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작 배우 이경영을 색다르게 활용하는 방법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영화 <치외법권>을 보고 나오는 길이다. 문제가 많은 영화였는데, 굳이 이 영화 이야기로 이번 칼럼을 채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영화에 대해 할 이야기는 단 하나. 여기에도 배우 이경영이 나온다는 것이다.

요샌 거의 모든 한국영화에 이경영이 나오는 것 같다. 올해만 해도 <은밀한 유혹>, <암살>, <소수의견>, <협녀 - 칼의 기억>, <뷰티 인사이드> 등에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뷰티 인사이드>의 경우, 나오는지도 모르고 봤다가 엔드 크레디트에서 그의 이름을 보고 어리둥절했었다. “도대체 언제 나왔던 거지?”라고 생각했던 건 잠깐. 그는 엔드 크레디트 중간 쿠키에 등장한다. 보면서 “기어이 등장하고 마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부터는 케이블 드라마 <처용 2>에도 나오고 있고 얼마 전에는 미국 드라마 <센스8>에도 나왔으니 그는 말 그대로 어디에도 있다. <베테랑>의 경우는 그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예외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배우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경영이 이런 속도로 일을 하는 유일한 한국 배우도 아니다. 영화배우로는 올해만 해도 8편의 작품에 조연으로 출연한 이종혁 같은 배우가 있다. 텔레비전까지 영역을 넓힌다면 작품수는 적을지 몰라도, 이경영보다 열심히 일하는 중견배우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경영의 다작은 그 누구보다도 눈에 뜨인다. 올해는 그의 연기 자체보다는 그 연기가 그의 다작의 일부라는 것이 더 눈에 들어올 정도다. 연기에 집중이 어려울 정도인 것이다. 몇몇 영화에서 그는 배우보다는 의무적으로 삽입해야 할 부적처럼 보인다.

지금 와서 보면 차라리 이경영이 거의 모든 한국 영화에 나온다는 사실은 그냥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게 어떨까 한다. 어느 영화에나 출연하는 중견 배우는 세페이드 변광성과 같은 일종의 지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에서 연기를 평할 때 가장 까다로운 것은 어디까지가 배우의 공이고 어디까지가 감독과 기타 스태프의 공인지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훌륭한 연기라고 생각하는 것 상당수는 배우 자신의 연기, 상대배우의 리액션, 감독의 연기지도, 촬영, 편집, 각본, 조명, 분장이 결합한 작은 교향곡이다.

이경영처럼 연기 스타일이 분명하고 다작하는 중견배우는 배우의 작업 환경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예를 들어 <은밀한 유혹>에서 그의 연기는 그의 평균에 비해 가볍고 대사처리도 건성이었는데, 그렇다면 이 영화에 출연한 거의 모든 배우들의 연기력에 제동을 거는 문제점들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은밀한 유혹>은 대사에서부터 연출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너무 노골적이라 굳이 이경영의 지표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른 영화에서 주연배우들을 비판하기 전에 이경영을 먼저 체크해볼 필요는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경영이라는 배우의 활용은 그가 속해있는 중장년 한국남성을 감독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놀랄 정도로 많은 감독과 작가들이 이런 인물들이 구체적인 어떤 집단에 속해있는지 무시하고 중성적으로 취급한다. 특히 직장 상사, 아버지와 같은 역일 경우, 존재 방식 자체가 너무나 당연시되어 중요한 질문들이 누락되고 평면화되는 것이다. 배우가 이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들의 연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피로도가 누적될 수밖에 없는데 <치외법권>이 바로 그런 결과물이다.

그밖에도 이경영 지표를 이용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떠오른다. 하지만 아무리 가볍게 시작한 이야기라고 해도 배우의 진지한 연기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단계를 건너 뛰어 곧장 ‘이경영 다작’으로 연결되는 상황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배우 자신이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그런 변신의 가장 큰 적은 ‘이경영 조연’의 존재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감독과 캐스팅 디렉터들일 것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암살><은밀한 유혹><치외법권>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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