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캠프’ 이승환이 던진 음악 프로그램에 대한 질문들

[엔터미디어=정덕현] SBS <힐링캠프>에 게스트로 초대된 이승환은 거기 앉아 있는 500인의 방청객이자 MC들(?)의 사연을 듣고 거기에 딱 맞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이를 테면 잘 만나던 남자친구가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는 사연을 듣고는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들려 준더거나, 만난 지 천일이 된 연인에게 ‘사랑하나요’를 들려주고, 또 결혼을 앞둔 여성이 상대방에게 전하는 곡으로 ‘화려하지 않은 고백’을 들려주는 식이다.

가수의 꿈을 좇다보니 소홀해지는 내 사람에게 확신을 주고 싶다는 사연자에게 ‘그 한 사람’을 불러주자 그 가사 ‘어디 가지 않아요. 여기에 매일 있을게요.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외롭지 않게 소홀해지지 않게’라는 구절이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연자의 마음이 이입되면서 이승환의 노래가 그의 노래지만 타인의 사연을 담은 노래로 다가오는 마법 같은 경험을 주는 것.

사실 이승환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같은 곡 속에 ‘그녀에게 감사하기 어쨌거나 사랑했던 기억으로...’ 같은 가사나, ‘화려하지 않은 고백’에 ‘꽃보다 예쁜 지금 그대도 힘없이 지겠지만 그 때엔 꽃과 다른 우리만의 정이 숨을 쉴거야’ 같은 가사가 이처럼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토록 많은 곡들을 만들고 불러온 이승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런 음악에 대한 색다른 경험은 그 자체로 우리네 음악 프로그램들의 천편일률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에 경종을 울려준다.

이것은 무수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노래하는 당사자들의 사연을 담는 방식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다. 즉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흔히들 ‘감성 팔이’라고까지 비아냥대는 노래하는 이의 사연을 깔고 무대에 오르는 방식과 달리, 듣는 이들의 사연을 담아 노래에 감성을 더하는 방식이다. 노래의 청자들을 노래의 주인공으로 끌어들이고 거기에 시청자와 다른 관객들도 공감한다는 이 방식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요즘처럼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고 싶은 대중들에게 잘 들어맞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끝물이라고 얘기되는 것은 그 스토리텔링 방식이 이미 대중들에게 너무나 익숙해져 심지어 식상해진 탓이다. 스토리란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 때 맥이 빠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떤 인물이 나와 어떤 사연을 깔고 노래를 부르고 당락을 거듭하다 누군가는 톱10에 들고 누군가는 탈락하는 이 이야기 구조는 이제 대중들에게 그다지 흥미롭지 않게 다가온다.

그래서 <복면가왕> 같은 가면을 씌우는 새로운 이야기 틀을 가져오는 것이지만 이것은 신인들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이미 기성가수의 재발견을 하는 프로그램일 뿐. 그러니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신인들은 넘쳐나고 그들을 효과적으로 데뷔시키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무대가 없는 게 현재의 답답한 현실이다. 왜 모두들 신인 발굴은 ‘오디션’과 ‘서바이벌’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슈퍼스타K7>의 라이벌 미션을 보다 보면 누구 하나를 붙이고 누구 하나를 떨어뜨리는 일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두가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출연자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취향의 차이가 누군가는 합격으로 누군가는 탈락으로 이어지게 한다면 그건 불행한 일이고 나아가 비효율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이 아닐까.

새로 시작한 <톱밴드3>가 굳이 오디션 방식을 고집한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왜 도입부에서 장미여관의 성공스토리는 드라마타이즈하는 과감한 방식을 쓰고, 정작 출연한 밴드들의 이야기에는 다시 오디션의 틀로 회귀할까. 첫 출연 팀이었던 스트릿건즈의 멤버가 학교 급식 알바를 한다는 이야기는 일하는 모습과 록을 하는 모습의 병치를 통한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보여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힐링캠프>가 보여준 건 김제동식의 토크콘서트와 이승환의 콘서트의 결합 같은 형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음악과 사연들을 엮는 방식의 참신함은 짧은 시간에도 음악이 어떤 스토리텔링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음악 프로그램의 형식이 오디션밖에 없는 건 아니다. 이제는 좀 새로운 형식을 고민해볼 때가 아닐까 싶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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