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송곳’을 보는 꿀맛 뒤에 남은 쓰고 아린 맛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가장 추억 돋는 장면은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의 서울올림픽이 아니다.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해질 무렵 좁은 골목의 풍경이다. 해가 지면 집집마다 대문이 열리고 엄마의 “밥 먹으라”는 외침이 사방에서 들린다. 골목 어딘가에서 뛰어놀던 아이들, 친구 집에 모여 비디오테이프로 주윤발의 영화를 보던 십대들은 각자의 집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저녁시간이라고 대문이 닫히는 것은 아니다. <응답하라 1988>에서 보듯 이웃들은 골목을 오가며 서로 특별한 저녁 반찬을 나눈다. 그 왁자지껄한 저녁준비가 끝날 무렵 회사에서 일을 끝낸 아버지들은 집으로 귀가한다. 물론 남편들은 밤늦게 돌아오는 일이 많기에 가장의 밥그릇은 아랫목에 묻어두는 때도 많다. 그리고 남편을 기다리던 동네 여인들은 여름밤이면 골목 평상에 둘러앉아 남편 흉을 보거나 은밀한 이야기들을 시시덕댔다. 고로 그 시절의 골목은 이웃끼리 따스한 정이 오가는 마을의 공동 장소였다. 드라마는 그런 골목 중 하나인 서울 쌍문동 골목에서 성장하는 십대 여주인공 성덕선(혜리)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전히 냉기 가득했지만 가슴 따뜻했고 넉넉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과 비교하면 구석시 시대와 다를 바 없는 아날로그의 시대였지만……” (성덕선)

한편 2003년을 배경으로 하는 JTBC 드라마 <송곳>에서 골목은 이웃과 이웃을 이어주는 친목의 장소가 아니다. <송곳>에서 골목은 푸르미마트의 이과장 이수인(지현우)을 비롯한 인물들이 홀로 걸어가는 배경으로 주로 쓰인다. 물론 터벅터벅 골목을 홀로 걸을 때 느껴지는 무거운 어깨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송곳>에서도 여인들의 수다가 벌어지는 장소가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그곳은 대문 밖의 골목이 아니라 그녀들의 일터인 푸르미마트다. 그리고 그 장소는 손님들은 볼 수 없는 장소에 숨겨진 푸르미마트의 자그마한 직원 휴게실이다. 그리고 1988년 막 결혼해서 어쩌면 평상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이웃들과 수다를 떨었을 그녀들 중 한 사람도 2003년의 그 휴게실에 있을지 모른다.



드라마 <송곳>에서 부진 노동 상담소를 이끌며 이수인 과장을 돕는 고구신 소장은 푸르미 마트의 직원들에게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이렇게 일갈한다.

“가장 혼자 벌어서 네 식구 사는 그런 시절은 오지 않아요. 몇 년만 지나 봐. 그런 시절이 있던 건 기억도 못할 걸?” (고구신)

재벌과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 이야기가 대부분인 지상파 주말드라마 게임에서 tvN <응답하라 1988>과 JTBC <송곳>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건 이 이야기들이 드라마적 허구가 아닌 현실에 바탕을 든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두 드라마는 지상파의 주말드라마와는 다른 생생한 활력을 얻는다. 바로 내가 겪었던 내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겪었던 한국의 현실과 겹쳐지기 때문이다.



tvN의 <응답하라 1988>은 모두가 겪었지만 이제는 현실 아닌 추억이 된 시절의 이야기다. 새우깡을 100원에 먹을 수 있고 브라보콘이 200원이라고 비싸다고 말하는 시절이라니! 무엇보다 1988년은 서울 올림픽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들뜨던 시절이었음은 틀림없다. 매캐한 최루탄 냄새의 독재정권 먹구름은 걷히는 듯했고 한국에서 다시 찾아보기 힘든 호경기는 이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돈이 사람을 먹고 돈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생기는 그런 치사한 시기는 아니었다. 물론 그 시기가 서서히 다가오던 그런 때이기는 했지만.

반면 JTBC의 <송곳>은 그런 치사한 시기가 도래한 한국을 보여준다. <송곳>의 첫 회에 등장하는 은행의 이름은 KB국민은행이 아닌 KB궁민은행이다. 생활이 어렵고 가난한 백성이 된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셈이다. <송곳>의 주요 줄거리는 프랑스 외국계 기업인 푸르미마트에서 노조를 만드는 이수인 과장과 푸르미마트 직원들의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 이수인 과장이 노조를 만들게 된 까닭은 회사에서 직원들을 알아서 나가게 만들라고 지시해서다.



즉 중간관리자들이 마트의 직원들을 협박하고 괴롭혀 쫓아내라는 ‘치사한’ 지시에 맞서기 위해 노조는 시작된다. 1988년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의 결과물인 프랑스계 기업이 한국에서 치사한 짓을 잽싸게 실천하는 모습은 얼마나 씁쓸한가?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는 거야. 노동운동 10년해서 사장 되면 노조 깰 생각부터 하는 게 인간이라고.” (고구신)

현실에 바탕을 둔 두 드라마를 함께 비교하며 보는 재미를 단순히 꿀맛이라 하긴 힘들다. 그 꿀맛 뒤에 남은 쓰고 아린 맛이 오래도록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뒷맛을 여운이라고 혹은 조심스레 역사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역사란 자랑스러운 영웅의 삶을 암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맵고, 짜고, 쓰고, 달고, 시큼한 인간사의 흥망성쇠를 바라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테니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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