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흥분시킨 ‘육룡’ 박혁권과 ‘그녀는’ 최시원의 공통점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최근 우리 안방에 두 명의 색다른 매력적인 캐릭터가 나타났다.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길태미(박혁권)와 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김신혁(텐이 아닌 김신혁, 최시원 분)이 그 특별한 주인공이다. 이 두 캐릭터는 시대적 배경과 역할, 특히 외모가 천지차이다. 하지만 둘 다 무협지에나 있을 법한 내외공이 불합치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그리고 극의 중심이 아님에도 인물의 매력으로 드라마를 이끌어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캐릭터 유형이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는 점에서 함께 언급할 가치가 있다.

50부작 대작 판타지 퓨전 사극인 <육룡이 나르샤>는 포스터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육룡이다. 최근 가장 뜨거운 유아인과 연기 하나로 드라마를 이끌었던 김명민, 천호진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육룡을 맡았다. 그리고 현실정치에 대한 은유와 사극에 추리극을 접목한 새로운 장르적 도전으로 중반까지 시청자들을 흥분시켰던 <뿌리 깊은 나무>의 작가와 제작진이 다시 한 번 <뿌리 깊은 나무>의 확장된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기대는 배가됐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와 달리 치열하거나 시청자들과 숨바꼭질하는 스토리의 긴장감도 없고, 소름이 돋는 정도의 반전도 없다. 현실 정치나 인간에 대한 성찰의 단면을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너무나 진행 호흡이 느려서 육룡이 아직까지 날지 못하고 있다. 김명민과 천호진의 자신이 보여준 브랜드의 기대치는 충족시켜주지만 마찬가지로 ‘소름’ 정도는 아니다. 유아인은 수준 높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베테랑><사도> 등 흥행대작이 맞물리면서 이방원이 아닌 유아인이 먼저 보인다. 그런 이때 감히 단언컨대 드라마를 떠받들고 있는 한 축이 바로 흉악한 도당 3인방이자 고려 최고 ‘악’의 오른팔이었던 길태미다.



육룡을 보러 온 시청자들은 기존 사극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악당 캐릭터에 환호했다. 화려한 장신구와 의상, 그보다 더 눈에 뜨이는 아이라인 메이크업, 네일아트를 한 긴 손톱. 나긋나긋 애교스럽다 못해 교태스러운 말투의 길태미에 빠졌다. 사극 역사상 최초의 게이 캐릭터(내관이 아닌 대중문화에서 소비되는 게이 이미지의 모티브로서)를 내세운 길태미는 탐욕스럽고 경박하지만 이를 드러내는 데 솔직하다. 고급 자개를 보고 손벽치며 환호하는 심미안을 가졌지만 실은 고려 제1검의 무사다. 이런 서로 어울리지 않는 명함들이 그의 화려한 검술처럼 돌아가며 나오자 시청자들은 쓰러지기 시작했다.

<뿌리 깊은 나무>보다 엉성한 얼개를 덮어버리는 데는 길태미의 아이라인만한 게 없다. 단적인 예로 길태미가 활약 할 때와 그가 등장하지 않을 때 극이 호흡이 전혀 다르다. 길태미가 인기를 얻는 것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이 낯선 캐릭터에 대한 순수한 환호다. 기본적으로 악당이지만 귀여운 말투, 감정에 솔직하고 본적 없는 장신구와 화장을 두른 외향, 어울리지 않게 고려 최고의 무인이라는 낯선 아이러니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거다. 그간 봐왔던 판에 찍어낸 듯한 캐릭터가 아닌데서, 단면적이지 않고 감정과 행동이 솔직해 밉지 않다는 점에서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도약선생> 등 독립 코미디영화 및 시트콤 감독 윤성호의 단짝 박혁권이 드디어 대중 앞에 코믹 캐릭터로 우뚝 섰다. 앞으로 육룡이 하늘로 승천할 수밖에 없을 텐데 최대한 길태미의 교태미를 더 느낄 수 있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앞으로 더 만날 기회가 있는 길태미와 달리 김신혁은 <그녀는 예뻤다>가 종방하며 이제 추억이 됐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가 되는 좋은 추억이다. 할리우드 진출이란 커리어와 느끼함 이외의 뚜렷한 색깔이 없던 배우 최시원이 대중들에게 각인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예뻤다>는 황정음의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김신혁의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 속처럼 뻔해 보이던 로코물이 4%에서 시작해 20%대까지 트렌디 드라마 시청자들을 다시 TV 앞에 앉혔던 가장 큰 이유는 최시원의 새로운 캐릭터다. 다 끝났으니 말인데, <그녀는 예뻤다>의 후반부는 전혀 모스트스럽지 못했다.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에두른 것보다 조금 나은 수준. 사랑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게 만들어놓고 너무나 뻔한 선택으로의 귀결은 훈훈하기보다 심심했다. 드라마 종반부를 뒤흔들 카드로 뽑아든 출생의 비밀은 사실 좀 심각했다. 단무지 투척하던 시절의 감흥을 다 깨버렸다.



삼각관계, 배경,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 황정음의 브랜드까지 모든 게 익숙했다. 그러다 갑자기 치고 올라간 것은 본격 삼각관계가 시작되면서 김신혁이 매력을 뿜어내면서부터다. 최시원은 <무한도전>을 통해 보여준 웃음코드를 캐릭터에 녹여냈다. 늘 장난만 치고 편의점에서 식사를 때우며 돌아다니는 것 같지만 실은 돈도 많고 호텔 스위트룸에 사는 비밀을 가진 인물이다. 능력은 출중한데 하는 행동과 말투가 그런 내공을 깎아먹는다. 하지만 여자에게 다가갈 땐 무심한 척 따스하게 하고, 돌아설 때도 징징거리지 않는다.

컵라면을 먹는 소탈함, 단무지 달라고 부리는 최시원 특유의 넉살 좋은 투정과 말투는 다소 느끼했던 기존 자신의 이미지와 역할에 도전한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그런 모습에 시청자들이 매력을 느낀 경향이 없지 않아 있는 듯하다. 이는 드라마의 힘이 빠지는 지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사랑전선에서 매우 쉽게 밀려나면서 시청자들도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모스트스럽지 못한 너무 뻔한 지점이다. 괜히 반전 카드를 꺼내면서 김신혁에게 거리감이 생기면서 드라마 자체의 힘이 빠졌다. 이것이 황정음의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김신혁의 드라마라고 하는 이유다.



두 드라마와 두 캐릭터의 공통점은 기대와 찬사보다 작품 전체의 완성도가 균일하지 못하다는 점, 그리고 의외의 캐릭터들이 선전하면서 에너지를 생산해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은 기존의 판에 박힌 캐릭터 유형을 벗어난 캐릭터를 창조해낸 배우와 연출진의 시도다. 판타지가 가득하더라도 일정부분 인간미가 느껴지는 캐릭터가 드라마를 이끄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평면적이지 않은 캐릭터, 새로운 모습과 매력을 줄 수 있는 캐릭터 개발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냈다. 주인공이 강력하면 캐릭터만으로 스토리가 굴러간다고 하는데,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강력한 캐릭터가 한 명 있으면 최소한 서까래는 되니까 말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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