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악마는 항상 디테일 속에 숨어있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최근 개봉한 영화 <오피스>는 여러 모로 좋은 장르영화여서 만족스러웠다. 취향을 타는 영화이고 몇몇 수상쩍은 구멍들이 보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의 직장 문화의 무시무시함을 장르적 도구를 이용해 이만큼 그럴싸하게 그려내는 영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아,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특히 고아성은 대표작을 하나 더 얻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할 것은 영화의 좋은 부분이 아니라 ‘몇몇 수상쩍은 구멍’ 중 하나다. 바로 지리의 문제다.

수도권 거주자로서, 나는 서울이라는 공간이 나올 때마다 주인공이 어디에 살고 어느 직장이 다니는지 신경 쓰며 관찰한다. 대부분 영화는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오피스>는 답을 내준다. 그런데 그 답이 아주 괴상하다.

이 영화에서 고아성이 연기하는 말단 인턴 이미례는 대중교통 사용자다.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우린 이미례가 신도림 2호선 지하철에서 내리는 것을 본다. 역에서 빠져나온 이미례는 버스를 타고 직장까지 간다. 신도림역을 보여주는 이유는 알겠다. 출퇴근 시간대의 신도림역은 서울에서 가장 진이 빠지는 지역이다. 나라도 넣고 싶겠다.

하지만 이미례가 일하는 회사는 용산에 있다! 당연히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왜 이미례는 그냥 1호선으로 갈아타고 용산역까지 가서 거기서 내리지 않는가?

더 이상한 장면은 뒤에 나온다. 야근하고 뒤늦게 퇴근하는 이미례를 형사가 자기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는 부분이다. 이미례는 서울 방세가 너무 비싸서 지방에서 힘겹게 출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두 사람이 탄 자동차는 부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례는 부천이나 인천에 살고 있다는 말인데, 도대체 왜 2호선 지하철에서 내렸던 것일까? 어디에 살건 1호선을 타고 용산까지 쭉 가는 게 가장 빠르다.



몇 가지 답을 생각해봤다. 부천에 산다면 7호선을 타고 대림역까지 갔다가 거기서 2호선을 타고 신도림까지 갔다가 거기서 내려서 용산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로를 타는 사람은 오로지 완전범죄를 위해 알리바이를 만들려는 살인범밖에 없을 것이다.

그 살인범이 어떻게 이런 경로로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어차피 상관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나오는 이미례의 주소를 보면 이 사람은 부천 심곡동에 산다. 다시 말해 그냥 부천역에서 1호선 급행열차를 타고 비교적 수월하게 용산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부천은 결코 ‘교통이 불편한’ 지방소도시가 아니다. 지금도 동탄신도시에서 자가용을 타고 여의도로 출근하고 있을 <프로듀사>의 탁예진 PD가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기가 찼을 것이다.

이미례의 교통수단만큼은 아니지만 그만큼이나 신경이 쓰이는 정보가 중반 이후에 하나 더 나온다. 이미례의 회사에서는 나중에 인턴을 하나 더 받는데, 손수현이 연기한 이 캐릭터는 유학파에 집안도 좋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잠실에서 용산까지 출근하는 것이 귀찮아서 용산에 원룸을 하나 따로 얻는다.

만약 여러분이 잠실에 사는 대중교통 사용자라면 용산까지 출퇴근이 귀찮을 것이다. 두 지점 사이가 멀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 쓸데없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정을 보면 이 캐릭터가 대중교통 사용자일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사람은 굳이 원룸을 얻을 필요 없이 강변북로를 타고 출퇴근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이게 굳이 언급할만큼 중요한 일일까? 처음엔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백하자면 그냥 지적질이 재미있어서 시작한 글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건 그냥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오피스>의 일그러진 지도와 교통로는 어쩔 수 없는 촬영조건의 한계 때문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신도림역과 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이 영화에 나오는 건물과 도로는 모두 어디든 존재 가능한 익명의 공간이다. 대부분 도시가 그렇다.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가 캐나다에서 찍어놓고 뉴욕이나 시카고라고 우기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경이 되는 도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시트콤 <프렌즈>는 뉴욕에서 찍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경이 되는 도시를 LA 같은 곳으로 옮겼다면 전혀 다른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도시는 캐릭터다. 하지만 종종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 의미는 종종 이상할 정도로 무시된다. 지방 도시는 종종 익명이며 서울은 그냥 모든 도시이다. 서울 사람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서울과 서울이 아닌 곳으로 구분하고 만족하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게 당연한 것은 아니며, 등장인물의 주소나 교통수단이 주인공 캐릭터의 중요한 일부인 <오피스> 같은 영화에서 이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았다는 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다들 그러지 않던가. 악마는 디테일 속에 숨어있다고. 영화를 보고 난 뒤 주제나 연기 대신 교통수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나를 봐도 그 말은 정말 진리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오피스>스틸컷]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