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게 된 이유는 음악이 많은 걸 치유해주는 것 같고, 특히 ‘남자의 자격’이 아픈 데를 다 치료해주더라고요. 저희가 작년에 우리 아이를 잃었기 때문에, 그러고 나서 부르는데 예전에는 별 생각 없이 불렀는데 ‘둘이 함께 가야한다는’, 그런 가사더라고요.”

- KBS2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청춘 오디션’에서 김영희, 장명천 부부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전쟁터가 되어버린 주말 예능 시간대,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처음 ‘청춘 합창단’이 결성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지금과 같은 성공을 예측한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성공 예측은커녕 지난해의 ‘하모니’ 성공에 빌붙으려는 안일한 기획이라는 지적까지 받은 바 있지 않나. 나 역시 ‘청춘 합창단’ 오디션에 응모할 자격이 있는 나이이지만 이 프로그램의 앞날이 심히 걱정됐었다. 무엇보다 요즘 젊은이들이 얼마나 나이 많은 사람들을 기피하는지 익히 알고 있기도 하고 나부터도 교양 프로그램도 아닌 예능에 연세 있으신 분들이 나와, 그것도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어떤 재미를 줄 수 있을지 짐작키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언젠가 분위기 좋기로 이름난 카페에 앉아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다 뜻밖의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젊은 여성 몇이 들어오려다 멈칫하더니 휑하니 뒤돌아 나가버리는 게 아닌가. 한 마디로 이 아줌마들이 물을 흐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같은 상황이 두어 차례 반복되고 나니 바늘방석에 앉은 양 눈치가 보여 결국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데 혹자는 오죽 아줌마들이 시끌벅적했으면 질색을 하고 나갔겠느냐 하겠지만 결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나이 어린 여성들에게 서운하다 할 일도 아닌 것이 나 역시 어딜 가나 할아버님들의 옆 자리는 되도록 피하는 편이 아니었나. 솔직히 나이가 많다는 건 뭐라 말할 수 없이 조심스럽고 불편한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지원 자격이 되는 사람 입장에서조차 앞날이 암울한 기획이었으니 젊은 층들이 볼 때는 두말하면 잔소리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전철이나 버스에서 자리 비키라고 호통 치시는 노인들의 대거 등장을 예상했을지도 모르겠다. 꼬장꼬장하거나 독불장군이거나, 어느 장소에서든 욕을 서슴지 않는 존재가 보통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노인들이지 싶으니까.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린 ‘청춘 합창단’의 실체는 놀랍기 그지없었다. 물론 제작진이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고른 장면들이긴 하겠지만 그분들의 열심히 살아온 세월에서 묻어나는 깊이 있는 연륜과 순수한 열정에 어느 누군들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있으리. 아마 지휘를 맡은 김태원의 멘토 되시는 윤학원 선생님이야 예외겠지만 박완규와 ‘남자의 자격’ 멤버들도 예상치 못했던 감동이었을 게다. 특히나 MBC <위대한 탄생>에 잠깐 얼굴을 비췄을 적에는 한 까칠했던 박완규가 보여주는 예의바르고 다정다감한 모습들은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노래를 좋아하며 한 평생을 살았지만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는 단 한 번도 주어진 적이 없었다는 할머님에게서 자신의 어머니를 본 멤버도 있을 테고, 병수발로 몇 년을 보낸 남편이 안쓰러워 직접 편지를 써 보낸 아내로 인해 참가하게 된 남자 어르신에게서 아버지를 본 멤버도 있지 싶다. 이처럼 참가자들의 얘기 하나 하나는 그저 남모를 노인들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얘기인 것이다.

그중 나는 15년 전에 먼저 떠나보낸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노사연의 ‘만남’을 수없이 부르셨다는 어머니와 지난 해 역시 외아들을 사고로 잃은 후 노래를 통해 슬픔을 이겨냈다는, ‘다정한 연인들’을 부르신 부부가 마음에 남는다. 나의 아이로 태어난 것도 운명, 어찌하여 앞세우긴 했지만 죽는 날까지 한시 반시도 잊을 수 없는 것도 운명, 그리고 그렇다고 슬퍼만 하며 지낼 수는 없기에 음악으로 슬픔을 다잡았을 그분들의 눈물어린 운명이 같은 부모 입장에서 너무나 절절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바삐 사느라 남의 삶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을, 특히나 노인들의 얘기에는 귀를 기울이 여유조차 없었을 ‘남자의 자격’ 멤버들에게는 뜻 깊은 경험이 되지 싶다. 이로 인해 부모님에 대해서도, 자식에 대해서도,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생각해보게 되지 않을까? 굳이 ‘남자의 자격’ 안에서의 ‘청춘 합창단’의 의미를 묻는다면, 누군가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도 남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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