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팔이’의 뒷맛, 처음엔 시원했는데 이젠 좀 미심쩍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과거 용산을 좀 돌아다녀본 소년소녀들에게 SBS 수목드라마의 제목 <용팔이>는 참 친숙한 제목 아닐까? 용한 돌팔이라는 드라마 상의 의미와 달리 ‘용팔이’는 용산전자상가를 기웃거린 이들에게는 또 다른 은어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실 돌아보면 1990년대 용산전자상가 주변은 전자제품이라면 껌뻑 죽는 청춘들에겐 설렘이 전자파처럼 물결치는 공간이었다. 사방팔방 어수선했지만 그곳에는 흥미진진한 판타지가 넘실댔으니 말이다. 용산은 하루하루 쏟아지는 새로운 전자제품을 손쉽게 저렴하게 맘껏 구경하며 구입할 수 있는 대한민국 최초의 전자제품 원더랜드였다.

특히 1990년대 후반 10대와 20대를 보낸 이들이라면 용산전자상가에 대한 추억들이 더 다채롭지 않을까 싶다. 저가 컴퓨터 조립제품은 물론이고 각종 게임CD와 애니메이션CD까지 그곳은 컴퓨터를 통해 이어지는 모든 가상세계를 꿈꿀 수 있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용산, 드래곤 마운틴 그 이름부터가 얼마나 판타지스러운가?

물론 용산은 밝은 상거래의 느낌보다는 불법복제와 사기판매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늘 따라다니는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은 아니지만 어수룩하면 용산 판매원의 은어인 속칭 ‘용팔이’에게 당하는 ‘호갱님’이 되는 곳이기도 했다. 소년은 용산에 들어갔다 꿈을 채울 수 있지만 반대로 탈탈 털리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여튼 SBS 수목드라마 <용팔이>는 비록 배경이 전자상가는 아니지만 그곳을 떠올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소년만화와 게임시나리오를 떠오르게 하는 구도부터가 그러하다. 가난하지만 응급수술 능력치는 최고인 김태현(주원)은 동생의 치료비를 위해 낮에는 의사로 밤에는 용팔이, 즉 용한 돌팔이가 되어 어두운 세계의 환자들을 치료한다.

하지만 김태현이 일하는 한신병원 12층 제한구역에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한여진(김태희)과 만나면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알고 보니 그녀는 진짜 식물인간이 아니라 한신그룹의 최고 자리를 차지하려는 배다른 오빠 한도준(조현재)의 음모로 잠들어 있는 병실의 공주 신세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공주 옆에는 잠든 공주를 돌보는 미스터리한 마녀 같은 황간호사(배해선)가 존재한다. 병원의 간호사부터 재벌가의 사모님까지 모든 여자들이 다 좋아하는 멋진 남자 용팔이 김태현은 이 병실의 공주 한여진을 구해내 병원에서 탈출시키는 첫 번째 임무를 수행한다.

여러 가지 황당한 설정들이 넘치지만 <용팔이>의 재미는 그 속도감에 있다. 아니, 있었다. 드라마는 첫회부터 중반에 이르기까지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이야기가 조밀하지는 않지만 딴생각을 하지 못하게끔 사람들을 붙잡아두는 힘은 대단했다.



물론 거기에는 이 만화 같은 인물 김태현을 그럴 듯한 인간미 넘치는 남자로 만들어주는 주연배우 주원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한 몫 한다. 그가 보여준 김태현 덕에 삐끗하면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의 의학드라마 버전이 될 뻔한 드라마는 그럴듯한 현실감을 얻는다. 더불어 유치해 보일 수 있는 신을 때론 멋지게, 때론 싸늘하게, 때론 달콤하게, 때론 애절하게 포장하는 드라마 자체의 연출감도 빼어난 편이다.

그렇기에 <용팔이> 6회 즉 한여진의 병실 탈출이 성공할 때까지 이 드라마에 대한 칼럼은 호의적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용팔이>를 10회까지 보고나니 무언가 그럴 마음이 시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가끔씩 등장하는 저렴한 유머들은 뭐 그럴 수 있다. 특히 그런 유머가 두철(송경철) 패거리와 맞물리면 이야기는 꽤 재미있어지기도 하니까.

김태현이 매력적인 남자주인공이나 모든 여자들이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것도 그러려니 넘어가 줄 수 있다. 그게 모든 무협물의 공통된 특징이긴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성당의 수녀님마저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 김태현을 괜찮은 남자라고 칭찬하는 건 좀 너무한다 싶긴 했다.



하지만 <용팔이>가 7회부터 보여준 느슨한 전개와 뜬금없는 멜로 진행은 실망스럽다. 이야기는 지지부진하지만 반대로 도도한 상속녀였던 한여진은 김태현에게 너무 금방 빠져버린다. 아무리 예쁜 화면으로 포장해도 뽀뽀나 빨리하고 복수나 진행하세, 정도의 흐름 같아 성의 없어 보일 정도다. 급작스러운 성당으로의 탈출은 1980년대 방화가 생각난다. 그리고 실제로 두 주인공은 성당에서 1980년대 방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들을 연출한다. 두 사람의 로맨틱한 대사들은 유치하고 신부님이나 수녀님 가난한 아이들의 캐릭터는 지극히 전형적이다.

다행히 <용팔이>는 10회 마지막 부분에서 얼추 제 길을 찾아가는 낌새를 보여주기는 한다. 병원으로 돌아온 김태현은 자신이 한도준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여진은 붕대를 친친 감은 미라 같은 얼굴로 나타나 복수를 다시 꿈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초반의 활력을 다 잃어버린 드라마에서 예전 같은 매력이 느끼기란 어째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용팔이>를 보고 난 뒷맛이 예전처럼 시원한 게 아니라 좀 미심쩍다. 이거 고작해야 시작만 번지르르한 <용팔이>의 ‘호갱님’이 되는 건 아닌가 싶은 의문 때문에.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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