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돈이 돌아왔을 때 ‘무도’가 든든한 울타리 될 수 있기를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 8월 SBS 예능 <힐링캠프>에 출연한 정형돈을 보고 실망했었다. 어느덧 MC로서 최전성기를 열어가던 그에게서 노회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방송에 나온 모습을 보고 연예인의 현재를 파악한다는 게 가당치 않지만 그간 이뤄놓은 인기를 잃을까봐 두려워하고 시청자들의 평가를 염려하는 듯 보였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금 그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사실 실망스러웠다. 주저하는 태도와 맥 빠진 대답은 갓 ‘4대천왕’에 (스스로) 등극한 정형돈이 그동안 보여준 모습이 아니었다.

정형돈이 오늘날 가장 잘나가는 MC로 거듭날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 중 하나는 재미없는 캐릭터를 벗어나 근자감과 터프함으로 무장한 맥락 파괴적 캐릭터를 갖추면서다. 그는 평범하고 수더분한 이미지와 인지부조화를 이루는 다혈질적이고 공세적인 태도로 웃음을 만든다. 누가 봐도 뚱뚱한 아저씨인데 스타성을 논하고 GD를 비롯한 패션피플들의 패션을 지적한다.

근 10년간 재미없는 캐릭터로 살아왔음에도 4대천왕이란 호칭을 스스로 언급하다는 데서 웃음이 터졌다. MC로서의 장점도 원활한 진행에 있지 않다. 정형돈은 모두를 어우르는 유재석이나 누구나 받쳐줄 수 있는 하하와 달리 순발력 있게 맥락을 뒤틀어서 때로는 뻔뻔하고 때로는 짓궂은 방식으로 웃음을 만든다. 그런데 정작 <힐링캠프>에서 자리를 깔아주자 정형돈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조심한다고 했다. 그래서 불안하다고 했다.

정형돈의 원동력이자 희소성은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대중문화적 자양분과 감수성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4대강’이란 한마디가 나오자마자 정치적인 견해는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몸을 사리는 게 전부가 아니다. 정형돈은 4대강을 정치이슈라며 발언을 거부하는 것이 김제동의 <힐링캠프>에서 왜 개그가 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패션에 대한 드높은 자신감과 취향은 패션과는 거리가 먼 자신의 이미지와 ‘패션피플’들의 행태 및 씬의 분위기를 모두 잘 알고 그 간극을 활용하는 세련된 코미디다. 이런 맥락을 넘나들며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는 캐릭터가 그 누구에게도 미움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은 사실 재미없어지겠다는 이야기와 다름이 아니다.



당시의 당혹스러움과 실망은 몇 달이 지나고 방송 중단 선언이란 몇 배는 더 충격적인 뉴스를 통해 해소됐다. 표리부동한 것이 아니라 아팠던 거다. 이해를 넘어 미안함까지 느껴졌다. 이제 문제는 정형돈의 빈자리가 가져올 도미노 현상이다.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그가 MC로서 활약한 프로그램들도 비상이지만 가장 큰 타격은 아무래도 <무한도전>이 안을 수밖에 없다. 왜냐면 앞서 장황하게 언급한, 지금 가장 잘 팔리는 캐릭터를 갖춘 멤버를 잃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이 여타 장수 프로그램들과 비교해서도 특별한 점은, 여전히 큰 영향력과 스코어를 기록한다는 데 있다. 매회 10% 중반대의 시청률과 엄청난 광고수입을 얻는 프로그램에게 때마다 ‘위기’를 언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점진적 하락세만큼은 부인하긴 어렵다. 이는 지난주 방송이 워낙 재미없었다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2012년 이후로 김태호 PD의 장기특집이 늘어나면서(그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캐릭터쇼의 묘미는 다소 반감되었다. 동시에 기존에 세팅한 도전하는 못난 캐릭터의 생명력은 멤버들의 성장과 반비례해 줄어들었다. 게다가 불미스런 하차라는 부침을 겪었다.



<무한도전>은 매우 유기적인 무정형의 쇼도 맞고, 김태호 PD의 천재성과 역량 위에서 꽃핀 것도 맞다. 그러나 핵심은 캐릭터쇼다. 이는 <무도>를 비롯한 모든 리얼버라이어티의 근간이다. 캐릭터를 갖춘 멤버들이 그들 사이에서 관계망을 형성했을 때 어떤 특집과 콘셉트를 소화해도 그들의 쇼가 되는 거다. 다시 말해 무정형의 쇼는 캐릭터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박명수는 웃음사망꾼 취급을 받고 있고, 정준하는 타박을 당해야 사는 캐릭터다. 하하는 리액션으로 받쳐주는 캐릭터고 새 멤버 광희는 아직 박명수 말대로 ‘1%’ 정도 기여하고 있다. 유재석은 진행을 맡는다.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던 확실한 캐릭터 노홍철이 이탈하면서 운신의 폭이 대폭 줄었는데 설상가상 남은 멤버 중 가장 확실한 캐릭터를 갖춘 멤버이자 각 캐릭터 사이의 링크 역할을 하면서 보조진행까지 맡던 정형돈마저 빠지면서 기존 방식과 관계망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쇼의 운용이 사실상 매우 어렵게 됐다.

이는 유재석과 멤버들이 당장 어쩔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올해 식스맨을 뽑았고 결과가 아직까진 신통치 않는데 정식으로 다시 그 과정을 겪으며 다시 뽑을 수도 없고, 10년의 역사를 무시하고 멤버들을 교체할 수는 더더욱 없다. 그랬다가는 캐릭터쇼는 완전히 무너진다. 최악의 경우 캐릭터의 역할이 한정적이고 단편적인 게임쇼로 위축될 것이다. 따라서 미봉책으로 누군가를 응급수혈 하는 것을 넘어선 캐릭터쇼의 명맥을 살릴 무한 도전 앞에 놓이게 됐다.



정형돈의 이탈은 <무도>와 멤버들을 선택의 기로에 놓았다. 기존 플랜과 구성을 그대로 이어가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갈수록 <무도>내에서 공고해지는 유재석 1인 체제도 정답은 아니다. 유재석이 출연한 신규 프로그램들의 스코어가 머뭇거리게 만든다. 예상을 뛰어넘어 논란을 일으킬 만한 완전히 새로운 그림(혹은 이탈한 멤버를 전격 복귀시키는 선택)과 동시에 기존 멤버들의 폼이 동시에 올라오지 않는 한 하락세의 가속도를 떨어뜨리긴 어려워 보인다.

다행이 박명수의 웃음장례식, 광희를 존재감 없는 캐릭터로 띄우려는 움직임 등등 캐릭터에 새로운 칠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차포가 다 떨어져 나간 상황에서 가장 근본 원인부터 짚고 있는 것이다. 정형돈이 건강하게 회복하고 돌아왔을 때 <무도>가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될 수 있도록, 원톱 스트라이커 박명수를 비롯한 기존 멤버들이 함께 살아나 잘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이런 바람은 시청자로서 정형돈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고 응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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