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예뻤다’가 만드는 사랑이란 이름의 퍼즐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를 보다 보면 문득 이 드라마의 제목을 다시 곱씹게 된다. <그녀는 예뻤다>란 제목이 그리 인상적인 건 아니다. 여주인공 김혜진(황정음)의 이름처럼 익숙해서 무심하게 스쳐지나가는 주어와 서술어에 가깝다. 세상에 그녀들은 많고, 예쁜 사람들도 적지 않으며, 그녀는 예뻤다라고 말하는 남자들도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초등학교 시절 첫사랑 앞에서 자신을 첫사랑 여자라 칭하지 못하는 여주인공의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될 때쯤 <그녀는 예뻤다>의 맥락은 좀 다르게 읽힌다. 그녀는 예뻤다, 라는 과거형의 문장에는 씁쓸한 한숨 같은 것이 배어 있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김혜진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난 첫사랑 앞에서 숨은그림이 되었다.” (김혜진)

이 드라마의 주인공 김혜진은 모든 남자들의 첫사랑에 어울리는 여자아이다. 초등학교 시절 수줍은 뚱보였던 지성준(박서준)은 예쁘고, 마음씨 착하고, 공부도 잘 하는 혜진과 단짝이 된다. 성준의 첫 친구이자 첫사랑이었던 김혜진은 완벽한 천사였다. 물론 비가 내리면 변해버리는 악성곱슬만 빼고 말이다. 사랑인지 우정인지 애매한 이 관계는 성준이 미국으로 떠나면서 혜진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하지만 15년 후 성준이 미국에서 돌아오면서 추억은 추억에서 머물지 않는다. 혜진은 초등학교 시절 꼬마 뚱보 성준을 떠올리며 약속을 잡는다. 하지만 멀리에서 다가오는 그를 발견하는 찰나에 피해버리고 만다. 잘생기고 멋진 남자로 변한 성준과 달리 혜진은 더 이상 예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의 모습 중에 남은 건 언제나 머리를 곧게 펴 감추고 다니던 악성곱슬이 전부였다. 현실에서 멋진 남자가 된 성준을 만날 용기가 없는 혜진은 그렇게 다시 추억 속으로 숨어버린다. 대신 친구 민하리(고준희)를 잠깐 동안 김혜진 아바타로 내세운다. 그리고 성준은 추억 속의 모습처럼 여전히 아름다운 가짜 김혜진을 보고 환히 웃는다. 그녀는 여전히 예뻤다. 초등학교 시절 첫사랑의 기억 그대로, 성준이 상상했던 대로.

그런데 진짜 김혜진과 가짜 김혜진의 등장으로 이 사랑의 퍼즐은 복잡해진다. 가짜 김혜진 민하리는 아름다운 외모 덕에 수많은 남자들을 만나고 쉽게 걷어찬다. 하지만 정작 어떤 남자에게도 안락함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진짜 자신을 숨기고 만난 남자 성준에게 하리는 사랑이란 감정을 느낀다.

한편 혜진과 성준이 잡지사 ‘Most’에서 부편집장과 파견 관리직의 상하관계로 만나면서 두 사람의 퍼즐 또한 흥미로워진다. 성준의 추억 속에만 남으려던 혜진은 어쩔 수 없이 코앞에서 그를 만나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거기에 성준은 혜진의 능력 없음을 냉정하게 비난한다. 더구나 추억의 이름인 김혜진이 그녀의 이름이란 사실이 불쾌하다는 말까지 한다.



그런데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성준은 차차 김혜진에게 또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의 따스한 마음이나 특유의 밝은 분위기가 성준을 흔든다. 그리고 그건 성준이 마음으로 기억하는 진짜 김혜진의 모습이기도하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어른이 된 김혜진이 아니라 초등학교 시절 소심한 뚱보였던 자신의 친구이자 첫사랑인 김혜진. 비록 외모는 상상했던 것과 다르지만 그녀의 태도 하나하나에서 성준은 무의식적으로 김혜진의 모습을 읽어낸다.

그 사이 혜진이 빗길에 벌어진 교통사고 장면을 보고 트라우마 때문에 공황에 빠져 길가를 헤매는 성준을 발견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혜진은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이자 이제는 상사가 된 성준에게 다가가 자신의 웃옷을 씌워준다. 그렇게 도로 한복판에 주저앉아 비를 피하는 그 순간이 두 사람에게 의미 있는 한 조각의 퍼즐이 된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같은 사건 같은 장면이 두 사람에게는 소중한 추억의 퍼즐이었다. 그때도 혜진은 비를 맞는 성준에게 비옷을 씌워주면서 말한다.

“이제 내가 너랑 같이 있어 줄게. 내가 네 우산이 돼 줄게.” (김혜진)



성준은 초등학교 시절 첫사랑과 이름이 같은 관리 김혜진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더구나 그녀는 성준이 기억하는 초등학교 시절 그녀와 똑같은 부분들이 많았다. 악성곱슬이었고, 비를 싫어했고, 신호등의 파란불이 들어오면 “가시오!”라고 말하면서 걸었다. 반대로 그가 혜진이라 믿는 하리는 만나면 만날수록 과거 추억 속의 모습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그녀는 예뻤지만 예전 첫사랑의 느낌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성준의 김혜진에 대한 마음은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 때문에 다시 달라진다. 르누아르의 <시골무도회> 그림 퍼즐 한 조각이 그것이다. 그 퍼즐에는 춤추는 두 사람을 숨어서 지켜보는 일명 빼꼼이 누나가 있었다. 성준은 작별의 순간에 그 빼꼼이 누나 그림 퍼즐조각 뒤에 작은 우산을 그려 혜진에게 선물한다.

하리는 자신이 김혜진이란 사실을 증명하려 혜진이 갖고 있던 퍼즐조각을 몰래 훔친다. 성준은 하리에게 퍼즐 조각을 돌려받지만 표정은 행복하다기보다 어딘지 우울하다. 더구나 그는 그 퍼즐 한 조각을 액자에 끼워 보관하는 <시골무도회> 퍼즐에 끼워 넣지도 않는다. 성준은 가짜 김혜진을 사랑하게 될까? 아니면 김혜진이란 추억의 첫사랑을 지우고 새로운 사랑으로 김혜진에게 다가가려는 걸까? 이 사랑의 퍼즐이 어떤 방식으로 맞춰질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물론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완성된 퍼즐은 대개의 로맨틱코미디가 그러하듯 큰 무리수가 없는 한 행복한 두 사람의 무도회가 될 건 틀림없다(여주인공 김혜진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는 스트레스 때문에 간암에 걸리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하지만 퍼즐의 재미는 완성이 아니라 조각난 그림들을 맞춰가는 그 순간이다.

<그녀는 예뻤다>는 영리하게도 코믹한 에피소드를 유연하게 이끌어가면서도 그 조각그림이 어떤 방식으로 이어질지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부스스한 악성곱슬과 안면홍조가 도드라져도 이 드라마의 퍼즐이 하나씩 맞춰질 때마다 여주인공 김혜진은 점점 더 사랑스러워진다. 감기약에 취해 입을 벌리고 고개를 사방으로 흔들며 꾸벅꾸벅 조는 모습까지 전부. 그리고 드라마가 끝날 때쯤엔 어쩌면 <그녀는 예뻤다>라는 평범한 문장이 요래 요래 생긴 사람의 마음을 밀고 당기는 사랑의 암호문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듯 누군가가 예쁘게 느껴지는 건 그 사람의 외모만이 아니라 다양한 변수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이니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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