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들’ 이병헌 때문에 안 보기엔 너무 아까운 걸작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이병헌 때문에 안 본다? 여전히 대중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이병헌이다. 그래서 그가 출연하는 영화마다 그런 얘기가 나온다. <터미네이터 제네시스>가 방영됐을 때도 그랬고 <협녀>가 영화관에 걸렸을 때도 마찬가지 목소리가 나왔다. 결과적으로 보면 <터미네이터>도 <협녀>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 안 좋은 성적에는 크든 작든 어떤 식으로든 이병헌의 이미지가 작용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부자들>은 어떨까. 이병헌에 대한 대중들의 좋지 않은 이미지를 떼놓고 보면 꽤 잘 만들어진 영화다. 대본도 촘촘하고 연기도 나무랄 데가 없다. 우리네 현실의 암담함을 부패한 정계와 재계 그리고 언론과 법조계까지를 망라해 그 추악한 맨얼굴을 드러내 보이는 영화이니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소 과장되게 엽기적인 일들을 벌이면 벌일수록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영화다.

그 느낌은 이렇다. 우리가 신문지상이나 방송을 통해 접하듯, 짐짓 정의를 부르짖고 또 너무나 신사적인 행동과 지적인 말들을 번지르르하게 하던 그런 인물들이 시종잡배들처럼 ‘쌍욕’을 섞어서 얘기하는 장면을 볼 때의 느낌이다. 그건 그 자체로 폭로의 성격을 띤다. <내부자들>은 그런 영화다. 착한 인물 찾기가 어려운 이 영화는 그 더러움을 더욱 더럽게 그려내는 것으로서 숨겨진 실체를 폭로하는 쾌감을 선사한다.

이 영화에서 이병헌이 맡은 역할은 정치깡패 안상구라는 인물이다. 잔혹하기가 이를 데 없고 몰디브와 모히또를 헷갈릴 정도로 무식하다. 결코 착한 인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안상구라는 인물은 처음 볼 때는 살벌한 깡패였지만 차츰 동정적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게 된다. 그 이유는 나쁜 놈들보다 더 나쁜 놈들이 주변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안상구는 그나마 나은 축에 속해 보이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건 ‘복수심’이다. 안상구의 복수심은 그래서 관객들이 이 영화 속의 추잡한 정재계언론에 있는 권력자들의 행태를 보며 갖게 되는 증오와 잘 맞아떨어진다. 절대 좋은 인물은 아니지만 공동의 적을 갖게 되면서 일종의 동지의식 같은 걸 느끼게 된다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보면 이병헌과 안상구라는 인물의 만남은 기막힐 정도로 주효했다고 여겨진다. 대중들이 갖고 있는 이병헌에 대한 불편함은 이 영화 속 안상구라는 인물이 주는 불편함과 기묘하게 어우러진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더 큰 악당들과 마주하면서 조금씩 상쇄되고 급기야는 시시껄렁해도 그나마 인간적인 안상구라는 인물에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을 영화가 그리고 있다는 건 배우 이병헌으로서는 굉장한 기회가 아닐 수 없었을 게다.

물론 연기를 기가 막히게 했다고 해도 그걸로 대중들의 마음이 쉽게 풀어질 것 같지는 않다. 연기는 연기고 남는 불편함은 불편함이다. 하지만 연기자로서 자신의 이미지 때문에 괜찮은 영화조차 망가지게 할 수도 있다는 그 불안감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불거진 사건 때문에 아마도 이병헌은 순수한 이미지나 고고한 이미지의 역할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연기자는 물론 연기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그의 평상시 이미지와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몰입을 방해하는 역할은 응당 피하는 게 대중들에 대한 예의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내부자들>의 안상구라는 인물은 꽤 이병헌에게는 맞춤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걱정 마시라. 이병헌은 이 영화에 기능적으로 잘 어우러져 있고 그것이 불편한 느낌을 주지도 않으니. 그 때문에 영화를 안 보기엔 <내부자들>이 너무나 아까운 걸작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내부자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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