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네 로봇’ 이러다 로봇은 사라지고 할매들만 남겠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관찰형예능, 나영석 사단, JTBC, MBC의 예능들이 한바탕 붐을 일으키고 난 후, 바람은 잦아들었다.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주말이든 평일이든 구관이 명관이라고 그 시간대에 터줏대감으로 군림한다. 새로운 예능이 없는 게 아니다. 공중파 방송사에도 ‘파일럿’이 정착되어 연휴 때 선을 뵈었고, 유재석의 <슈가맨> 등 tvN과 종편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예능을 선보이고 있다. 그 뒤로도 강호동, 이경규 등의 빅네임들까지 출격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흐름을 바꾸거나 이슈를 집어삼킬만한, 새로운 재미를 선보이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0월 21일 첫 방송을 시작한 <할매네 로봇> 역시 수요 예능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라디오스타>에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다. 기획은 꽤나 신선하다. 이제는 tvN의 왕자라 불릴 만한 장동민과 예능에 첫 도전한 배우 이희준, <꽃보다 청춘>으로 선한 이미지를 각인한 바로가 휴머노이드 로봇을 시골로 데려가서 어르신들의 일손을 돕고 외로움을 덜어드리는 일상을 담는 관찰형 예능이다.

신선한 발상과 기획의도에 담긴 의미는 선하고 명확하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일손을 덜고 적적함을 달래드리면서 따뜻한 정과 효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것. 따라서 그에 걸맞게 예능 청정인이라는 배우 이희준과 순박한 이미지를 가진 아이돌 바로를 섭외했다. 이희준은 대구에서 연극을 하다 오로지 연기 하나만을 보고 서울로 올라온 수수한 청년다운 자신의 인생사가 배역의 캐릭터와 말투와 외모에 녹아들어 있는 배우다.

물론 연애사는 생각보다 조금 화려하지만 지난해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로 손꼽힐 <유나의 거리>의 ‘창만’ 역이 딱 이희준의 본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순박하고 정이 많으며, 어른들을 싹싹하게 잘 모실 것 같은 바른 이미지를 갖고 있다. B1A4의 바로 또한 아이돌답지 않은 순박하고 정이 많은 모습을 나영석 사단의 예능을 통해서 보여줬던 인물이고 넉살 좋은 장동민까지 더해져 섭외에서의 색깔과 역할도 어느 정도 기대감이 들었다.



거기다 어느 정도 재미를 담보할 수 있는 레퍼런스가 있었다. SBS <자기야-백년손님>은 구수한 할머니들이 히트시킨 예능이다. ‘제리 장모’나 후포리의 ‘후타삼’ 패밀리는 요즘 그 어떤 예능인들보다 순도 높은 웃음사냥을 한다. 할머니들은 세월이 빚어낸 담대함 덕에 방송이든 뭐든 거칠 것 없다보니 상황이나 맥락을 의도치 않게 뒤흔들면서 배꼽을 흔든다.

<할매네 로봇>은 할머니들의 예측불허 말발이 어느 정도 기대되는 시골예능에 전혀 어떤 역할을 할지 예상할 수 없는 로봇을 파트너로 데려왔다. 시골마을에 최첨단 로봇이 전면으로 등장하는 이른바 ‘하이테크 시골예능’이라는 반은 기대감이 도는 그림이고, 반은 신선해서 궁금한 그림이었다.

허나, 도전은 언제나 아름답지만 이 아름다움이 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따뜻한 정을 사람만이 아니라 로봇이라는 새로운 주체가 함께한다는 건데, 여기서 난감함이 발생한다. 따스한 정, 시골 어르신들의 순박함, 그런 어르신들을 위하는 출연자들의 마음씀씀이는 다 좋지만 이것을 엮는 연결고리인 로봇에 계속 에러가 발생한다.



현재 로봇기술로는 시골 일손을 돕는 머슴의 역할을 할 수 없고, 값비싼 장난감 이상의 역할 수행이 어렵다. 그렇다보니 로봇과 어르신들, 로봇을 통한 출연자와 할머니들 간의 교감이 안 된다. 그저 신기한 물건 정도이다. 계란을 깨는 일도, 설거지도, 농사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로봇의 역할이 한정적이면서 그저 저건 무슨 물건인고 하는 정도로 바라보는 정도이니 일상 속에서 할머니들의 이런저런 반응과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내기도 어렵고, 로봇 기술에 놀라는 재미도 없다.

현재 로봇기술보다 훨씬 앞선 기획의도는 결국 재미의 상실로 이어졌다. 로봇, 시골마을의 할머니, 그리고 출연자들 이렇게 삼각 편대가 서로서로 친하지 않고, 어색하다보니 그 어떤 스토리의 창출이 어렵고 시청자들도 어색하다. 2회부터 로봇은 벌써 소외되기 시작한다. 할머니가 세탁기 없다고 이희준에게 사달라고 장난치는 게 나름의 포인트였을 만큼, 막상 로봇을 데리고 가니 할 일이 없다. 아예 봉사단 콘셉트나 손주 콘셉트로 연예인들이 가는 것만 못한 애매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다음 회부터는 에너지로 방송하는 강남을 긴급투입하면서 로봇과는 점점 더 멀어질 모양이다. 사실, 시골마을은 농사일을 제외하면 슬로라이프고 어떻게 보면 훨씬 무료하다. <자기야-백년손님>이 이런저런 이벤트를 만들고 엮는 것은 이유가 있다. 로봇이 삐끗하면서, 로봇 관리자로 함께하는 출연자들의 역할이 애매해졌다.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상은 스토리로 엮이지 않는다. 로봇에 대한 기대를 접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새로운 예능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을 품고 시작했지만 모든 기대치를 하향조정해야 할 상황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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