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V는 누구를 위해 허풍 나팔을 불고 춤을 추나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얼마 전 민생경제위원회와 청년유니온은 CGV가 관객 동의 없이 무단으로 광고를 상영해 얻은 연 810억원의 광고 수입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서울서부지법에 냈다. 영화 시작 전 광고를 10여분 내보내는 것이 표시광고법 제3조 1항 2호가 규정한 ‘기만적인 표시 광고’에 해당한다는 이들의 주장이라고 한다. CGV를 대상으로 한 건 이들이 가장 큰 체인점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영화관 광고에 대한 불평이 나올 때마다 어리둥절하는 편이다. 1주일에 최소한 3,4회는 극장을 찾는 관객인 나에게 영화관 광고는 CGV에서 겪는 최악의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나쁜 일은 얼마든지 있다. 비스타 관에서 마스킹하지 않고 비디오 방처럼 트는 와이드스크린 영화, 툭하면 히트작에 상영관을 몰아주어 선택의 기회를 제한하는 행태, 불공정한 퐁당퐁당 상영, 기만적인 차별 가격... 영화관에 대한 제대로 된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끝도 한도 없다. 대한민국 멀티플렉스는 영화에 티끌만큼도 관심이 없는 장사꾼들이 운영하는, 문제가 많은 곳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진짜 문제는 거들떠도 안 보고 광고와 팝콘 값만 물고 늘어진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다. 팝콘이 비싸면 안 먹으면 되지 않는가.

필자의 경우 영화관 광고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어차피 영화 사이에 뭔가를 틀긴 해야 한다. 영화관 광고를 보기 싫다면 표에 적힌 시간에서 8분이 지난 뒤에 극장에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그 동안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안에서 광고를 보면서 있는 것보다 더 재미있을까? 모를 일이다. 어차피 모바일 시대. 정 보기 싫으면 가지고 온 휴대폰으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해도 된다. 영화 상영 때 휴대폰을 보는 게 문제이지 광고할 때 보는 게 무슨 잘못일까.

하지만 최근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광고가 있다. 영화 상영 직전에 틀어주는 <프리미엄 코리아>라는 광고다. 보통 CGV 관객들에는 ‘국뽕광고’ 또는 ‘국뽕광고 2’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다. 뒤에 2가 붙는 이유는 얼마 전에 비슷하게 역겨운 내용의 광고가 있었다가 잠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게 사라졌을 때는 다들 CGV가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달 뒤 그들은 더 역겨운 속편을 들고 왔다. 심지어 이건 피할 수도 없다. 에티켓 영상과 본영화 상영 사이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 속편은 여기에 있다.(http://youtu.be/kHHeGstWlI8)



그냥 역겹고 싫다고 욕만 하고 끝날 수는 없다. 내용을 분석하고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고통스럽지만 한 번 시도해보자.

우선 이 광고는 거짓말로 범벅이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이 광고는 “세계를 이끄는 우리의 IT 기술은 우리 선조의 앞선 과학 기술에서 시작되었다”면서 첨성대와 해시계를 보여준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한반도의 과학하던 사람들이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 나름대로의 업적은 있다. 하지만 세계과학사에 우리가 끼친 영향은 티끌만큼도 안 된다. 우리의 IT 기술이 세계를 이끈다는 것도 거짓말이지만 그게 맞다고 쳐도 그걸 시작한 건 마르코니, 튜링, 미국 국방부 고등연구소의 엔지니어들이지 괜히 한반도에 태어나 멸시받고 구박받고 사라진 무명의 천재들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부끄럽지도 않나?

뒤의 나오는 장면도 아주 거짓말은 아니지만 염치없는 건 마찬가지다. “전세계의 0.07퍼센트에 불과한 땅을 가졌지만 전 세계를 팬으로 가진 나라”라며 <국제시장>의 영어 포스터를 보여주는 장면을 보라. 하긴 한국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그 동안 꽤 늘긴 했다. (그러는 동안 태국, 루마니아, 인도네시아, 세르비아의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늘어났지만 이건 논점 밖이니 다른 기회에 이야기하기로 한다) 하지만 한국영화를 보는 외국인들 중 <국제시장>의 제목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차라리 모두가 (게으르게) 알고 있는 유일한 한국 영화인 <올드보이>를 예로 들었다면 여전히 민망해도 그러려니 하겠다.



그런데도 굳이 <국제시장>을 ‘전세계를 팬으로 가진 한국영화’로 만든 건 그 영화가 CJ에서 만든 국뽕영화이기 때문이다. 한국 음식 이야기를 덧붙인다면, 여전히 한국 음식은 아시아 음식 중 인기가 없는 부류에 속하고 그 상황은 앞으로도 한동안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 음식이 다른 나라의 음식에 비해 특별히 건강하긴 한 건가에 대해 한 번이라도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여러분의 말년 건강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케이팝에 대해서라면 여러분이 더 잘 알 테니 여기서 끝내기로 하자.

몽땅 거짓말인 것도 문제지만, 태도가 더 심각하다. 대한민국은 이제 그렇게 작은 나라가 아니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인 보이지도 않는 나라였고 Korea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김일성과 문선명 정도였지만 이제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꽤 커졌다. 굳이 자랑하고 싶다면, 그래야만 우울증이 가라앉고 자살 충동이 없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자랑해도 좋다.



자랑할 일이야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을 자랑해도 좋다. 어차피 그가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동안 우리가 보태준 건 티끌만큼도 없지만 그래도 좋은 이웃을 둔 건 우쭐할 만한 일이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은 나라가 되는 거겠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만만치 않은 업적을 쌓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고 그 업적을 민망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랑하는 방법 역시 많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나라 자랑을 해야만 안심이 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상황이라면 그건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 자랑이 거짓말과 허풍으로 뻥을 튀긴 내용으로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위험신호이다. 여러분이 선진국에, 그러니까 정상적인 문명국에 살고 있다면 국가에 대한 자긍심에 자신의 행복을 걸지는 않을 것이며 그 행복을 위해 허풍을 남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는 것 자체가 미개국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 미개국의 대표적인 예로 우리가 늘 놀려대는 북한이 있다. 북한이 촌스럽고 웃긴 것은 아무 것도 이룬 적 없고 자기 국민도 제대로 간수 못하는 열등국가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라며 스스로를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정도까지 미개국이 아니다. 비록 제대로 된 선진국이 되려면 멀었으며 요새 사회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퇴행 현상이 심하게 걱정스럽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북한 수준까지 망하지는 않았다. 우린 이룬 것도 많으며 충분히 문명인처럼 살면서 더 나은 문명인으로 발전할 자격이 있다. 그런데도 CJ는 우리를 인터넷도 없고 잡지도 검열되던 1980년대 국민 수준으로 보면서 먹히지도 않는 허풍 나팔을 불고 춤을 춘다. 이 정도면 우리가 분노해야 할 이유로 충분하지 않은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C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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