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팔이’ 시청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면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요새 SBS 수목드라마 <용팔이>를 보고 있는 중인데, 캐스팅이나 내용보다는 지하의사라는 캐릭터의 설정에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소재는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드라마는 썩 재미있다.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논리, 질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재미있기만 한 것인데, 이러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보는 동안 걱정이 됐다. 주인공인 의사 태현이 병원에 감금되어 있는 ‘잠자는 미녀’인 재벌N세 여진을 구해주고 복수를 하게 돕고 기타 등등 험악한 일을 하는 동안엔 시간이 잘 간다. 하지만 이 둘이 슬슬 연애를 하려고 하는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까지는 재미있는데, 둘은 연애를 하겠지, 그리고 재미가 없어지겠지”식의 글을 트위터에 올렸는데, 이게 그만 예언이 되어버렸다. 사실 예언이 아니라 예측이다. 나름 귀납적인 추리를 거친 사고의 결과였으니까. 필자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으니 굳이 자랑스러워할 것도 없다.

그래도 이들이 이 예언/예측을 이렇게 완벽하게 따라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용팔이>는 7회부터 10회까지 갑자기 재미가 없어졌는데, 이 시기는 간신히 죽음의 위기에서 구출된 여진이 태현과 연애를 하는 시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11회부터 드라마는 다시 이전의 속도와 재미를 되찾았는데, 그 시기는 여진이 다시 복수에 전념하기로 결심한 시기와 또 완벽하게 일치한다.



2회 정도 이전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용팔이>는 보통 드라마라면 2,3회 분량일 이야기를 1회에 몰아담은 드라마라 이런 식으로 계속 달리다가는 시청자들도 지치기 마련이다. 6회부터는 이야기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에 이에 적응할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속도가 떨어진다고 해서 재미가 없어지는 것까지 정당화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개연성도 없고 논리도 없고 질도 수상쩍은 이야기가 재미도 없으면 뭐가 남는단 말인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거야 <용팔이>가 그리는 로맨스가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해결해야 할 일이 많고 자칫하면 목숨이 달아날지도 있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시골로 나와 한가하게 생리대 광고 같은 예쁜 그림을 찍고 있으면 과연 시청자들이 설득이 될까? 며칠 이야기를 나눈 것을 빼면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상대방이 없으면 못살 것처럼 군다면 그게 먹힐까? 무엇보다 사람들이 로맨스를 보는 것은 그 과정을 즐기기 때문이다. <용팔이>는 그 과정을 보여줄 생각이 없다. 이들이 사랑에 빠졌으니 그냥 믿고 넘어가라는 것이다.



<용팔이>에 제대로 된 로맨스를 넣어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기본 스토리를 그리면서 그 와중에 두 사람의 감정변화를 녹여내는 것이다. 그게 바로 로맨스의 과정, 요새 말로는 썸탄다고 하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몰입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이야기의 개연성도 높아진다. 빈칸이 있다면야 시청자들이 알아서 상상력으로 채워줄 것이다. 그들도 멍하니 텔레비전을 노려보는 것 이외에 할 일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용팔이>에 그런 것들이 턱없이 부족한 이유는 이런 식의 로맨스를 당연시하고 이를 또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통속적이라고 생각하는 서사예술작품에서 가장 발목을 잡는 것도 바로 이런 것들이다. 창작자 자신도 설득이 안 되고 별로 할 생각도 없는데, 그래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밀리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의무감 강요에는 보기보다 복잡한 매커니즘이 깔려있고 작가 역시 어쩔 수 없이 여기에 복종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재미와 시청률이 지상목표인 이런 통속극에서 재미와 시청률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될까.

앞에서 말했듯 <용팔이>는 이전의 속도를 되찾고 있다. 2회 연장이 핸디캡으로 작용하겠지만 벌써부터 거기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종종 두 사람의 로맨스를 스토리 안에 그럴싸하게 녹여내는 부분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12회의 액션은 태현을 자신의 법적 보호자로 만들기 위해 여진이 그를 남편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이는 액션의 엔진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둘의 로맨스의 발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단지 이런 이야기 전개는 7회부터 10회까지의 지루한 연애 장면들이 없어야 더 효과적인 종류라 아쉬움이 크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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