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게 외국어 연기는 언제나 매력적인 도전이긴 하지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올해 이만희 감독의 영화 <만추>를 재해석한 작품을 무대에서 두 번 보았다. 하나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오리지널 <만추>의 시나리오를 낭송한 <만추를 읽다> 공연이었고, 다른 하나는 김태용 감독의 리메이크 버전을 각색한 <만추> 무대극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공연을 더 몰입하며 봤다. 김태용의 리메이크 버전에는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언어이다. 시애틀을 무대로 한 중국 여성과 한국인 남성이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는 작품이다. 다시 말해 번역극이 되는 것이다.

순수한 번역극이라면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태용의 <만추>에서는 3개국어가 공존한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연극은 영어를 모두 한국어로 바꾸지만 중국어는 남겨놓는다. 김태용의 영화에는 여자주인공 애나가 중국어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남자 주인공 훈이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받아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이는 필수이다.

하지만 무대에서 이런 선택은 영화만큼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애나가 영화에서 중국인인 것은 주연배우가 중국배우 탕웨이이기 때문이다. 애나가 가장 중요한 고백을 중국어로 하는 것은 중국어가 탕웨이가 가장 잘 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경우 이건 모두 불필요한 핸디캡이 된다.

개인적으로 굳이 김태용의 작품을 각색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 <만추>는 오리지널 영화가 나온 뒤로 꾸준히 시대와 배경을 옮겨가며 다시 이야기되어 왔다. 무대연극은 이 원형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굳이 특정 영화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이런 접근법을 택했다면 언어의 핸디캡 때문에 애를 먹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언어의 문제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작품이 하나 더 있으니, 그건 얼마 전에 개봉된 제메키스 감독의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이다. 이 영화는 뉴욕 쌍둥이 빌딩에 줄을 걸어 놓고 줄타기를 한 곡예사 필립 프티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프티는 프랑스인이고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프랑스인이다. 뉴욕이 배경인 영화지만 프랑스 영화여야 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로버트 제메키스가 감독하고 조셉 고든 레빗이 필립 프티를 연기한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졌다. 어쩔 수 없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곡예 장면을 만들려면 1970년대 뉴욕시를 백지에서부터 재창조해내야 하는데, 이런 건 아직 할리우드에서나 가능하다. 당시 필립 프티를 연기할 만한 나이의 프랑스 배우들 중 충분한 국제적 스타성을 갖춘 인물도 찾기 힘들다.

그 결과 영화는 아주 이상해진다. 한 무리의 프랑스 젊은이들이 어떻게든 영어로 이야기하기 위해 기를 쓰는 장면이 반복되는 것이다. 한 번이면 말을 하지 않겠는데, 새로운 사람이 팀에 들어올 때마다 같은 질문이 반복이 된다. “왜 넌 자꾸 영어로 이야기를 하니?” 이 영화에서 답은 “뉴욕에서 일을 벌일 거니까 미리 연습을 해야지.” 인데 그렇게 그럴싸하게 들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자꾸 비슷한 변명이 반복이 되다보니 오히려 줄타기보다 더 신경이 쓰인다. 불어로 말하거나 불어 억양의 영어로 말하는 조셉 고든 래빗의 연기에 신경이 쓰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안은 있었을까? 차라리 그냥 처음부터 불어려니, 하고 영어로 했다면 좋았을 걸 그랬다. 핑계도 있다. 이 영화는 자유의 여신상 횃불에서 필립 프티가 영어로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영어로 말해도 논리는 이상해지지 않는다.

배우에게 외국어 연기는 언제나 매력적인 도전이다. 하지만 이것이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나의 언어가 영화 속에서 다른 언어로 옮겨지는 과정은 그와는 별도로 실제 세계에서 언어의 힘겨루기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생각해보라. 멕시코 배우 셀마 헤이악이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인생을 다룬 영화를 왜 영어로 찍었을까.

하나의 답이 존재하는 문제는 아니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정답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용적인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건 언어 자체가 주제의 일부가 아니라면 언어를 통한 관객과 배우의 스트레스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만추><하늘을 걷는 남자>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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