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을 꿈에서 본 것 같아요! 기시감 짙은 고발극 ‘내부자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내부자들>은 2012년에 연재되었던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사회성 짙은 범죄물이다. 연재 당시 웹툰 <내부자들>은 재벌과 정치인의 유착관계를 그리면서, 그들을 매개하는 언론인과 그들의 잡무를 대행하는 조폭 등의 관계를 치밀하게 보여주었다.

과연 <이끼>와 <미생>을 그린 작가답게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의 얼개를 큰 스케일로 보여준다는 호평을 낳았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연재는 몇 달 만에 중지되었고, 이야기는 결말을 맺지 못하였다. 영화 <내부자들>은 웹툰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 우장훈 검사(조승우)를 집어넣고, 사건을 더욱 다이나믹하게 몰고 가면서 반전의 기법을 통해 웹툰이 맺지 못한 결말을 완성해낸다.

영화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매끈한 연출도 돋보이지만, 가장 빛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능구렁이처럼 느긋하면서도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백윤식이나 패기 넘치는 조승우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병헌이다. 순진한 나르시시즘의 건달에서 이글이글 정념에 불타는 악마적인 표정까지, 입체적인 감정연기로 매순간 화면을 압도한다.



◆ 재벌과 정치권을 매개하는 언론이라는 존재

영화 <내부자들>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다. 흔히 생각하듯 진실을 보도하여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여론을 환기함으로써 권력을 견제하고, 궁극적으로 시민사회의 민주주의적 역량을 강화시킨다는 뜻의 ‘언론의 역할’이 아니다. <내부자들>에서 언론은 진정한 권력을 쥔 재벌과 그 권력을 대리하는 정치인을 매개하는 고리이다. 즉 정경유착의 거간꾼으로 기능한다.

조국일보의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는 검찰 출신의 장필우(이경영)를 정치계에 입문시키고, 그에게 오회장의 후원을 받도록 한다. 또한 그는 정치깡패 출신으로 연예기획사 일을 하는 안상구(이병헌)과 형님동생 하면서, 그가 물어오는 정보를 활용하기도 한다. 안상구는 오회장의 채홍사 노릇을 하다가 중요한 정보를 입수한다. 대선후보 장필우의 비자금 조성에 관한 파일을 빼돌린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안상구는 끔찍한 보복을 당한다. 원래 그 파일은 서울지검 우장훈(조승우) 검사가 쫓던 것이었다. 출세의 일념으로 충성스러운 개로 살아온 우장훈은 족보가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승진에서 누락된 자신의 처지를 만회하기 위해 비자금 파일을 쫓는데 혈안이 된다. 우장훈의 출세욕이 안상구의 복수심과 만나면서 기이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데, 영화는 절대 권력을 향한 반격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좀처럼 흥분하는 일도 없는 이강희가 유려한 말투로 “말을 바꿔 타시겠냐?”고 오회장에게 묻는 장면이다. 그는 오회장의 책사로서 재벌의 이권을 충실하게 실행할 정치인들을 필요에 따라 교체할 수 있는 ‘권력의 설계자’이다. 그는 평소에 자신은 글이나 쓸 뿐 아무런 힘이 없다고 말하지만, 결정적인 국면마다 그가 호도하는 여론은 그대로 권력이 된다.

청와대와 광화문이 내려다보이는 그의 집무실에서 그가 놀리는 펜대는 때로는 검찰을 공격하고, 때로는 노조를 공격하지만 언제나 자본의 이익에 충실하다. ‘복지 포퓰리즘’이니 ‘종북 세력’이니 하는 말로 권력의 이해관계를 지켜내고, 누군가 진실을 폭로하는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여론몰이로 메신저를 공격하여 권력자를 위기에서 구출한다. ‘조중동’에 의해 왜곡된 언론환경을 날마다 접하는 관객으로서는 굉장히 기시감이 드는 장면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마치 게임을 하듯 막후에서 장기 알을 굴리던 그에게 예상치 못한 날것의 공격이 가해질 때, 그에게 던져진 대사는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남긴다. 또한 공격당한 그가 읊조리던 ‘고독하다’는 말은 기이한 페이소스를 낳는다.

그러나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역시 성접대 장면일 것이다. 원작 웹툰에도 등장하는 장면이긴 하나, 이 장면을 실사의 큰 화면으로 눈앞에서 보는 것은 또 다른 충격을 안긴다. 이 장면은 2013년 3월에 논란이 되어 김학의 법무부 차관을 취임 6일 만에 낙마시켰던 ‘별장 성접대 사건’을 연상시킨다. 성접대 동영상이 발견되고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이 자신이라고 밝힌 이모씨가 건설업자 윤씨의 강요로 김학의에게 성접대를 해왔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그런데도 김학의는 무혐의 처리되었고, 현재 변호사 등록을 신청하였다.

또한 영화 속 “쌍팔년도 채홍사도 아니고”라는 대사는 중앙정보부를 채홍사로 삼았던 박정희나 그에게 ‘밤의 대통령’ 칭호를 받았던 조선일보 방일영이 즐겼다는 질펀한 기생파티를 떠올리게 한다.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권력자들이, 기묘한 그립감(?)을 과시하며 폭탄주를 말아 먹는 모습은 형언할 수 없는 환멸과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이들은 원초적인 행위를 통해 서로의 수치스러운 비밀과 천박한 욕망을 공유한다.



◆ 검사와 조폭이라는 거울 상

<내부자들>이 보여주는 사건은 굉장히 스케일이 크다. 정치권의 로비로 은행이 재벌에게 3천 억 원을 불법대출하고, 그 중 3백억 원이 불법 대선자금으로 흘러들었다는 이야기는 정치와 경제가 어떤 식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정경유착의 핵심 고리로 주류언론사가 존재하며, 이들은 재벌의 광고로 자기 배를 채우면서 재벌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고, 재벌의 이해관계에 걸맞은 정치인을 세우고 갈아치운다는 것은 대한민국 권력의 얼개를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는 우장훈 검사를 중심으로 검찰이라는 조직을 세밀히 묘사한다. 검찰출신의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건에 외압을 가하는 장면이나, 자연스럽게 스폰서가 따라붙는 장면, 출세를 위해 열심히 사건을 수사하지만, 윗선의 필요에 따라 어느 순간 ‘팽’을 당하는 ‘족보 없는’ 검사의 모습은 검찰이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 조직인지 잘 말해준다. 억울함을 토로하는 우장훈 검사에게 상관은 말한다. “그러니까 잘 했어야지, 잘 태어나든가” 보통 사람의 눈에는 상당히 출세한 것으로 보이는 검사들의 세계에서도 금수저와 흙수저가 있다. 최고의 권력을 지향한다면 성골이 아닌 이상 모두 약자이다. 서민출신에 경찰출신인 육두품 우장훈이 대검찰청 검사가 되기를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는 “조직을 위해 개처럼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것은 출세를 위해서지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정의로운 검사가 아니었다. 그가 안상구와의 만남을 통해 감히 권력자들에게 칼끝을 겨누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정확히 그려져 있지는 않다. 복수를 원하는 안상구와 의기투합 하였을 때도 그는 출세의 욕망을 놓지 않았다. 어쩌면 내부자가 된 순간까지도 그는 흔들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옷 벗을 각오로’ 자신을 던진다. 무엇이 그를 움직이게 했을까. 안상구가 그러했듯이 언제든지 자신도 권력으로부터 내동댕이쳐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주효했을 것이다. 혹은 온갖 더러운 일을 해주던 안상구 따위도 자존감을 다치자 감히 주인을 물려한다는 생각이 그를 움직였을 것이다. 그리고 내부자가 되어 확인하게 된 권력의 추악함이 갈등의 종지부를 찍었을 것이다.

출세 지향적이었을 뿐 정의롭지 않았던 인물이 권력에서 떨어져 나갈 위기에 몰린 후 내부자로 위장 침투하여 알아 낸 자본과 권력의 추악함을 대중에게 폭로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한다는 서사는 최근작 <성난 변호사>와 일맥상통한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는 권력의 비밀을 외부에서 알기는 힘들다. 내부의 비밀이 밖으로 터져 나오기 위해서는 위기를 통해 ‘빡친’ 내부고발자가 균열을 내는 것만이 사태를 촉발시킬 수 있다. 두 영화는 이러한 현실인식을 공유하였기에, 비슷한 반전과 결말을 갖게 된 것이리라. <성난 변호사>에서는 변호사가, <내부자들>에서는 검사와 깡패가 내부고발의 뇌관으로 작용한다.



<내부자들>에서 검사가 깡패와 동일시가 일어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사실 자본과 권력의 주변부에서 그들에게 충성을 다하며 뒤치다꺼리를 한다는 점에서 검사와 깡패는 차이가 없다. 다만 자신이 개였다는 것을 자각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오늘도 권력에 충성하는 검사 혹은 깡패가 있는 반면, 그로부터 벗어나 “모히또에 가서 몰디브를 한잔”하려는 검사 혹은 깡패가 있는 것이다. 성골이 아닌 육두품으로 영원히 고통 받을 것인지, 자본과 권력의 개가 아닌 자유민으로 살 것인지는 내가 무엇을 욕망하느냐에 달렸다. 그리고 추악한 저들로부터 “적당히 짖어대다 알아서 조용해지는 개·돼지”로 불리며 살 것인지, 끝까지 저항하는 인간으로 살 것인지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렸다. 벌거벗은 저들에게 모욕당하지 말자.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내부자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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