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예뻤다’, 어떻게 사랑에 빠지고 싶은 여심을 사로잡았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그랬다. 그녀는 예뻤다. 아니 예뻐졌다. 과도한 주근깨 터치와 아줌마 파마머리의 여주인공은 시청률 4%대로 시작해 20%대까지 치솟는 외모 변신만큼이나 반전을 일궈냈다. 그 사이 황정음과 박서준, 그리고 연기 변신에 성공한 최시원의 매력이 무르익고 야구 여신의 미소까지 더해졌다. 출발은 걱정 반 기대 반이었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정통 로맨틱코미디는 그렇게 올 한해 최고의 트렌디 드라마로 거듭났다.

사실, 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는 재미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최시원의 연기 외에는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최근 드라마의 성공요인이자 평가 기준인 영화만큼 웰메이드한 연출, 각본의 신선함, 현실 반영 정서, 장르적 완성도 등과도 크게 상관없다. 기본적으로 로맨틱코미디의 정석에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구조와 갈등, 팬시한 배경 속에서 평범한 주인공을 둘러싸고 능력자들이 사랑과 우정을 유쾌하게 때로는 지고지순하고 애틋하게 펼친다. 한마디로 극중 황정음(김혜진 역)이 그리는 것처럼 동화 같은 이야기다.

설정이나 배역, 배경도 남다르지 않다. 로코물 시청자층에 소구되는 패션잡지사라는 배경, 젊고 유능하지만 까칠한 팀장, 재벌가의 후손, 한 가지씩 특징 있는 조연, 그리고 우리나라 드라마 특유의 복선의 과거사, 좁은 세상에 다 얽히고설키는 관계까지 기존 로맨틱코미디와 드라마에서 봐온 많은 부분이 그대로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낸 것은, 사라졌다는 트렌디 드라마의 젊은 시청자들을 다시 본방사수 모드로 돌린 건 캐릭터의 매력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로맨스의 기운 덕분이다. 황정음을 제외하면 어쩌면 이 동네에서 새로운 얼굴들이다. 예쁘고 패션에 눈이 가는 고준희(민하리 역), 새로운 ‘국민 팀장’으로 거듭난 박서준(지성준 역)도 그렇고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최시원(김신혁 역)은 기꺼이 두 번째 남자주인공 역할을 맡아 느끼하고 자신만만한 이미지에서 친근하고 정이 가는 배우로 폭을 넓혔다. 이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만큼이나 드라마 팬들의 사랑의 폭도 그만큼 넓고 깊어졌다.



그리고 황정음(김혜진 역)이다. 압살할 만한 외모보다 어려운 환경에도 구김이 없이 맑고 발랄하고 씩씩한 에너지로 남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황정음표 ‘캔디’는 익히 봤던 그대로다. 청순가련형과는 달리 씩씩한 귀여움과 밝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특징에 <미생>의 여파인지 번듯한 직장을 구하진 못했지만 성실하고 싹싹한데다 못하는 일이 없는 팔방미인 능력자의 모습을 더했다.

극중 혜진은 늘 그랬듯 하리보다 외모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주변의 사랑을 무지하게 받는다. 이처럼 남녀 간의 현실적 격차에서 로맨틱코미디는 출발한다. 한마디로 평범이하였던 혜진이 예뻐지고, 성장하고 사랑받는 다는 신데렐라 스토리다. 이는 황정음에게는 살짝 미안한 말이지만 예전 천송이(전지현)를 동경하듯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시청 모드, 즉 좀 더 사랑의 감정을 더 가까이 체험할 수 있는 판타지를 제공한다. 결말의 경우의 수가 굉장히 한정적이고 로맨틱 코미디의 새 장을 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녀는 예뻤다>의 순정만화 같은 등장인물들은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사랑을 할 때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 사랑을 둘러싼 설렘과 안타까움 등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시청자들은 그녀가 성장하고 자리를 잡는 과정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동시에 ‘사랑받는’ 감정을 질투하지 않고 함께 젖어든다. 모든 조건을 갖춘 두 가지 유형의 남자에게서 구애를 받는 혜진의 애틋하고 설레는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다. 9회의 빗속 포옹 장면 이후 라디오만 켰다하면 ‘안아줘요’라는 노랫말이 흐르며 소매를 접어주는 본격 달달한 연애가 시작된 그 이후 폭발적으로 높아진 시청률 수치는 <그녀는 예뻤다>가 전해주는 판타지가 제대로 공감을 사고 있음을 확인해준다. 판타지의 작동. 이는 로맨틱코미디의 본령이라 할 수 있다.

캐릭터의 긍정적인 매력과 기운, 그리고 로맨스의 달달함은 기이한 설정도 녹여버린다. 로맨틱코미디의 주인공들은 사랑이란 바통을 두고 이어달리기를 벌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주자들의 순서가 꽈배기처럼 꼬여 있다. 좀 삐딱하게 본다면 어려서부터 자매처럼 지내며 현재 룸메이트인 두 여자가 한 남자와 순차적으로 사귀게 되는 좀 젊은이들의 ‘막장’ 코드가 가미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설정을 깊은 우정, 그리고 사랑, 찰진 코미디 속에서 불편함을 날려버리고, 순수한 로맨스와 웃음만을 남겼다.



로코물은 결국은 행복으로 향하는 정해진 그림 속에서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가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드는지가 관건이다. 넘지 못할 벽에 차가워 보였던 남자가 먼저 “너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여자야” 라는 말도 던지고 좋아한다고 쫓아다니는 남자는 속 깊은 남자인데다 호텔 스위트룸에서 생활하는 이런 판타지에서 생성된 감정을 얼마나 일상으로 손실 없이 전달할 수 있을지가 포인트다. 그런 면에서 익숙한 황정음은 더욱 무르익어서 나타났고, 최시원은 <무한도전>에서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매력을 극 속에 풀어냈다. 고준희는 뜯어보는 재미, 박서준은 새로운 설렘이다. 이러한 캐릭터의 힘이 젊은 세대가 빠져나갔다는 드라마 판에서 사랑에 빠지고 싶은 여심을 사로잡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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