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초심 잃고 방황하는 ‘수퍼맨’ 한 수 배워라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어벤져스>가 뭔지 아세요?” 지난 주 SBS <자기야-백년손님> 제작진이 후포리 주민들께 드린 질문이다. “젓이가? 어벤젓이라 하네?” 여름밤 무더위에 질려 넋을 놓고 앉았다가 올해로 90세 되시는 최복례 어르신의 시간차 웃음 공격에 허를 찔려 한참이나 웃었다. 늘 감탄해마지 않는 바지만 또 한방 시원하게 날려주시는 후타삼 넘버원 어르신의 재치. 제과점 케이크를 두고 오간 얘기여서 내심 PPL이지 싶었으나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풀어낸다면 과히 불편하지 않다. 이미 종영했지만 매회 주인공들이 동원돼 어색한 장면을 연출하던 SBS 수목드라마 <가면> 제작진들이 보고 배웠으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 정성껏 차려낸 생일상 앞을 앞에 두고 남 서방(남재현)의 장모님께서 하신 말씀도 인상 깊다. “실은 사부인께 미역국을 끓여 드려야 된나이더. 이 뜨거울 때 낳아가지고 얼마나 고생을 했을노. 엄마한테 고맙다고 하소.” 귀하디귀한 사위를 낳아주신 사부인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딸 가진 어머니의 마음이 참으로 정겹고 훈훈하지 뭔가. 그러나 아뿔싸, 되돌아보니 지난 우리 사위 첫 생일에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꼬. 귀한 걸로 치자면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사위거늘. 이번에도 후포리 어르신들의 일상을 통해 또 한 수 배웠다.

흔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음과 감동, 둘을 다 잡는 것이 영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야-백년손님>에서는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대단한 톱스타가 동원되지 않아도, 유명한 음식점을 섭렵하거나 멀리 해외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그저 소소한 장모님들의 삶 속에서 집밥 한 가지만으로도 배려를 느끼고 공감을 얻을 수 있으니까. 초심을 잃고 방황하는 여러 예능 프로그램들이 보고 깨우쳤으면 하는 부분인데 특히 아빠와 아이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몇몇 프로그램에게는 할 말이 많다.

사실 아이들은 모두 더할 나위 없이 귀엽다. 파일럿 프로그램 때부터 내내 성장 과정을 지켜봐온지라 이젠 남 같지 않을 정도로 정도 듬뿍 들었는데 문제는 어른들이다. 가장 궁금한 것이 KBS <해피선데이-수퍼맨이 돌아왔다>는 왜 도대체 제목에 ‘수퍼맨’을 붙인 걸까? 뭐든 아이가 원하는 건 다 해줄 수 있는 아빠여서? 망고며 딸기며 수박이며, 남들은 살까 말까 들었다 놨다하며 수없이 망설일 값나가는 과일을 실컷 먹게 해줄 능력을 지녀서? 파스타며 닭백숙 한 가지를 만들더라도 바로 요즘 잘나가는 유명 요리사를 등장시킬 수 있는 인맥 때문에?



그 놈의 인맥 과시는 시도 때도 없어서 예를 들어 아이가 개를 두려워하면 당장 연예인이 개를 데리고 달려와 유대감을 형성시켜주는 식으로 문제 해결에 나설 최고의 전문가를 불러들인다. 아이와 아빠의 관계에 주목하기보다는 물질과 어른들의 삶에 더 많은 비중을 둔, 결핍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풍요롭다 못해 넘치는 삶. 한 마디로 주객이 전도됐다 할 밖에. “이게 최선입니까?”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를 던지고 싶어진다.

듣자니 실제로 또래 아이를 둔 부모들은 육아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TV를 보고 아이들이 사달라거나 데리고 가달라고 조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따라서 같은 부모 입장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나. 아마 제작진이나 출연진들은 당장 이런 변명을 늘어놓지 싶다.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로 봐달라든지 알고 보면 대리만족을 하는 이들도 꽤 많다는 둥. 대리만족이라. 이거 너무나 서글픈 얘기가 아닌가. 결혼이나 아이를 낳을 여건이 안 되니, 내 능력치를 한참 벗어난 일이니 방송을 통해 헛헛함을 해소하라고? 이번엔 영화 속 대사를 빌려 오련다. “너나 그러세요!”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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