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 : 량체살인기’, 참을 수 없는 진실의 하찮음!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특종 : 량첸살인기>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스릴러의 외양에, ‘기레기 언론’의 현실을 담은 블랙코미디다. 영화는 특종과 오보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방송기자를 통해 우리사회에서 각종 기사들이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되는지를 풍자한다.

더불어 그 거대한 회전판의 속도에 깔려 진실이 얼마나 무가치하게 폐기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코미디의 외양을 띄지 않지만, 굉장한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 속 사람들은 모두 진지하지만, 보는 사람은 갑자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다. 영화가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엄청난 아이러니가 솟구치며, 어이없음과 씁쓸함이 뒤섞인 결말은 음미할 거리를 던진다.

<특종 : 량첸 살인기>는 <더 테러 라이브>에 비견될 만하다. 조정석, 이미숙, 이대명 등 모든 출연진의 연기가 훌륭한데, 특히 원톱의 주연을 맡아 섬세한 감정변화를 표현해낸 조정석의 연기력이 돋보인다. 영화는 탄탄한 짜임새와 폭발력 있는 시나리오로 관객을 쉴 새 없이 몰아붙인다.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장르의 재미를 한껏 선사한 영화는 결말에 이르러 언론에 대한 풍자와 사회전반에 대한 고발을 오롯이 담아낸다.

◆ 특종과 오보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다

방송사에서 해고된 허무혁(조정석) 기자는 임신한 아내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는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무심코 제보자가 남긴 주소로 찾아간 허무혁은 그곳에서 연쇄살인범의 집을 발견한다. 쪽지 하나를 황급히 집어 들고 그곳을 빠져나와 경찰에 신고하였지만, 어라? 이상하게 조용하다. 경찰이 비공개수사 중이라 아무도 눈치를 못 챈 거라 판단한 허무혁은 ‘살인자의 쪽지’를 보도하며 복직된다. 허무혁이 터뜨린 특종으로 여론은 발칵 뒤집히고, 경찰은 방송국에 찾아와 제보자를 넘기라고 윽박지른다.



그러나 직접 용의자를 뒤쫓게 된 허무혁은 쪽지의 내용이 1930년대 중국소설 <량첸살인기>의 한 대목이며, 자신이 쫓은 용의자가 범인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일생일대의 오보를 낸 허무혁은 사태를 무마시키기 위해 꼼수를 써보지만, 시청률의 손맛을 느낀 국장(이미숙)은 사태를 더욱 키운다. 허무혁은 엄청난 거짓말을 했다는 심리적 압박으로 초죽음이 되어 가는데, 진짜 살인자가 허무혁이 흘린 거짓 정보에 맞춰 살인을 해줌으로써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특종 : 량첸살인기>는 특종이 오보로 뒤집히고, 오보가 진짜 사실로 둔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사이 허무혁은 실직의 나락에서 복직을 넘어 승진까지 하게 된다. 또한 이혼남이 될 것인지 아기아빠가 될 것인지 중대 기로에서 변곡점을 맞는다. 사태가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피해자와 가해자, 악인과 선인이 뒤집힌다. 그리고 허무혁의 서랍 속에는 끝끝내 말해지지 못한 진실이 잠들게 된다.



◆ 진실,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이런 어처구니없는 소동극의 중심에 서게 된 허무혁은 결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진실과 정의와 범죄를 대하는 감각이 상식적이다. 허무혁이 제보자를 만나는 시퀀스에서 그의 행위에 의심을 품을 관객은 없을 것이다. 제보자가 가리킨 집은 정말로 살인자의 집처럼 보였고, 쪽지는 영락없는 살인자의 쪽지처럼 보였다. 허무혁이 제보자에게 여관비를 쥐어주고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이해되지 못할 행동은 없다.

물론 쪽지를 보도하기 전에 검증을 했어야 옳았다. 허무혁이든 국장이든 말이다. 그러나 복직과 시청률에 대한 욕심은 그 과정을 누락했고, 특종을 내려는 욕망과 선정적인 기사를 소비하려는 욕망에 의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여기에 경찰의 헛발질과 들끓는 여론이 가세한다. 허무혁이 사태를 중지시키거나 되돌리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행위는 의도와 반대로 사태를 진전시킨다.



영화에는 아이러니의 극치를 보여주는 두 장면이 나온다. 하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범인이 허무혁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허무혁의 오보와 그에 대한 여론의 펌프질로 살인자는 소설속의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에 맞춰 행보를 취하겠다고 말한다. 진실과 허구가 상호 침투하는 모습을 이보다 아이러니하게 그릴 수 있을까. 또 하나의 장면은 허무혁이 사직서를 들고 국장을 찾는 장면이다. 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들지만, 국장은 서두에 자른다. “나도 다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은 아니요, 믿고 안 믿고는 시청자의 몫”이라는 국장의 말은 사태를 단적으로 요약한다.

그렇다. 방송국은 진실을 보도하는 곳이 아니다. 처음 광고주 인척의 납품비리를 고발했다고 기자를 자르는 것에서 알아보지 않았던가. 국장은 허무혁의 말을 진실이라 믿어서 보도한 게 아니라, 장사가 된다고 생각했기에 보도한 것이다.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특종이 중요하다. 경찰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 단서들을 뭉뚱그려 용의자를 검거하는 데만 열을 올린다.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적이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회전판에서 누군가는 제몫을 챙긴다. 방송국은 시청률 대박을 쳤으며, 허무혁은 차장으로 승진하였고, 범인은 의인이 되었다. 하다못해 제보자도 3천만 원을 챙기지 않았던가. <량첸살인기>를 공연하던 영세극단도 상종가를 쳤을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피해를 당한 사람들도 있다. 엉뚱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도 있고, 평생 잊지 못할 ‘살인의 추억’을 갖게 된 허무혁도 피해자라면 피해자다.

이렇게 돌아가는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다. 거대한 거짓의 흐름에 파도를 타면서, 침몰하지 않고 내 몫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 이것을 깨달은 허무혁은 아기의 진실을 담고 있는 종이를 태워 버린다.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파김치가 된 허무혁이 진심을 다해 아내에게 호소했듯이 “작은 일에 기뻐하며 다독다독 사는 것”이 중요하다. 얼떨결에 이 교훈을 받아든 허무혁의 머리 위로 오늘 일용할 양식, 아니 오늘의 뉴스들이 쏟아진다. 어제의 진실이 무엇이든 그것은 과거가 되어버렸다. 잔치는 끝났고, 각자 몫을 나눠 가졌다. 오늘의 뉴스들이 어제의 뉴스들을 밀어낸다.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이.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특종 : 량체살인기>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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