은 성적을 낸 <터미네이터 제네시스>를 들어 성급하게도 ‘이병헌 부활’을 얘기하는 황당한 기사들을 내보내기도 했다. 단언컨대 <터미테이터 제네시스>의 성공은 이병헌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아놀드 슈바제네거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 더 클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기사가 나온다는 건 이를 통해 영화를 보지 않은 일반인들에게 이병헌의 복귀를 호도하기 위함처럼 보인다. 어찌 보면 상황은 거꾸로 인지도 모른다. 이병헌이 없었다면 <터미네이터 제네시스> 역시 별다른 선입견 없이 관객들이 찾지 않았을까.

이병헌 50억 협박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병헌의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금 개봉되었고 개봉될 영화들은 사태 이전에 찍은 것들이다. 그 파장을 충분히 경험한 영화계가 이병헌을 앞으로도 캐스팅할 지는 의문이다. 한 번 엇나간 연예인에 대한 대중들의 생각은 쉽게 돌아서지 않는다. 과거 이경영이나 최민식을 떠올려 보라. 그들은 꽤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서야 비로소 다시 배우로서 대중들 앞에 설 수 있었다.

이병헌 사태는 배우들에게는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배우들은 자신의 사생활 문제가 그저 사생활에 머물지 않고 그가 한 작품에도 엄청난 파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연기자가 가진 삶에 대한 태도나 방식은 그의 연기와 그가 출연하는 작품에도 그대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배우의 생명과 무관할 수 없다. 결국 배우는 연기로 서는 것이지만, 그 연기는 그 사람의 삶과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이만수 leems@entermedia.co.kr

[사진=영화 <협녀: 칼의 기억>스틸컷]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