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블러 처리, 이런 작은 검열은 마약과도 같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얼마 전 홍상수 단편전을 보러 상상마당에 갔었다. 영화 틀기 전에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전기 다큐멘터리인 <에이미>의 예고편을 틀었는데 화면이 좀 이상했다. 팔 부분이 이상하게 흐릿했던 것이다. 예고편이 나오는 동안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팔은 계속 블러 처리되어 뿌옇게 나왔는데 알고 봤더니 그건 문신 때문이었다. 성인 관객이 어른들 상대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러 들어갔는데, 극장에서는 우리가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문신에 영향을 받아 팔에 엄마 이름이라도 새길까봐 블러 처리를 해주고 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극장에서 멀쩡한 영화 예고편을 보기도 힘들어진 세상이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예고편이란 영화로 들어가는 대문과도 같은 것이라 당연히 공을 들여야하겠지만 지금 극장에서 틀어주는 건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파일과 정확히 같은 종류다. 외국 영화라면 오히려 인터넷을 통해 보는 예고편의 화질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얼마 전에 전세계를 달군 <스타 워즈: 깨어난 포스>의 예고편도 일반 극장에서 로고 달고 레터박스 노출된 흐릿한 화면으로 틀어봤자 무슨 감흥이 있겠는가. <에이미>의 극장상영 예고편이 우스꽝스러운 블러로 얼룩진 것도 그 때 틀어준 예고편이 인터넷 파일과 정확히 동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어쩔 수 있겠는가.

예고편이야 그렇다고 치자. <에이미>의 본편이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블러 처리를 하고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블러 처리는 본편의 영역을 넘본다. 얼마 전에 개봉된 애니메이션 영화 <쿠크하트: 시계심장을 가진 소년>은 서커스 장면에 나오는 모 캐릭터의 담배를 몽땅 블러 처리했다. 아마 이들의 알리바이는 전체관람가라는 등급일 것이다.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다. 이전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수많은 전체관람가용 어린이 영화가 이 검열의 위협에 노출된다. <101 달마시안>의 크루엘라 드 빌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애벌레는? <피노키오>엔 피노키오가 시가를 피우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들은 더 이상 온전한 상태로 방영할 수가 없는 것일까?

<영웅본색>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의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이 곧 재개봉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 그 장면에서 주윤발이 위조지폐로 담배에 불을 붙이는 장면을 기억하시는지? 주윤발 폼잡기 중 가장 유명한 장면으로 <영웅본색>을 대표하는 바로 그 장면 말이다. 이번 재개봉판 포스터엔 그 장면이 없다. 포스터에 담배를 넣는 게 두려워 담배를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새 포스터에서 주윤발은 불붙은 지폐에 호호 입김을 불고 있는데,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청소년의 흡연을 줄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를 위해 흡연장면을 드라마에 넣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는 금연자들의 영토가 되었고 나는 이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흡연 장면을 일부러 검열하는 것이 과연 청소년 흡연을 막는 데에 도움이 될까? 굳이 그렇게 흡연을 나쁘게 생각한다면 왜 알코올은 검열하지 않는가?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끼치는 위해는 알코올이 더 크다. 이는 그냥 검열을 위한 검열이고 그 목적은 청소년 흡연 예방이 아니라 그냥 귀찮은 일에 말려들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이런 작은 검열은 마약과도 같다. 사람들이 블러가 붙은 지저분한 화면을 용납하기 시작한다면 그들은 결국 더 큰 것들도 양보하기 시작하며 결국 진짜 검열에도 무관심해질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동안 청소년 흡연을 줄일 수 있는 진짜 해결책을 찾는 노력은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멀쩡한 화면에 지저분한 얼룩을 남기는 이 쓸데없는 작업의 가치는 무엇인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영웅본색><에이미>포스터·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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