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보는 이들의 감정이입을 차단하는 독특한 전략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새벽녘의 호숫가를 걸어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안다. 그곳은 고요하고 아름답고 풀냄새와 물비린내 밴 공기는 향기롭다. 하지만 새벽의 물안개 낀 호수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아름답고 유혹적이지만 우울한 미녀 같다. 호수에서 물귀신이 나타나 사람을 잡아간다는 무서운 이야기는 그렇게 퍼져 나온 말인지도 모르겠다.

SBS 수목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은 호숫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치아라는 작은 호수라는 의미이며 이 마을은 평화롭고 고요한 시골로 외부에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캐나다에서 외할머니의 손에 자란 한소윤(문근영)은 어느 날 편지 한 통을 받는다. 발신자의 주소는 아치아라, 작은 호수가 전부다. 거기에 더해 아치아라에서 원어민 교사를 모집한다는 팸플릿을 보게 된 그녀는 그곳에서 일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한소윤이 아치아라의 중학교에 원어민 교사로 부임한 첫날 이 마을의 평화는 깨진다. 그녀가 호숫가를 둘러싼 숲에서 백골만 남은 시체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 후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은 호숫가에 사는 마을 사람들과 시체의 이야기로 변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과연 시체와 사람들 중 무엇이 더 섬뜩한 존재일까?

<마을>에서 발견된 시체는 미술학원 강사인 김혜진(장희진)이다. 긴 머리에 우울한 표정을 머금고 있는 그녀는 살아 있을 때도 물귀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녀는 비와 슬픔 그리고 비밀스러움을 머금은 존재다. 여자들은 그녀를 외면하거나 경멸하고 남자들은 그녀에게 매력을 느낀다. 특히 도위원이자 해원철강의 대표인 서창권(정성모)과는 불륜관계였다. 그 때문에 창권의 아내인 윤지숙(신은경)과 심하게 다툰다.

그런 그녀에게 친구가 되어준 건 아이들이다. 그것도 평범한 아이들이 아니라 바보라고 놀림 받는 바우(최원홍)와 죽은 사람을 본다는 소문이 도는 도위원의 딸 서유나(안서현)가 전부였다. 같은 마을에 살지만 사람이 아닌 물귀신 같은 존재, 김혜진이 사라지자 그녀와 친구가 아니었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안도한다.



하지만 <마을>은 김혜진의 백골이 등장하면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체는 말이 없지만 <마을>은 이 시체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의 사연 하나하나를 풀어낸다. 알고 보니 평화로운 이 마을에는 수많은 속내를 감추고 사는 인물들로 가득하다. 오히려 표면적으로 괴팍함이 드러나는 여장 취미남 아가씨(최재웅)나 대놓고 속물인 서창권, 윤지숙 부부는 그리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선한 얼굴을 가장한 마을의 약사이자 서창권의 처제 강주희(장소연)가 사뜩한 눈빛을 드러낼 때 소름끼친다. 겉보기엔 번듯하나 서창권의 아들 서기현(온주완)이나 미술선생 남건우(박은석)의 행동이나 표정에서는 무시무시한 비밀들이 엿보인다. 그 외에도 마을 사람 하나하나가 크게 혹은 작게 비밀이나 이중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시체는 끔찍하지만 말이 없는 진실 그 자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겉과 속이 달라 오히려 더 끔찍하고 무시무시하다. 숨겨놓은 얼굴을 들킬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하며 <마을>을 보다 보면 시체의 존재보다 살아 있는 사람을 시체로 만든 살아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아치아라가 더욱 섬뜩한 공간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마을>은 이 소름 돋는 미스터리를 풀어가면서 기존의 드라마와는 다른 전략을 취한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드라마는 계속해서 보는 이들의 감정이입을 차단한다.

실질적인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문근영이 연기하는 한소윤이지만 이 작품에서 여주인공의 감정은 최소한으로 절제되어 있다. 죽은 줄 알았던 언니를 아치아라에서 찾게 되고 심지어 그 언니가 이미 죽은 시체인 김혜진일지도 모르는데도 그러하다. 드라마는 철저하게 그 감정의 울렁거림을 차단한다. 여주인공의 감정에 보는 이들이 몰입하면 아치아라에 사는 인물들의 소름끼치는 이중성을 놓칠까 가려두듯이. 그렇기에 한소윤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꼬마유령 캐스퍼처럼 언니의 비밀을 찾아 마을을 떠돈다.

그리고 유령 같은 여주인공 한소윤의 좌표를 따라가다 보면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 <마을> 아치아라가 보여주는 거대하고 소름끼치는 그림이 언젠가는 보일 것도 같은 예감이 든다. 아직까지는 많은 것들이 안개에 감춰져 있고 그것이 이 드라마의 매력이거나 혹은 쉽게 포기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하겠지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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