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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의 ‘제제’만큼이나 불편한 출판사의 과잉대응
기사입력 :[ 2015-11-06 10:23 ]


아이유도 그렇지만, 출판사의 과잉이라니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아이유의 노래 ‘zeze’의 가사에는 불편한 구석이 분명히 있다. ‘교활’이라는 표현도 있고 ‘더러워’라는 다소 거친 해석도 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읽었던 독자로서 이 가사가 등장인물인 아이 제제에 대한 아이유의 직접적인 ‘평가’이자 ‘해석’이라면 불편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갑작스레 불거진 이 논란에서 많은 대중들이 그토록 날선 비판을 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사 측인 ‘동녘’이 직접 나서서 페이스북을 통해 ‘아이유님. 제제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라며 올린 글이 적절한가는 다른 문제다. 동녘측이 제기한 아이유가 제제를 성적 대상으로 봤다는 논리에는 비약이 들어있다. 그 첫 번째 이유로 든 인터뷰 내용에 대한 과잉 해석이 그렇다.

“zeze는 소설 속 라임오렌지나무인 밍기뉴의 관점에서 만들었고 제제는 순수하면서 어떤 부분에선 잔인하다. 캐릭터만 봤을 때 모순점을 많이 가진 캐릭터다. 그렇기 때문에 매력 있고 섹시하다고 느꼈다.” 아이유의 이 인터뷰에서 ‘동녘’측이 주목하는 건 ‘섹시하다’라는 단어 하나인 듯하다. 그런데 ‘섹시하다’라는 표현이 반드시 성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섹시하다는 표현은 ‘멋있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아이유는 인터뷰 내용에도 들어있지만 제제라는 아이 자체가 섹시하다는 의미로 말한 건 아니다. 오히려 ‘순수하면서도 잔인한’ 모순점을 많이 가졌다는 점, 그런 특성이 섹시하다고 말한 것. 이 모순점에 대한 매료는 이번 아이유의 음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스물셋’이란 곡에서도 아이유는 다분히 상반된 이미지들을 나열하며 자신의 진짜 모습이 뭐냐고 대중들에게 질문하고 있다. 자신이 한 이미지로 해석되기보다는 다양한 이미지를 가진 존재로서 모순점 자체도 그대로 내보이는 것. 아이유는 지금 스물 셋의 나이에 이런 점에 매료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동녘’의 아이유의 곡 ‘zeze’에 대한 해석은 그래서 일단 이 인터뷰 내용을 ‘섹시하다’라는 하나의 글자 그대로 해석함으로써 아이유가 제제를 성적 대상으로 봤다고 단언해버린 경향이 있다. 그리고 나서 ‘동녘’은 가사를 문제 삼는다. ‘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잎사귀에 입을 맞춰 장난치면 못써 나무를 아프게 하면 못써. 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여기서 제일 어린 잎을 가져가. 넌 아주 순진해 그러나 분명 교활하지 어린아이처럼 투명한 듯 해도 어딘가는 더러워 그 안에 무엇이 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앞부분에 ‘섹시하다’라는 표현을 통해 아이유가 제제를 성적대상으로 봤다고 단언해버리자 가사들도 그런 뉘앙스로 읽히게 된다. 상징적인 표현들은 다양한 해석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또 그래야만 그것이 상징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녘이 오히려 한 가지 관점으로만 몰아세우고 있기 때문에 아이유의 곡 ‘zeze’는 다른 해석이 용납되지 않는 곡이 되어버렸다.

아이유의 곡에 나오는 ‘제제’라는 인물은 물론 그 모티브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 나온 것이지만 반드시 그 인물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모티브란 말 그대로 모티브일 뿐 거기에 대한 해석은 확장되기 마련이고 다분히 가사를 쓰는 이의 개입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유의 ‘zeze’에 들어있는 제제는 저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의 제제 그대로라기보다는 그 캐릭터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유 자신일 가능성이 높다. 순진하지만 교활하고 투명한 듯 해도 어딘가는 더럽다는 건 제제를 지칭하기보다는 그 제제를 바라보고 있는 화자 즉 아이유의 상태를 말해주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창작과 해석의 자유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학대로 인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다섯살 제제를 성적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부분입니다.’ 동녘은 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도 ‘창작과 해석의 자유는 있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이 출판사는 아이유의 곡 ‘zeze’를 ‘다섯 살 제제를 성적대상으로’ 삼은 곡으로 단언하고 있다.

‘그리고 제제가 순수하면서도 심한 행동을 많이 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는 것도 결국은 심각한 학대에 따른 반발심과 애정결핍에 따른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닌 학대라고 하는 후천적 요인에서 나온 것이죠. 이를 두고 제제를 잔인하고 교활하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 생각이 듭니다.’



동녘의 이런 지나치게 친절한 작품에 대한 해석과 타인의 작품에 대한 지나친 단정은 과연 올바른 일일까. 다시 말하지만 아이유의 곡 ‘zeze’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노래다. 거기에는 당연히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입장은 대중들이 느끼는 불편함에 공감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동녘의 이런 단정들과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나간 작품이 반드시 작가의 의도대로만 읽혀야 한다는 식의 관점이 더욱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국정교과서에 대해 그토록 거센 비판들이 쏟아지고 있는 건 그것이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관점들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팩트를 말하지만 팩트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승자들에게 팩트일 수 있는 것이 패자들에게는 팩트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팩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관점이다. 소수라도 그 다양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사회라면 그것은 폭력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물론 취향에는 맞지 않을 수 있어도 아이유의 곡 ‘zeze’는 나름의 자신의 관점을 투영시킨 자신만의 해석을 담고 있다. 그녀 역시 노래를 내놓는 순간 그것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이미 대중들의 것이 된다. 그러니 대중들이 그 노래를 불편하게 여기는 것도 자유다. 이것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도 마찬가지다. 출판사가 나서서 타인의 작품을 맘대로 해석하고 단정하고 자신들의 작품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 못내 불편하게 여겨지는 건 그래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로엔트리, 아이유 앨범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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