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복고의 차원을 넘어서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응답하라 1988>이 <슈퍼스타K7>의 길을 걷게 될 거라 생각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역사가 있고 여전히 그 안에서는 치열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그것을 새롭게 아는 이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 상황. 출연자들 입장에선 전작의 화려한 성공이 자신의 것이 되길 기대하며 올라탔지만 이미 좋은 시절은 지나가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양반집에 몸을 의탁한 상황이 펼쳐질 거라 예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3번째 반복하다보니 남편을 찾는 추리의 ‘떡밥’도 쉴 때가 됐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현재 대중문화계의 주 고객층의 추억과도 멀어지며, 무엇보다 복고와 추억 콘텐츠의 본질적 한계인 지속가능성 차원에서 3번째는 어렵다고 봤다.

그런데 <응답하라 1988>의 제작진은 이런 예상을 기획단계에서부터 예측하고 뛰어넘었다. 그 당시의 대중문화와 시대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지만, 1990년대를 벗어나면서 <응답하라> 시리즈는 더 이상 추억과 복고가 포인트가 아닌 그냥 그 자체로 평가받을 드라마가 됐다. ‘1997’이 남편을 찾아가는 추리로 몰입을 이끌었고, ‘1994’는 대중문화라는 복고 키워드가 강조된 완성도 높은 청춘물이였다면, 그보다 훨씬 더 거슬러 내려간 ‘1988’은 앞선 두 시리즈의 장점을 바탕삼아 가족드라마가 되어 나타났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드라마 전반에 흐르는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혹은 겪어보지 못했지만 좋아 보이는 정서적 충족감) 즉, 드라마 속 세계의 전부라 할 수 있는 골목길이 상징하는 판타지다. <응답하라 1988>는 골목길이라는 상징적 공간 속에 가족, 친구, 동네와 이웃 간의 정 등을 애틋하고 설렘 가득하게 담아낸다.



이를 판타지라고 말하는 것은 1988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거의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억과 결핍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그리는 친구와 가족, 그리고 이웃(유사가족 커뮤니티)의 관계는 오늘날 쉽게 찾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아파트 단지에 살았든 빌라촌에 살았든 운 좋게 단독 주택에 살았든 밥 먹으라고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는 늘 동네에 존재했다. 카톡으로 보냈을지언정 2010년대에도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학창시절 단짝 친구와 맺었던 우정 또한 그렇다. 따라서 이 드라마가 그리는 유사가족 형태의 공동체는 밖에서 상처를 입더라도 돌아갈 제자리는 가족이라는 1회의 대사가 말해주듯 명확한 목표를 가진 판타지의 무대가 된다.

판타지는 추억을 넘어서면서 여러 세대를 폭넓게 아우르는 공감대를 자아낸다. 저녁 8시로 전격 조정된 편성표에서 드러나는 야심처럼 그 시절의 고증은 40대 이상의 중년층들에게 손짓하고, 1990년대 중후반 유희열의 라디오를 들었던 30대들에겐 그 노래들이 귀와 마음을 다시 연다. 그 시절이 낯설기만 한 20대 이하 시청자들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그들은 추억 마케팅이 아닌 가족드라마, 청춘드라마로 소비한다. 또래의 아이돌 출신 배우와 독립영화계에서 건너온 신선한 배우들의 연기를 품평하면서 생경한 문화와 시대는 신선한 배경으로 받아들인다. 카톡이나 SNS 화면 속으로 맺어진 인간관계만을 아는 젊은 세대에게 아날로그 매체와 통신에 의존했던 그 때 그 시절은 흥미로운 배경이다.



가족으로 중심을 옮기면서 199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오마주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전작에 비해 ‘복고’에 대한 반응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 시절의 고증이나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어려웠던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반영했는지는 <응답하라 1988>에서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핵심은 지금은 사라진 혹은 누리고 싶은 부러움이다. 복고에 천착하면서 지루해질 것이란 우려를 문화적 향수를 넘어서서 막장코드가 정석이 된 가족드라마 장르에 새롭고 착한 청춘·가족드라마로 도전하는 것이 응답하라 시리즈의 한 수다.

친구 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난입’할 수 있는 단짝 친구들, 아주머니들의 골목길 평상의 수다는 점점 더 파편화되는 우리 현재의 결핍에 대한 위로다. 전세난, 뉴타운 재개발, 원룸화 되는 동네 걱정 없이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이웃과 친구들이라는 이제는 비현실적인 관계가 주는 행복의 대리만족이다. 드라마의 배경인 1988년부터 지금까지 도봉구 쌍문동이 나은 최고의 스타는 아기공룡 둘리와 그의 커뮤니티였다. 2015년 말, 도봉구 쌍문동이 또 다른 스타 콘텐츠를 배출하며 꿈틀거리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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