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 유독 초법적 영웅들에 집착하는 이유


제5강. 제도권 [制度圈]

[명사]
1. 일정한 국가나 사회 체제에 포함되어 주류를 이루는 범위.
2. 이걸 아직도 믿으세요?

[유사어]
헬조선


[엔터미디어=이승한의 TV키워드사전] 배낭 안에 의료도구들을 약식으로 챙겨 온 젊은 남자가 부상을 입은 조직폭력배들의 상처를 봉합하고 급기야 수술까지 해치운다. 레지던트 3년차의 신분을 숨기고는 사채 빚을 갚기 위해 어둠의 세계로 불법왕진을 다니는 이 남자, 아무리 봐도 껄렁껄렁하고 돈만 밝히는 게 별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이 남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병원엔 지금 그를 능가하는 수술 실력을 지닌 의사가 한 명도 없을 뿐 아니라, 그보다 돈을 덜 밝히는 의사도 없다. 정교수들은 수술 도중 위기 상황이 오면 그를 호출해 마무리를 시키고는 생색을 내고, 위급한 환자가 죽어가는 걸 보면서도 돈이 많은 VVIP 환자에게 달려가기 바쁘다. 차라리 조폭들의 상처를 바느질하러 밤마실을 나가는 이 어둠의 왕진의사가 더 믿음직할 밖에. 최근 방영을 시작한 SBS 드라마 <용팔이>의 설정이다.

이 남자는 또 어떤가? 승률이 바닥을 치는 바람에 다른 변호사들이 좀처럼 맡으려 하지 않는 까다로운 사건의 항소심만 주로 담당하는 무능한 변호사인데, 심지어는 그마저도 이기는 법이 거의 없다. 자기 사무실 직원으로부터 “돈이 많으면 다른 취미생활을 가지라”는 비아냥이나 듣는 이 한심한 재벌집 도련님의 진짜 취미생활은, 자신의 재력과 인맥을 동원해 법이 외면한 억울한 사건들의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현실 속 ‘의료기 역렌탈 계약 사기 사건’이나 ‘허원근 일병 의문사 사건’과 수상쩍을 정도로 닮은 사건들을 추적하는 이 남자는, 사법제도가 약속하는 원칙과 합리의 세계 따윈 허상이라는 듯 온갖 편법으로 정의를 구현하려 애쓴다. 마찬가지로 최근 방영된 SBS 단막극 <에이스>의 설정이다. 2015년의 드라마 세계에서, 환자를 고치고 억울한 이들에게 정의를 가져다주는 건 제도의 테두리 밖에 있는 자들이다.

변호사와 의사만 그런 게 아니다. 최근 종영한 KBS <복면검사>의 주인공 또한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범죄자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한다며 밤마다 복면을 뒤집어쓰고 어두운 거리로 나서는 검사였다. 드라마의 헤드카피는 “법대로 하지 맙시다. 열 받으니까!”였다. MBC <앵그리맘>은 어땠나?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호해야 하는 선생들은 적극적으로 사학재단의 비리를 감추고 학생들을 폭력조직 말단으로 밀어 넣고, 교육부장관이란 사람은 이 모든 사실을 자신의 대권행보를 위해 적극 조장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건 왕년에 침 좀 뱉던 애 엄마와 그의 (조직폭력배) 친구들이다. 해고노동자에서 하루 아침에 여당 국회의원이 된 중년 남자의 여의도 분투기를 다룬 KBS <어셈블리>에서조차, 거창한 대의를 이야기하면서 제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주인공 혼자만 진심의 정치를 한다.



불꽃 튀는 시청률 경쟁에서 위에서 언급한 드라마들을 선택한 2015년의 시청자들은, 이제 공식적인 루트를 통한 문제 해결이나 절차를 거쳐서 일궈내는 개혁 같은 걸 믿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는 공적인 절차와 제도를, 그런 것들을 내세우는 제도권 사람들을, 그들로 이뤄진 국가를 믿지 않는다. 물론 예전에도 제도권에 대한 불신은 팽배했으며, 그러한 불신이 대중문화 콘텐츠에 반영된 사례도 적진 않다. 예전이라고 정치에 대한 불신이나 기득권층에 대한 대중의 혐오가 없었던 게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우후죽순처럼 제도권에 대한 지독한 불신과 환멸에 기반한 작품들이 같은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한 전례는 드물다.

무엇이 불신이라는 대나무 순을 이렇게 갑자기 자라게 한 ‘비’였는지는 비교적 자명하다. 지난해 4월 16일 발생한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기력한 대처, 역대 정부 중 재난상황에 가장 취약한 모습을 노출하고도 행정수반이 공식 사과하기까지 한 달 넘는 시간을 허비하는 무책임함, 진상조사위의 참사 원인 규명 활동 반경을 최대한 제약하려는 입법부의 움직임과, 그렇게 제약된 특별법을 또 한 번 위축시킨 정부 시행령, 그리고 이 무능과 무책임이 또 한 차례 반복된 올해의 메르스 파동까지. 2015년을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절망했다.

여기서 실시간이란 점은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일전 다른 지면에서 세월호 참사의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성수대교 붕괴나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처럼 그 결과만을 목격했던 과거의 참사들과 달리, 세월호 참사는 배의 꼬리 부분이 수면 위에 나와 있다가 며칠에 걸쳐 가라앉는 광경을 전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본 첫 경험이다. 지상파 채널들과 4개의 종합편성채널, 2개의 보도전문채널과 각종 신문, 인터넷 언론들이 그 과정을 고통스러우리만치 생생하게 전달했다. 무언가가 무참히 상처 입고 짓밟히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분노한다. 그 압도적인 무력함과, 책임소재에서 달아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들에 대한 환멸은 이전의 경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각종 시위나 추모집회도 줄어들고, 외견상 이 문제를 언급하며 손가락질 하는 이들의 수도 줄어들었으니 어떤 이들은 안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 봐,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니까. 그러나 보라. 오늘날의 드라마에서 교육, 의료, 사법, 정치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제도권’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으며, 이 아수라장에서 이들 드라마가 선택한 영웅들은 대체로 정보, 체력, 재력, 인맥 등 장삼이사들의 평균치를 상회하는 능력을 지녀 시스템을 우회하는 초법적 능력의 개인이다. (정치 초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KBS <어셈블리>조차 ‘선의지를 지닌 의원급 보좌관’이라는 거짓말 같은 캐릭터를 주인공 옆에 붙여줬다.)

이는 최근 인터넷 공간의 주요 담론 중 하나인 ‘헬조선’ 담론의 양상과 퍽 닮았다. 이 지옥 같은 나라에서 살아남으려면 애초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거나, 자신의 입에 물려진 수저의 색을 자력으로 바꿀 만큼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금수저’론. 그럴 능력이 없으면 차라리 돈을 모아 이민을 떠나는 쪽이 낫다는 ‘탈조선’론. 드라마 속 영웅들이 시스템을 우회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 정의를 구현하는 동안, 그럴 능력이 없는 브라운관 너머 시청자들은 계를 들어 나라를 뜬다. 어떻게든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다 사라진 자리에, 시스템을 부정하고 냉소하는 이들이 비 온 뒤 죽순처럼 돋아났다. 지금이라도 제도권 내부에서 뼈를 깎는 자성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무럭무럭 자라난 이 죽순들은 제 살과 뼈를 헐어 스스로 죽창이 될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SBS, 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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