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수, 다시 때가 올 때까지 견디는 것도 실력이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박명수를 좋아한다. 이 일을 업으로 삼기로 했을 때 박명수는 거의 대부분의 영감을 주었다. 2007년 당시 몸담았던 매체에 박명수에 대해 대략 이렇게 썼다. “이것은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다. 소심하면서 호통과 질투, 시샘으로 뒤범벅된 남자를 대표하는 시대의 아이콘. 그는 기본적으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우리네 습성을 솔직 뻔뻔하게 거리낌 없이 드러내 웃음으로 만들었다. … 루저 정신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일단 나만 살아남고 보자’식의 치졸하고 옹졸한 이기심을 가진 박명수의 인기는 사회현상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전복적인 캐릭터와 대화의 맥락을 해체하는 그만의 어법으로 ‘거성’이란 은하계를 완성했다.” 다시 말해 박명수는 모든 것이 꾸며진 우리나라 예능 ‘쇼’에 처음으로 인간미, 진짜 인간의 캐릭터를 갖고 들어와 성공했다.

그랬다. 2000년대 중반 SBS에서 제8의 전성기를 외치던 박명수는 불편함과 불친절함, 속물근성을 고스란히 내세워 웃음으로 연결시켰다. 거지같은 성격의 중의어이기도 한 ‘거성’ 박명수의 괴팍하고 못난 캐릭터는 리얼버라이어티 탄생의 뮤즈가 됐고, 오늘날 예능이 장르적, 정서적 폭을 2차선에서 16차선으로 대폭 늘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고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박명수는 축구선수 팔카오처럼 늘 일류팀에 머물고 있지만 전성기의 퍼포먼스는 잃었다. 성장한 동료들이 찔러주는 식도패스를 연거푸 뱉어내면서 스트라이커는 외로워졌다. 게다가 팀도 예전 같지가 않다. 새 멤버 광희의 부적응이 길어지면서 하하는 짝꿍을 잃었고, 톱MC반열에 오르고 있는 정형돈은 무언가 몸을 사린다. 남은 것은 올드보이 셋인데, 박명수는 웃음사망꾼이 되었고, 정준하는 원래 지분이 제일 적다. ‘박명수 웃음장례식’ 콩트에서 유재석의 구타가 터진 건 그래서 재밌고 의미가 있었다.



그런 이때 이 얼마 만에 박명수만을 위한 <무한도전>인가. 박명수의 치유와 위로를 빌미로 모두의 근심을 거름삼아 한회를 통째로 박명수에게 할애했다. 그가 그토록 원하는 원톱방송을 마련하면서 축 처진 박명수에게 충격요법인 동시에 보양식을 시원하게 말아먹도록 마련했다. 오랜만에 찰진 콩트도 마련했고 하하의 말처럼 느낌이 딱, ‘망’ 스멜이 나는데 인천과 상암, 강남으로 사방팔방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컬트적 시도를 감행했다. 결과는 그랬다. 세련된 오늘날 예능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모두가 민망하고 불편해지는, 시청자가 도리어 미안해지는 예능의 절벽을 보고 말았다.



방송이 진행될수록 반전이 아니라 박명수가 얼마나 망하는지에 초점이 모였다. 시청자들도 제작진과 출연자와 마찬가지로 계속 박명수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가방공장 동생의 의리는 더욱 짙은 안쓰러움을 자아냈다. 박명수의 초조함과 짜증이 섞인 불편한 심기는 일부에겐 웃음의 원천이 되었으나 반대급부로 ‘웃음사망꾼’이란 말이 더 퍼져나갔다. 간만에 김신영 등 콩트에 능한 후배들을 불러서 웃음꽃을 피웠지만 웃음과 비등하게 <마리텔>에서와 마찬가지로 방송사고에 가까웠다는 반응이 갈렸다. 이런 엇갈리는 반응이 박명수에 대한 여전한 기대와 깊은 실망이 교차하는 현주소다.

10년차 베테랑 겸 국내 최고의 예능 제작진들이 왜 몰랐겠는가. 위기를 기회로 보겠다는 뻔한 동기 속에는 사실, 이열치열, 이이재기의 전략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망과 망을 붙여서 어떤 식으로든 결과를 보려는 것이다. 잘되면 기적이고, 안 되면 그것으로 분위기 환기를 할 수 있다.



어차피 박명수가 낸 아이템은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지만 어쨌든 소화해야 한다. 마침 박명수가 <마리텔>에 나가 참패를 하고 돌아왔다. 계속된 <무도>내에서 부진을 그 안에서 묻기보다 <마리텔>이라는 다른 무대의 성적으로 들춰내는 게 훨씬 부담이 적다. 밑져야 본전이고, 박명수에겐 어떻게 결과가 흘러가든 자극제다. 박명수는 잘되기보다 좀 잘 안 됐을 때 더 웃음을 생산할 거리가 많은 캐릭터니까. 그래서 그냥 두면 예능 단두대의 이슬로 순식간에 잊힐 <마리텔> 출연을 굳이 증폭시켜 박명수를 다시 이슈화했다. 반응이 어쨌건 시선은 다시 모아졌고,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주목을 받게 됐다.

결론적으로 ‘망했으니’ 이것으로 박명수가 되살아났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배고파봐야 뭔가 나온다고 스스로 말했지만 박명수가 언제 열심히 한 적이 있었나(열심히 하는 게 콘셉트인 시절이 있었나). 호통과 쭈구리를 반복하며 지금처럼 화를 내고, 본인을 앞세우다가 잘 터지면 웃기는 거고 아니면 늘 짜증을 내왔다. 기다려야 한다. 때는 다시 온다. 이런 컬트적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박명수 캐릭터의 장점이자 힘이다. 그때까지 지금처럼 견디는 게 실력이다. 이제 2행시는 버리자. 웃음사망꾼으로 바닥을 찍었으니 예능씬에 영감을 주던 그 시절의 폼으로 올라오길 바란다.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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