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며느리’, 30대 중반 여성 파워를 보여달라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MBC 저녁 일일극 <불굴의 며느리>는 종갓집 '만월당' 여자들의 삶이 그린 가족 드라마다. 300년 전통의 고택에다가 11대 종부 할머니(강부자), 12대 종부 시어머니(김보연), 그리고 13대 종부 오영심(신애라)에 이르기까지 3대가 모두 초년에 사별을 한 처지이니, 더구나 오영심의 남편인 종손 김홍구(윤다훈)가 대를 잇지 못한 채 교통사고로 숨진 상황이니 듣기만 해도 회한과 눈물의 바다이지 싶지만 실제로 이 드라마의 분위기는 그리 암울하지 않다. 그렇다고 또 행복이 물씬 묻어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막내 손녀 순정(김준형)의 혼전 임신으로, 그리고 둘째 손자 네의 재정적 위기로 바람 잘 날 없는 하루하루 속에서도 이 가족이 잔잔한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마 태산처럼 버티고 있는 할머니의 내공 덕일 게다.

그리고 또 하나, 이 드라마가 따뜻하게 다가오는 건 로맨틱 코미디의 요소가 드라마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니 어쩌면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의 태반이 바로 그 로맨틱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몇 장면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지금 막 시작된 오영심과 연하남 문신우(박윤재)가 만들어가는 사랑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으니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양 세상에 없이 잘난 남자 주인공, 그리고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우는 꿋꿋한 여자 주인공, 거기에 시도 때도 없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 악녀 캐릭터까지 갖출 데로 다 갖추고 있는 것이다.

늘 그렇듯 로맨틱 코미디의 성패는 남자 주인공의 매력 여하에 따라 갈리고 그런 의미에서 문신우는 제격이다. 훤칠하니 잘생겼지, 명문대 출신에 월스트리트에서 실무를 쌓고 돌아온 재벌가의 차남이지, 거기에 예의 바르고 개념까지 갖춘, 그야말로 엄친아 중의 엄친아가 아닌가. 그리고 또 늘 그렇듯 이 잘나고 귀여운 남성은 평범한 콜센터 직원, 그것도 연상에다가 이미 사별한 이력이 있는, 보통 남자라면 돌아보지도 않을 오영심에게 꽂혀버린다. 솔직히 시청자 입장에서는 문신우가 왜 그토록 오영심을 좋아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물론 언제나, 누구에게나 진심을 다하는 오영심의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인간적인 호감일 뿐, 애정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어쨌거나 현재 문신우는 열일 다 젖혀두고 오영심만 졸졸 따라다니는 형국이다. 오영심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식당에 매일같이 출몰하여 일을 돕는가하면 직장 상사가 오영심을 호출이라도 할라치면 혹시나 싫은 소리를 들을까봐 귀를 쫑긋 세우고, 오영심이 퀸스 홈쇼핑 쇼핑호스트이자 홍구의 내연녀였던 임지은(김유리)과 한판 붙을 기세이자 또 어김없이 슈퍼맨처럼 나타나 해결사를 자처한다. 이런 순애보적인 사랑이 문신우의 매력을 점점 높여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반면 안타깝게도 오영심의 입지는 점점 한심해지기만 한다.





여자 나이 서른 넷, 아무리 엄한 층층시하에 십년 넘어 갇혀 지낸 처지라지만 삼십대 중반의 여자는 그리 만만히 볼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일생 중 가장 똑 부러지고 자신 넘치는 시절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몇몇 여성 중심의 인터넷 사이트들을 돌아보면 삼십 대 중반의 여성들의 활약상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오영심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십대 초반의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 모양 눈 동그랗게 뜨고 ‘나는 몰라요’하는 표정만 짓고 있을 텐가. 사은품이라기에 문신우가 주는 가방을 덥석 받긴 했어도 동서(강경현)나 시누이 연정(이하늬)이가 명품 백이 분명하다고 했으면 진위를 알아볼 생각 정도는 했어야 옳다. 언제까지 문신우의 보살핌이나 받을 생각이냔 말이다.

드라마라서 그렇지, 게다가 문신우의 모친이 속물근성으로 똘똘 뭉친 비호감이라서 그렇지, 솔직히 대한민국 부모들 중에 아들이 문신우와 같은 사랑을 하겠다고 나서면 기함을 하지 않을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되겠나. 따라서 극렬한 집안의 반대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다.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사랑을 쟁취할 결심을 하든지, 아니면 가당치 않은 상대라고 판단이 선다면 하루라도 빨리 입장 표명을 확실히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이십대 로맨틱 코미디 물의 주인공 흉내를 내며 유야무야 세월을 보내고 있는 사이 오영심의 매력은 하루가 다르게 반감되고 말 테니까.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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