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다’부터 ‘슈가맨’까지, 유재석을 냉정히 평가하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JTBC의 새로운 예능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을 찾아서>(이하 슈가맨)은 2회분의 파일럿이다. 2회에는 첫 회보다 조금 더 인지도가 있는 ‘질투’의 유승범과 ‘풍요 속의 빈곤’의 김부용이 출연했다. <슈가맨>은 실존 가수 로드리게즈의 생애를 추적한 다큐멘터러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에서 모티브를 따와 한때를 풍미했지만 원히트 원더로 사라진 가수를 찾아 조명하고, 추억을 소환하는 노래와 토크가 합쳐진 예능프로그램이다. 유재석, 유희열 팀으로 나눠 추억의 히트송을 찾아가는 토크를 벌이고, 그 다음 2015년 버전의 일명 역주행송으로 만들어 대결을 펼친다. 이를 통해 웃음과 함께 세대 간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동시에 의미와 감동을 찾고자 한다.

그런데 이보다 사실 유재석의 첫 비지상파 출연이라는 데서 더 큰 관심을 모았다. 유재석 또한 파일럿으로 평가를 받아보겠다는 그다운 낮은 자세를 견지해서 더욱 이목을 끌었다. 문제는, 변신과 변화를 꾀하고 있는 유재석의 광폭 행보에 비해 <슈가맨>은 모든 것이 기대가능하고 익숙하다는 점이다. 시청자는 어떤 지점에서 감동을 받아야 하고, 어디서 추억을 소환해야 하며 어디는 웃긴 부분이고 어디서는 궁금해 하다 놀라야 하는지 마치 큐시트를 미리 받은 것 같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명확하게 기획한 바를 느낄 수 있다.

첫 회를 보고 호사가들은 이 기획의 문제점으로 30~40대도 추억을 공감하기 힘든 캐스팅이라는 점(출연자들도 떼창을 하지 못한다)과 그래서 20대 이하의 트렌디 문화와 접목하지 못하는 괴리를 주목했다. 하지만 이런 평은 진짜 문제는 등한시한 호사스러운 지적에 불과하다. <슈가맨>이 잘 되려면 게스트의 인지도보다 추억을 사냥하는 ‘틀’이 신선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수긍하고 몰입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정확히 기대한 딱 그대로다. 유재석과 유희열의 토크는 <무도>에서도 접했던 것이고 이 둘이 진행하는 패턴은 간판만 바꾸면 <스케치북>이 되고 <해피투게더>라고 해도 이상할 것 없이 전형적이다. 추억은 <무도> ‘토토가’가 언뜻 비치고, 추리와 잊혀졌던 누군가의 노래에 감동하는 코드는 <복면가왕>을, 과거 명곡을 리메이크를 해서 아이돌들이 부르는 역주행송은 오디션프로그램에서 본 장면들이다.



카피했다는 게 아니라 익숙한 정서적 접근과 많이 본 장면이란 말이다. 게다가 추억을 찾아 발굴 복원하는데 왜 대결을 해야 하는지부터 선뜻 이해하기가 힘들다. 추억코드와의 정서적 상충이다. 따라서 벌칙과 대결은 흥미를 전혀 끌지 못하고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이런 어수선함은 추억 콘텐츠의 한계와 가창 예능의 포맷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한다. 추억 콘텐츠는 펀치력이 있지만 지속가능한 체력은 종합격투기 선수인 밥샙 수준이다. 이런 한계를 타파하기 위해 <슈가맨>은 토크를 높은 비중으로 결합했는데, 치킨집과 달리 예능에서 토크와 노래의 반반이 맛깔나기가 어려운 법이다. 이것은 결정적인 패착이다.

왜냐면 두 가지를 이어붙이다보니 감정의 고조와 스토리의 기승전결이 이뤄지지 않는다. 토크가 주를 이루면 ‘노래가 전해주는 감성’이라는 기획 의도는 무너진다. 그런데 무대가 방점이라기엔 지금 유재석이 이끄는 토크의 비중이 너무 크다. 그래서 노래의 감동이나 놀라움을 느끼기도 어렵고 무대가 <라스>처럼 토크의 곁가지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게 됐다.



돌이켜보자.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복면가왕> 등 성공한 가창예능의 경우 토크와 노래가 양립하지만 절대적 지분은 무대 위에 있다. 노래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인데, 음악적으로 큰 기여를 할 수 없는 유재석과 <슈가맨>이 만났다는 데서부터 참사의 전주가 시작된 것이다.

노래와 추억을 찾아가는 게 프로그램의 핵심 스토리인데, 프로그램의 간판은 유재석이다. 가장 중요한 일을 유재석이 할 수 없으니 스튜디오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토크에 치중하게 되면서 가창예능인지 토크쇼인지 정체성이 불분명해지고 만 것이다. 스튜디오를 감도는 붕 뜬 듯한 어수선한 느낌은 여기에 있다.

사실, <슈가맨>까지의 유재석을 냉정하게 평가하면 강호동이 걸었던 길을 조금 늦게 걷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호감도의 차이가 워낙에 커서 다르게 보일 뿐 변화에 직면했음을 스스로 느꼈다는 점과 해쳐나가려는 전략까지 모두 비슷하다. 강호동은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변화를(<투명인간><우리동네 예체능>) 시도하거나 애초에 자신의 능력이 발휘되기 힘든 형식의 스튜디오 프로그램(<달빛프린스> <별바라기>)을 택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재석의 경우 집단 토크를 지향한 <동상이몽>과 <나는 남자다>가 전자에 가까운 예이고, <슈가맨>은 후자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유느님’이기에 더 엄격한 평을 내린 거다. <슈가맨>은 그냥 틀어놓고 봤을 때 허경환 장도연 등 웃음사냥꾼들이 도와주고 유희열 유재석이라는 호감도 높은 MC가 진행하는 만큼 편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다만, 유재석이란 기대에 걸맞은 대박이 아니라는 게 이 글의 요지다. 지상파의 마지막 장벽을 무너뜨리고 건너가서가 이 정도면 곤란하다는 거다.

유재석이 계속 원톱MC로 남기 위해선 향후 2년 안에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가 중요한데 <슈가맨>은 <공포의 쿵쿵따>나 <무한도전>처럼 그의 다음 커리어를 이어줄 교두보라기보다 지금의 재능을 이어가는 <동상이몽>과 같은 그저 그런 필모그라피로 남을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유재석의 재능이 어울리지 않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세대 간의 공감이나 웃음의 질과 양도 중요하지만 유재석의 프로그램임에도 파일럿을 한 것이라면, 기획을 버리더라도 그가 더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고,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준비해야 한다. 유재석도 예상치 못한 걸 들고 나와야 한다. 계속해서 일반인 혹은 일반인에 가까운 출연자와 패널진이 함께하는 집단 토크쇼만을 고집해서는 한계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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