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공처가 남성들의 연대가 못내 불편한 까닭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탐정: 더 비기닝>은 아마추어 프로파일러와 베테랑 형사가 짝을 이룬 버디 무비로, 코믹과 추리의 배합이 절묘하다. 도통 합이 맞을 것 같지 않은 두 남자의 티격태격이 코미디의 주축을 이루고, 충격적인 연쇄살인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이 추리극으로서 묘미를 지닌다.

듀나는 최근 칼럼 ‘<탐정>, 이래놓고 속편을 기대한다면 과욕이 아닐까’에서 이처럼 합이 맞지 않는 콤비의 버디무비가 가능하냐고 반문했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은근한 웃음 포인트인 것을 감안하면 나쁘게만 볼일도 아니다. 영화가 주인공의 추리과정을 치밀하게 보여주지 않고, 중요한 지점들마다 혼자 ‘영빨을 받은 듯한’ 주인공의 대사로 설명하며 건너뛰는 점은 아쉽지만 그것도 넘어갈만하다. 사건의 규모가 굉장히 크고 복잡하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 내에 사건의 전체 틀을 보여주는데 어려움이 많았으리라 이해되기 때문이다.

◆ 캐릭터 코미디와 추리극의 절묘한 조화

코믹 추리극을 표방한 <탐정: 더 비기닝>의 전체적인 만듦새는 코미디로서도 추리극으로서도 기대 이상의 재미를 준다. 가벼운 코미디와 묵직한 살인사건 사이에서 균형추를 잡기 위해, 최대한 애드리브를 자제한 채 캐릭터나 상황자체에서 웃음이 터지도록 노력하였고, 사건의 잔학함이 덜 부각되도록 노출의 강도를 조절한 것이 주효했다.

영화는 시리즈를 염두에 둔 듯 시트콤 같은 캐릭터 코미디를 구사하는데, 특히 강대만(권상우)의 인물묘사가 흥미롭다. 그는 만화방 사장이자 국내 최대의 미제살인사건 카페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이자 프로파일링 동호회 회장으로 관할서 형사의 친구라는 자격으로 자주 사건현장에 출몰하여 얄팍한 훈수로 공무집행을 방해한다. 그는 생계노동을 방기하다시피하며 자신의 꿈을 쫒는 철없는 애 아빠로 아내(서영희)의 울화를 자아낸다.



TV토크쇼 <안녕하세요>에 나올 법한 고민유발자 강대만은 아내 몰래 만화방을 빠져나와 젖먹이를 품에 안고 사건수사에 뛰어든다. 바바리코트로 폼을 잡지만, 손에는 뽀로로 수첩이 들려 있는 그는 멋지고 진지한 탐정과는 거리가 멀다. 강대만은 덜 자란 ‘키덜트’ 같은 인물로, 데뷔시절 권상우가 코미디에서 보여주었던 질감을 잘 전해준다. 즉 <동갑내기 과외하기><신부수업> 등에서 보여주었던 잘생겼지만 단순하고 빈틈 많아 보이는 매력이 그대로 느껴진다. 원래 완벽하지 않은 캐릭터이기 때문에, 대사처리가 나쁜 권상우의 단점도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버럭’ 캐릭터인 노태수(성동일)도 나쁘지 않다. 마초인척 허세를 떨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며, 강력계 형사라는 자부심으로 무자격자인 강대만을 구박하고 무시하지만 점점 그의 추리에 빠져든다. 센 척하지만 허당인 셈이다.



◆ 젠더적인 의미를 품은 살인

<탐정: 더 비기닝>은 잔혹한 연쇄살인을 품은 영화이다. 피해자들은 모두 여성들로 6명이나 된다. 그들은 피 칠갑의 사건현장에서 훼손된 시신으로 발견되거나, 잘 보이는 장소에 유기된 채 전시된다. 그들 중에는 성폭행 피해자로 보복살인을 당한 자도 있고, 소녀도 있다. 세 명의 여성은 외도를 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다. 연쇄살인의 전모는 결국 교환살인인데, 이는 아내의 외도를 응징하려는 남편이 다른 남성들과 연대하여 남의 아내를 대신 죽인 것이다. 이는 마치 <암살>에 언급된 ‘살부회’를 연상시킨다.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은 자신의 아버지를 차마 죽일 수가 없어서 친구의 아버지를 대신 죽여주는 모임이 있었다고 말한다.

<탐정: 더 비기닝>의 남편들은 아내가 살해당하면 가장 먼저 남편이 용의선상에 오르며 알리바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여 일종의 ‘살처회’를 구성한다. 즉 남의 아내를 대신 죽임으로써 자신의 아내를 응징하는 효과를 얻으며, 자신은 수사망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살부회’에서 아버지를 죽이려는 이유는 아버지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작위를 받은 반민족 행위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죽이는 게 대의에 맞지만, 인간의 정리 상 아버지를 직접 죽이지는 못하겠기에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살처회’는 어떤가. 보통 불륜한 아내를 죽이는 남편은 분노, 배신감, 복수심 등에 휩싸여 살해한다. 이는 아내와의 관계에서 빚어진 온갖 내밀한 기억과 애증이 분출하는 상태로, 흔히 치정(癡情)이라 불리는 특정한 감정의 폭발이다. 그런데 교환살인에서 치정은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내 아내를 대상으로 삼지 않아도 해소될 수 있는 냉철한 감정으로 치부된다. 즉 아내에 대한 원한은 교환의 방식으로 매개되고 지연되더라도 결과적으로 내 아내가 죽기만 하면 해소될 수 있는 감정인양 취급된다.

뿐만 아니라 아무런 개인적인 원한이 없는 모르는 여자를 죽이면서도 ‘내 아내를 죽이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죽이는 게 가능해야 교환살인이 성립된다. 여기서 치정은 개인적이거나 특수하거나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호환가능하며 영속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즉 감정의 차원을 벗어나는 어떤 일반론이 전제되는 것이다.

요컨대 교환살인에서도 불륜한 아내(들)는 남편(들)의 손에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는 어떤 관념이나 당위가 필요하다. 가령 ‘살부회’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은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매국노 아버지들은 ‘민족’이라는 대의에 입각해 보았을 때 죽어 마땅한 자들이라는 공통의 인식이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살처회’가 성립하려면 불륜한 아내들은 ‘정절’이라는 대의에 입각해 보았을 때 죽어 마땅한 자들이요, 내 아내나 네 아내나 바람을 피운 년들은 모두 똑같기 때문에 그에 대한 증오와 응징은 호환가능하다고 보는 공통의 인식이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되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관념이 없다면, 구성원들 사이의 믿음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저 여자를 죽이듯이, 저 친구도 반드시 내 아내를 죽여 줄 것이라는 믿음을 어떻게 수립할 수 있을 것인가. 이념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면 적어도 우리는 아내의 불륜이라는 최악의 고통을 공유한 남성들이라는 뜨거운 자기연민을 바탕으로 한 ‘고통의 연대감’이라도 있어야 한다. 이념에 의해서건 자기연민에 의해서건, 이는 강력한 남성연대에 의한 살인이다.

<탐정: 더 비기닝>이 다루는 범죄는 불륜한 아내들을 죽이는 것이 옳다는 인식이나 감각을 공유하는 남성들끼리 연대하여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는 여성들을 집단 살인한 사건이다. 불륜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남성연대가 벌인 일종의 증오범죄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단순히 치정에 의한 아내살인을 다룬 영화(이를테면 <해피엔드>)나 익명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을 다룬 영화(이를테면 <살인의 추억><추격자>)보다 더 명징한 젠더적 의미를 갖는다. 즉 ‘여성일반에 대한 남성일반의 혐오와 적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영화는 “아내가 죽으면, 가장 먼저 남편을 용의선상에 올려라.”라는 수사의 도그마를 들려주고, 재확인 시켜준다. 이러한 도그마는 배우자에 의한 여성의 살해가 얼마나 흔한지를 보여준다. ‘한국 여성의 전화’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의 수는 120명이고,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은 49명이며, 피해여성의 주변인인 살해되거나 미수에 그친 수는 35명이다.

한국은 여성에 대한 살인이 유독 많은 나라이다. 2013년 유엔의 발표에 따르면, G20 국가들 중에서 살인사건 피해자 중 여성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은 51%로, 미국 23%, 프랑스 34%, 영국 34%, 호주 28%, 중국 30%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는 심지어 인도, 남아공, 사우디아라비아 보다 높은 수치이다. 여성 살해는 단지 재현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의 문제인 것이다.

영화는 잔인하게 살해된 여성들의 시신을 나열할 뿐, 이들이 어떤 감정과 공포를 느끼며 죽어갔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마지막에 이르러 급하게 와달라는 남자의 문자를 받고 나간 여성이 비오는 골프연습장에서 낯선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피 칠갑이 되도록 끌려 다니며 위협당하는 장면이 유일하다. 영화가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생략한 사건의 잔혹성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탐정: 더 비기닝>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이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하거나 그들의 살인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눈빛과 표정들, 그리고 평범한 가장으로 보이는 일상적인 행동들은 이들이 저지른 범죄가 얼마나 끔찍한 사고에 바탕을 둔 것인지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 ‘공처가’ 남성들의 연대?

언론시사회 직후 간담회에서 필자는 감독에게 영화의 살인사건이 여성혐오를 품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공개적으로 던졌다. 감독은 여성혐오의 뜻은 전혀 없으며, 그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강대만이 얼마나 아내에게 잡혀 살며 마지막엔 이혼당하지 않으려고 싹싹 비는지를 길게 찍었노라고 부연하였다. 그러나 살인사건의 여성 혐오적 성격을 상쇄하기 위해 강조한 강대만과 노태수의 가정사 역시 여성혐오의 다른 판본이다.

영화는 과연 강대만과 노태수가 얼마나 아내에게 잡혀 사는지를 강조한다. 수사하러 나가고 싶은 강대만은 아내의 눈을 피해 도망치거나 얼렁뚱땅 아내를 속인다. 이를 알게 된 아내는 번번이 화를 내고 강대만은 쩔쩔 맨다. 영화는 또한 노태수가 밖에서는 마초라고 큰소리치지만 집에서는 아내의 명령에 따라 가사노동 하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담는다. 이처럼 강대만과 노태수가 ‘공처가’로 묘사되기 때문에, 영화 속 여성의 지위는 격상되었으며 여성비하는 없다고 볼 수 있을까. 여기서 ‘그렇다’고 답하는 것은 여성주의에 대한 참혹한 오해를 대변한다.

강대만의 아내는 남편에게 생계노동을 닦달하고 가사노동을 안기는 성가신 인물로 묘사된다. 영화는 프로파일러로 꿈과 재능을 지닌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내가 잔소리와 바가지를 퍼붓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준다. 강대만은 아내와 실랑이를 벌여가며 사건을 해결하고, 이혼하겠다는 아내의 발목을 잡고 매달리며, 마침내 탐정이라는 꿈이 실현될 듯한 행운도 거머쥔다. 그러나 끝까지 그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아내와 진지하게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은 없다. 아내는 남편의 꿈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고, 현실논리에 입각해 남편을 옥죄는 존재로만 묘사된다.

이처럼 여성을 나와 전혀 다른 존재로 박제화 시키는 것이 여성혐오의 또 다른 판본이다. 여성을 자신과 같은 동류의 인간으로 생각한다면, 그녀에게도 꿈과 현실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 것이다. 물론 그녀에게도 꿈이 있을 테지만, 영화나 남편은 전혀 관심이 없다. 그녀의 현실은 어떤가. 만화방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남편 대신 생계를 꾸리기 위해 ‘빨간펜’ 선생으로 일해야 하고, 젖먹이와 유치원생 아이를 키워야 한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남편이 ‘공처가’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철없고 무책임한 인물이라는 게 중요하다.

남성들이 생계활동 대신 꿈과 우정을 쫓아 밴드활동에 전념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 <즐거운 인생>에서 주인공(정진영)의 아내는 청소년 딸을 둔 중등교사로, 남편이 없더라도 큰 곤란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정대만의 아내는 상황이 훨씬 열악하며, 남편의 생계노동과 가사노동이 필요하다. 영화는 아내의 현실에 주목하지 않고 정대만이 아내와 벌이는 ‘톰과 제리’ 놀이를 보여주며, 그가 아내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에 응원의 눈길을 내비춘다.



영화에서 두 남자가 ‘공처가’임을 강조하는 묘사는 실상 아내를 대상화시키는 것임과 동시에, 두 남성의 유대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작용한다. 강대만을 무시하던 노태수는 자신도 집안에서 ‘공처가’임을 들킨 순간부터 급격하게 강대만과 친해진다. 강대만도 노태수를 어려워하지 않고 편안하게 대한다. 사실 남성이 가사노동을 한다는 사실은 부끄러울 것도 없고 자랑스러울 것도 없는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사노동을 하는 남편들’이라는 특별한 자기연민이 이들 사이를 공고하게 맺어준다.

영화 <탐정: 더 비기닝>은 ‘바람피우는 아내를 둔 남편들’이라는 자기연민이 남성들의 유대를 결속시키고 아내들에 대한 집단살인으로 이어진 것을 보여주는 한편, ‘바가지 긁는 아내를 둔 남편들’이라는 자기연민이 남성들의 유대를 강화하여 어떤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지를 보여준다. 즉 영화는 여성을 죽이는 남자들과 그들을 수사하는 남자들을 이중으로 배치하지만, 두 층위의 남성들에게 모두 남성연대는 강조되고 아내는 끝끝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남는다. 과연 이중의 의미에서 여성 혐오적인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탐정: 더 비기닝>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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