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스토리는 플롯의 기초가 되는 사건이고 플롯은 스토리를 지연, 제동, 이탈시키거나 우회시켜 낯설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앞에서 인용한 러시아 문학평론가 미하일 바흐찐의 설명이다. 이런 플롯 전략은 다시 말하건대 소설에만 쓰는 게 아니다. 수필이나, 칼럼, 논픽션에도 적용할 수 있다.

지연, 제동, 이탈, 우회 가운데 ‘지연’ 기법이 살짝 활용된 논픽션 <워터게이트>의 일부를 소개한다. (원작을 일부 수정했다.)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에 관련된 소식통에 따르면 존 N. 미첼은 법무장관 재직 당시 공화당의 비밀 자금을 직접 관리했고 그 자금은 민주당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사용됐다.

미첼은 1971년 봄부터 자금 인출을 직접 승인했으며 이 시점은 그가 법무부를 떠나 닉슨 대통령의 선거책임자가 된 3월 1일보다 거의 1년 앞선다고 몇몇 믿을 만한 소식통이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중략)

번스타인은 반론을 듣기 위해 대통령재선위원회의 파월 무어에게 연락했다. 무어는 30분 뒤 위원회의 입장을 전했다. “나는 포스트의 취재에 사실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정보를 전하고 있다. 무어는 우리는 더 이상 논평할 생각이 없다.” 구체적인 사항으로 반박하려 하지 않았다. (중략)

번스타인은 재선위원회가 반론을 내놓지 않으면 미첼이 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이면서 법무장관과 말해보겠다고 무어에게 말했다.

번스타인은 뉴욕의 에섹스하우스에 전화를 걸었다. 710호에 전화를 연결해달라고 했다. 미첼이 나왔다. 번스타인은 목소리를 확인하고 서둘러 수첩에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질문을 포함해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두고 싶었다.



통화하는 동안 번스타인은 야수의 비명을 닮은 미첼의 첫 반응에 놀랐다. 번스타인은 그 순간 미첼이 수화기를 든 채 급사해버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는 또 격렬한 증오에 넘치는 미첼의 어조에 협박을 당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미첼의 추악한 말에 충격을 받았다. 미첼이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후 번스타인은 타이프를 치기 시작했다. 흥분한 상태여서 자판을 정확히 두드리기 어려웠다.

미쳴: 예.

번스타인: (자신을 소개한 후) 이런 시각에 전화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실은 내일 신문에 당신이 법무장관이었던 시절 위원회의 비자금을 관리했다는 기사를 게재합니다.

미첼: 제기랄. 당신이 그렇게 말했어? 뭐라고 했는데?

번스타인: 첫 문장 일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세 단락을 읽었다. 미첼은 “제기랄”이라고 했다.)

미첼: 모두 엉터리야. 당신, 그것을 신문에 싣겠다고? 모두 거짓말이야. 만약 그걸 신문에 보도하면 캐티(캐서린) 그레이엄의 젖꼭지를 커다란 탈수기에 집어넣고 말거야. 빌어먹을! 이런 욕 나올 소리는 처음 듣는군. (여기서 탈수기는 롤러 사이에 세탁물 등을 끼워넣고 롤러를 돌려 물을 짜내는 방식의 도구를 가리킨다.)

(하략)

전화 문답을 시간 순서에 따라 바로 전하지 않고, 충격 혐오 급사 등 단어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뜸을 들이는 얘기를 앞세웠다.



* 번스타인은 미첼의 말을 그대로 기사에 전하려고 한다. 편집주간 벤저민 브래들리는 ‘het tit’만 빼라고 지시한다.

Katie Graham's gonna get her tit caught in a big fat wringer if that's published.

‘her tit’이 빠져도 문장이 된다.

Katie Graham's gonna get caught in a big fat wringer if that's published.

* 번역된 책에선 winger를 착유기라고 옮겼다. ‘fat wringer’를 한 단어로 여긴 듯하다. 그보다는 ‘big fat’이 한 묶음이다. 크다는 뜻을 강조한 표현이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1972년 6월 백악관과 닉슨 대통령 재선위원회가 꾸리고 지시한 비밀조직이 벌인 일련의 정치공작이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도청 시도가 발각되면서 알려졌다. 닉슨 정부는 정치공작을 부인하고 은폐했지만 워싱턴 포스트의 두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집요한 추적 끝에 대대적으로 이뤄진 정치공작의 실체를 폭로했다. 닉슨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는 결국 1974년 8월 미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진 사퇴했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smitten@naver.com

[사진=영화 <대통령의 음모>스틸컷, 책 <워터게이트: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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