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심·차화연, 이 옛날 엄마들이 따분하지 않은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공교롭게도 이번 KBS 주말드라마와 MBC 주말드라마 모두 엄마들의 이야기다. KBS는 <부탁해요, 엄마> MBC는 심플하게 <엄마>다. 엄마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이 두 드라마의 엄마들이 그렇게 신선한 캐릭터라 하긴 힘들다. KBS 주말연속극 <엄마가 뿔났다>의 김한자(김혜자)처럼 며느리, 아내, 엄마 역할 다 떨쳐내고 가출하는 여주인공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드라마의 여주인공 모두 주변에서 흔히 보는 엄마, 세련되고 멋진 엄마가 아니라 어제 봐도 한 달 후에 봐도 늘 그대로인 옛날 엄마이기 때문이다.

<부탁해요, 엄마>의 임산옥(고두심)은 반찬가게를 운영하며 한량 같은 남편과 자식 셋을 부양해온 억척어멈이다. <엄마>의 윤정해(차화연)도 별로 다르지 않다. 그녀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자식 넷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려고 아득아득 고생해 온 인물이다. 음식 솜씨 좋은 것까지 임산옥과 판박이다. 다만 <엄마>의 경우 윤정해는 조용하고 나긋한 성격이라 억척어멈 역할은 큰딸인 김윤희(장서희)의 몫으로 돌아간다. 장사에 소질 없는 엄마를 도와 장사하고 동생들을 꾸짖고 구박하며 때론 엄마까지 꾸중하는 엄마 위에 군림하는 맏딸이 김윤희다.

하여간에 다른 듯 보이나 결국 비슷한 이 두 엄마는 그간 수많은 드라마에서 반복되어온 인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기하게 <부탁해요, 엄마>와 <엄마>는 지루하거나 따분하기보다는 보는 맛이 있다. 그건 바로 엄마가 달라진 게 아니라 엄마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 달라진 시선 속에서 어쩔 줄 모르는 옛날 엄마들이 있다. 그들은 과연 어떻게 달라진 세상에 적응할까? 이 두 드라마는 그 지점을 은근히 녹여낼 줄 안다.



<부탁해요, 엄마>에서 임산옥은 자식에 관한 일이라면 오지랖이 넓다. 딸 이진애(유진)가 누명을 쓸 위기에 놓이자 회사 대표를 찾아가 딸의 정직함을 직접 호소한다. 물론 논리적인 호소가 아니라 말 그대로 ‘내 딸은 이럴 리가 없다’는 우기기에 가깝다. 또 큰 아들이 일하는 변호사 사무실에 말없이 떡을 들고 찾아갔다가 마침 사장에게 봉변당하는 큰 아들을 보고 격분해 난리를 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엄마의 모습에서 젊은 자식들은 고마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 엄마들은 늘 자식을 위해 살지만 자식의 진짜 꿈이나 바람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오히려 그녀의 자식들은 엄마의 행동에 당황하고 “아~ 쫌” 같은 반응을 온몸에서 내뿜는다. 상황이 이러니 <부탁해요, 엄마>의 제목이 의미하는 속뜻은 사실 “나서지 좀 마세요, 엄마.”의 은유적인 표현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여기에 이진애 회사의 대표인 황영선(김미숙)과 강훈재(이상우)의 친구 같으면서도 적당히 거리를 두는 모자 관계가 비교되면서 임산옥은 더 옛날 사람처럼 비춰진다.



<부탁해요, 엄마>에서의 옛날 엄마 임산옥은 이런 일을 겪으면서 스스로 위축되거나 부아를 부리기도 한다. 자식에게 보여주는 사랑을 자식들이 사랑으로 느끼지 않는 세상에서 옛날 엄마가 무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사이사이 드라마는 큰 아들이 최고라고 생각하던 고집스러운 임산옥이 무언가 달라질 거라는 걸 암시하는 부분들이 은근히 엿보인다. 과연 임산옥이 본인의 욱하는 성격으로 달라진 세상과 부딪힐지 아니면 자식에만 집착하던 과거에서 ‘나’라는 존재를 찾게 될지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지점의 변화가 궁금하긴 하다.

한편 <엄마>의 윤정해 캐릭터는 엄마보다 지금까지는 소시민에 더 방점이 찍혀 있는 듯하다. 드라마 첫회 윤정해의 독백이 암시하듯 그녀는 정말 열심히, 아주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다. 그런 까닭에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지만 그녀 생각에는 꽤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 자식들도 제법 제 앞가림은 할 정도로 자랐다.



어찌 보면 <엄마>의 윤정해는 아직까지는 자신의 삶에 큰 갈등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성실하고 조용한 소시민이었던 엄마 윤정해가 자신의 유산을 노리는 자식들에게 소송을 거는 줄거리를 배치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묵묵히 희생하며 살아온 엄마가 자식들에게 법의 힘을 빌려 꿀밤을 때리는 드라마인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가기까지 엄마 윤정해의 성격이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아직까지 잘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겉보기에 그녀가 실질적 가장으로 있는 집은 꽤 평화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얄팍한 평화가 깨지는 순간 윤정해는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겠지만 말이다.

흥미롭게도 <부탁해요, 엄마>와 <엄마> 모두 잔잔한 줄거리의 드라마다. 복잡하게 꼬인 출생의 비밀이나, 쉬운 불륜, 자극적이지만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대사들도 없다. 에피소드는 소소하고 인물들은 우리 주변사람들처럼 평범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두 작품은 이야기 자체로 제법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러니 부탁해요 두 엄마, ‘막장’의 자극 없이도 아직도 재미있는 드라마의 ‘맛’이 살아 있다는 걸 엄마들의 변화만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되길.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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