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척’은 여배우의 무기인가, 무리수인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여주인공의 귀여운 척 그러니까 흔히 줄여 말하는 ‘귀척’ 연기가 화제가 된 드라마 두 편이 있다. 바로 SBS <너를 사랑한 시간>과 tvN의 <오 나의 귀신님>이다. 두 드라마 모두 여주인공의 다양한 연기 그 중에서도 특히 ‘귀척’이 중심이 된 작품이다. 혀 짧은 소리와 사랑스러운 표정, 앙증맞은 움직임이 연이어 등장한다.

아이돌 걸그룹 무대에서는 익숙해진 ‘귀척’이지만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귀척’은 그리 흔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돌의 무대는 3분 동안 귀여움이란 환상을 보여주는 쇼다. 하지만 3분의 쇼가 아닌 환상과 현실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길고 긴 이야기를 보여주는 드라마는 다르다. 그 이야기 안에서 여배우는 귀여운 척만으로 인간의 복잡한 얼굴을 그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지난 시절의 여배우들 중에서 귀여운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던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 싶다. 유일하게 예외인 경우가 90년대의 톱스타 고 최진실 정도다. 최진실의 경우는 귀여운 척이 아닌 생활 연기 속에 묻어나는 자연스러운 귀여움이 강점이었다. 물론 그 귀여움 때문에 다른 감정연기에도 탁월했던 그녀의 연기가 묻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친근한 귀여움이 패셔너블한 여배우, 연기 잘 하는 여배우가 넘쳤던 90년대에 최진실을 가장 돋보이게 만든 무기였다.

반면 현재 활동하는 여배우들에게서 귀여움은 의도치 않은 부분에서 드러난다. 대놓고 드러내는 ‘귀척’이 아닌 연기에서 살짝살짝 배어나오는 귀여움이 그 배우 혹은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는 경우가 많다.

문근영의 경우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귀척’ 연기는 절대 못 할 것 같은 여배우 중 하나다. 하지만 SBS <비밀의 화원>에서 신윤복으로 등장한 그녀는 탁월한 남장연기에도 불구하고 그 똘망똘망한 눈빛과 표정만으로 귀여움을 자아냈다. JTBC의 <유나의 거리>에서 소매치기 유나를 연기한 김옥빈은 특유의 싸늘하고 강한 척하는 여주인공이 사랑에 흔들리면서도 ‘츤츤’거릴 때 특유의 귀여움을 자아냈다.



또한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오해로 얽힌 연적 강순옥과 장모란을 연기한 김혜자와 장미희는 나이 든 여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속에 간간이 배어나는 귀여움이 어떤 것인지 증명해주기도 했다. SBS <신사의 품격>에서 여주인공 서이수를 연기했던 김하늘의 경우는 좀 독특하다. 아마 ‘귀척’도 끝까지 악착같이 밀고 나가면 귀여운 캐릭터로 보일 수 있다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반면 독특하고 ‘병맛’스러운 분위기를 내세워 ‘귀척’ 연기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여배우들도 있다. 이 계보의 대표주자는 아마 SBS <연애시대>에서 여주인공의 동생 유지호를 연기했던 이하나가 아닌가 싶다. 어딘가 딴 세상에 살고 있고 어리바리해보이지만 보다보면 귀여운 캐릭터들을 이하나는 그 후에도 꾸준히 만들어나갔다.

한편 ‘귀척’의 그로테스크함을 보여줬던 젊은 여배우로는 서우가 있다. 영화 <홍당무>에서귀엽지만 너무 귀여워서 오히려 소름끼치는 내면이 있는 여고생을 연기한 그녀는 KBS <신데렐라 언니>의 구효선을 통해 ‘귀척’의 끝은 물론 그 내면까지 낱낱이 드러낸다. 타인에게 끊임없이 예쁨 받기 위해 귀여움을 악착같이 연기하는 효선은 ‘귀척’의 뒤에 숨은 어둡고 섬뜩한 얼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 드라마에서 서우가 보여줬던 ‘귀척’ 연기에는 나름 깊은 의미가 있다.



<오 나의 귀신님>의 ‘귀척’이 사랑스럽고 <너를 사랑한 시간>의 ‘귀척’이 다소 부담스러운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이다. 한쪽은 캐릭터를 위해 귀여운 척이 존재하지만 한쪽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어필하기 위해 귀여운 척이 존재한다.

<오 나의 귀신님>에서 박보영은 음탕한 처녀귀신 신순애(김슬기)에 빙의한 나봉선을 연기한다. 이 드라마에서 박보영은 자기의 욕망을 마음껏 애교로 발산하는 신순애와 사랑에 있어서 소심한 나봉선을 오간다. 이 드라마에서 귀신 들린 ‘귀척’ 연기로 박보영은 화제가 됐다. 하지만 그것이 박보영의 귀여운 외모와 사랑스러운 목소리에 모두 기댄 건 아니다. <오 나의 귀신님>은 황당한 귀신이야기를 사랑스러운 연애담으로 만드는 데 꽤 섬세한 바느질을 한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귀신인 신순애와 인간 나봉선의 각기 다른 성격의 양상도 놓치지 않았다. 그 비교되는 극과 극의 성격을 오가는 박보영은 연기는 그 덕에 설득력 있다. 설득력 있는 ‘귀척’은 안티를 부르지 않는 법이다.

반면 <너를 사랑한 시간>의 여주인공 오하나(하지원)가 보여주는 ‘귀척’은 드라마 전체와는 큰 연관은 없는 무리수 같다. 그렇기에 그녀가 걸치고, 메고, 들고 나오는 세 개의 동시다발 핸드백처럼 부담스럽게 도드라진다. 하지원의 캐릭터 해석이 아쉽긴 하지만 모든 문제를 하지원에게 돌릴 수는 없을 것 같다. <너를 사랑한 시간>은 드라마 전체가 로맨스를 위한 화려한 포장지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이쇼핑하기에는 좋지만 정작 선뜻 손이 가거나 오래 기억 되지 않는 물건과 비슷하다. 오하나는 이 포장지에 그려진 예쁜 캐릭터처럼 소비될 뿐 그녀의 인간적인 얼굴은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하지원이 예쁜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연기하려 애쓸수록 오하나는 3차원의 인간 아닌 2차원의 종이인형처럼 팔랑거리다 결국 오그라든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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