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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이런 뉴스쇼를 소비하며 살아야한다는 건
기사입력 :[ 2015-08-26 11:20 ]


기어코 예능화에 성공한 뉴스쇼, 무엇이 문제인가


제6강. 뉴스쇼 (news show)

[영어] [명사]
1.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보도 프로그램의 하나.
2. 우리는 공포를 팝니다. 부디 두려워하시길.

[유사어]
안보상업주의


[엔터미디어=이승한의 TV키워드사전] 안 그래도 북한이 군사적 행동을 하네 마네 하던 지난 8월 21일, 한 TV 채널은 뉴스를 통해 북한이 탈북 인사들에 대한 테러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긴박하게 전달했다.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을 대상으로 한 동시다발적인 테러 징후는 이례적인 일이라는 해설과 함께, 어떻게 테러를 저지를지 구체적인 방법까지 친절하게 소개했다. “독약을 이용해서 암살하라… 지령이 북한으로부터 떨어졌다, 행동단계에 진입한 걸로 알고 있다, 이렇게 지금 알고 있죠.”

군사 행동이 예고되었던 22일이 되자 해당 채널은 다양한 추가 도발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정찰총국 소속 특수전 요원들의 테러, 서해 5도 지역에서의 도발, 미사일 발사 등의 무력 시위, 방송사나 은행 전산망 등을 겨냥한 사이버 테러공격 등. 우리 정부가 어떤 식으로 이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정보들이 원론적으로만 간단하게 언급되는 동안, 북한이 저지를지도 모를 일들은 끝도 없이 나열됐다.

채널을 돌려보자. 바로 그 옆 채널에선 종일 군가가 울려 퍼진다는 평양의 풍경을 소개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 뒤, 만에 하나 확전이 된다면 주저 없이 참전하겠다는 예비군들의 소식을 전했다. 현 사태를 주도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고위 당국자들의 신상이 상세히 소개되는 동안, 남측의 반응은 “북한이 언제 추가 도발을 더 할지 모른다.”는 예측과 “단호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여당 일각의 발언, 여야 간의 해법 차이를 ‘남남갈등’이라 명명하는 뉴스 등이 대부분이었다.

23일에는 SNS에 군인 아들에게 보내는 글을 올린 한 아버지의 사연도 소개됐다. “아버지의 아들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아들인 우리 군인들에게 이 나라는 의지하고 있다... 내 아들의 견장이 자랑스럽다.” 아들에게 독립된 개인이나 가족 구성원이기 이전에 국가의 부속품이기를 독려하는 아버지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SNS 상의 수많은 글 중 이 글 하나를 골라 뉴스에서 소개해야 할 만큼 이 글이 지니는 가치가 뛰어났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 가치는 정보적 가치였을까, 감정적 가치였을까?

일련의 뉴스를 취합하면 이런 흐름이 완성된다. 당장 내일 전쟁이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데 해결책은 막연하고, 정치권에선 의견 하나 제대로 모으지 못하고 있으니, 이 공포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마음가짐이라는 결론. 때마침 대통령도 이런 말을 한다. 정신적으로 먼저 승리해야 진짜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앞서 언급한 채널들은 각각 TV조선과 채널A다. 다른 채널들이 여야 정치권의 움직임이나 미국과 중국의 대응방식 등을 분석하는데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동안, TV조선과 채널A의 뉴스쇼들은 말초적인 키워드들을 엮어 공포의 서사를 직조한다. 불안에 떠는 이들이 유언비어를 퍼트린다는 소식에 ‘철없’다는 수식을 달아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사람들이 불안해 할 만한 소식들을 골라 부각시킨다. ‘[단독]’이라는 휘장을 달아 긴박감을 높이는 건 기본이다.



TV 뉴스가 정보전달 대신 두려움을 파는 데 집중하기 시작한 건 제법 오래 된 이야기다. CNN이 이라크전을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가까이에서 담아 생중계하던 순간, FOX NEWS가 버락 오바마 당시 민주당 후보의 미들네임이 ‘후세인’이란 점을 꼬집어 미국인들의 이슬람 공포증을 자극하던 순간 그것은 이미 뉴스가 아니라 공포에 기반한 ‘쇼’였다.

물론 전장의 공포든 버락 오바마의 미들네임이든 각각의 정보 값만 놓고 보면 모두 참이다. 그러나 이를 어느 비중으로 보도하고 어떤 맥락으로 배치하느냐에 따라 그 역할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정보 유통량을 통제하고 맥락을 재배치해 예능화에 성공한 ‘뉴스쇼’들은, 일찌감치 지면에서 안보상업주의를 구사해오던 신문사들이 세운 종편 채널을 통해 성공적으로 한국 텔레비전에 이식되었다.

언론사마다 독자적인 관점으로 정보를 선별해 제공하는 게 당연히 여겨지는 지금도, 대부분의 언론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단정 짓지 말 것과 감정적인 보도를 삼갈 것을 보도강령으로 정해두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이 정확한 판단을 기반으로 제 주권을 행사하려면, 편향되지 않고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확보한 정보를 기반으로 나름의 판단과 결론을 내리는 최종 단계는 시청자, 다시 말해 국민의 몫이다.

그러나 매체가 시청자보다 앞서 사실관계에 대해 단정을 짓거나 감정적으로 앞서가 버리면 그만큼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일은 요원해진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보도강령을 지키는 대신, 편향된 정보를 취사선택해 제공하고 감정에 호소하며 공포로 선동하는 것을 ‘뉴스쇼’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전쟁이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일수록 대중에게 중요한 정보는, 전쟁을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은 얼마나 진행되고 있으며, 만에 하나 위기상황이 벌어질 경우 어떻게 해야 민간인의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느냐일 것이다.

하지만 이 ‘뉴스쇼’들은 그 대신 전쟁의 위험성과 공포를 한껏 강조하고 ‘남남갈등’이란 단어로 내부의 적, 국가의 적이 있다고 암시하는데 집중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주목적은 정보전달이 아니라 공포를 판매하는 것이고, 시청자들을 주권자로 보고 정보를 브리핑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로 보고 자극을 제공하는 거니까.

상황이 이러니 남북 공동보도문이 발표된 직후에도 이번 남북 고위당국자 회담이 일궈낸 성취와 맞부딪힌 한계에 대해 냉정하게 따져보고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들과 더 힘을 주어야 할 점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정밀하게 따져보는 건 이들 언론에겐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린다.

채널A의 모기업인 <동아일보>는, 같은 날 3면 기사에선 이 위기를 원칙론으로 돌파해 ‘사실상 사과’를 받아낸 대통령을 칭찬하는 동안, 사설에선 북한이 자신들이 설치했다고 인정하지도 않은 목함지뢰 폭발 사건에 대해 단순 ‘유감’을 표명하는 데 그쳤다며 이 정도로 사건을 봉합하는 게 합당한지 모르겠다는 불만을 토해냈다. 같은 뉴스 주체가 전혀 다른 논조의 두 이야기를 동시에 실어 앞뒤 맥락을 분해해버리는 이 분열적인 보도행태. 보통 이런 걸 업계에선 전문용어로 ‘쇼하고 있다’고들 부른다. 과연 뉴스‘쇼’의 명가답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TV조선,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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