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 운영진을 제외하고 세상 모두가 예상한 사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몇 십 분 동안 정신없이 웃느라 배꼽이 떨어져 나갈 지경이다. 지금도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미친 사람이라도 되는 양 쳐다보고 있으니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겠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웃겨 죽겠는데.

방금 보고 온 영화 때문은 아니다. 그건 몇 년 동안 끌어온 4부작 영화 <헝거 게임>의 마지막 편으로, 그 정도면 잘 매듭지은 편이긴 하지만 보고나면 기운이 쭉 빠지는 꽤 꿀꿀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우울한 기분은 밖으로 나와 인터넷을 접속한 순간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바로 대종상영화제 수상 후보들이 줄줄이 불참한다는 뉴스를 읽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몇몇은 한참 연속극을 찍고 있다. 전지현은 임신했다. 하정우는 해외에 있다. 나머지 몇 명은 스케줄이 있다고 하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하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우리가 그 사정을 굳이 알아야 할 이유가 없다. 우디 앨런이 지금까지 아카데미 시상식에 불참하면서 단 한 번이라도 이유를 댄 적 있었나? 가기 싫으면 그냥 가지 않으면 되는 거다. 예비군 훈련도 아니고.

하지만 주연배우 후보 전원의 불참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만약 대종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행사였다면 이들 중 일부는 스케줄을 조절해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안 나온 건 다 자업자득이다.

올해 대종상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치킨 게임을 시도했다.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는 배우에게는 상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몰라도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카데미도 하지 않는 걸 왜 대종상이 하는가.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뭔가 과격한 것을 하려면 그럴만한 권위나 힘이 있어야 한다. 대종상에게 둘 중 하나라도 있는가? 당연히 나라도 안 간다. 어차피 대종상 따위를 받는다고 대단한 영광도 아니고 불참자 대신 상을 받는다면 그것도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다. 결코 대종상이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다. 대종상 운영진을 제외하고 세상 모두가 알았다. 단지 이렇게 완벽하게 웃기는 보이콧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개념정리를 하자. 영화제와 영화상은 전혀 다른 것이다. 영화제가 상을 주기도 하지만 상만 주는 시상식이 영화제가 되지는 않는다. 영화제는 영화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고 새로운 관객들이나 다른 영화인이나 투자자들과 만날 기회를 제공해준다. 하지만 영화상은 연말 파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철저하게 잉여의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잉여라면 잉여답게 구는 게 기초적인 예의다. 가장 유명한 영화인 파티인 아카데미도 자기 주제를 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금의 대종상처럼 영화인들 위에 군림하고 명령하는 걸 본 적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이 행사가 이 나라에서 언제부터인가 당연시된 ‘늙은 조폭의 논리’에 점령되었다는 증거이다. 정상적인 시스템은 현장에서 일하는 프로페셔널들의 직업의식과 그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돌아간다. 썩은 시스템은 현장에서 격리되거나 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늙은이들의 선후배놀이와 벼슬놀이에 의해 움직인다. 이런 시스템 속에 갇힌 사람들이 영화상이 영화인들 위에서 군림라고 명령할 수 있는 무언가라고 착각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세상이 그 생각 따위에 신경을 써야 할 이유는 없다. 이게 시스템이 망하고 나라가 망하는 과정이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자. 몇 시간 뒤에 있을 대종상은 최근 몇 년 동안 있었던 대종상 행사 중 가장 기대가 된다. 보통 때 같으면 몇 분 보다가 그냥 돌렸겠지만 이번엔 시간을 잡아 꽤 진지하게 볼 생각이다. 어처구니 없는 보이콧은 오히려 기회다. 어차피 두고두고 화제가 될 행사라면 우리라도 중계를 보며 신나게 비웃고 놀아보자.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대종상영화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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