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이러면 어쩔 수 없이 공룡이 될 수밖에 없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JTBC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가 방송된 지 1년이 지났다. 작년 말 3회 아니, 6회쯤까지 이 신기할 정도로 신선한 새로운 쇼를 시청자들이 어떻게 즐길지 몰랐다. 요리가 대세라고 그랬지만 올리브TV 밖에서 히트한 적은 그 옛날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알렉스가 요리 잘하는 멋진 남자 이미지로 인기를 구가했던 것 외에 딱히 꼽을 게 없다. 그런데 당시 요리 좋아하는 남자들은 주변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영문 이름을 가진 사람만큼이나 드물었다.

그러나 방송은 늘 트렌드를 두 걸음 뒤에서 쫓아오는 법. 어느덧 요리는 영화감상보다 흔한 취미가 되었고, 자취하는 독신남의 게으름을 풍자하는 콘텐츠는 그 자체가 게으름이 됐다. 그러는 사이 <냉장고를 부탁해>의 시청률은 8월에 7%대로 치솟은 다음 기본 5%대를 유지하면서 JTBC의 간판이 됐다. 프로그램에 등장한 레시피를 정리한 책이 나왔으며, 중간에 맹기용 해프닝 또한 정면 돌파로 이겨냈다. 그런데 가을로 접어들면서 시청률은 5%대 아래로 떨어졌다. 물론 4% 시청률은 여전히 높은 수치지만, 1주년기념 방송 이후 계속되는 소폭 하락세다.

다른 쿡방도 마찬가지다. 20여 개에 달하는 쿡방 중 선전하는 프로그램은 <냉장고를 부탁해>와 백종원 콘텐츠를 제외하면 없다. 그마저도 한창 뜨거웠을 때의 시청률에서 2%가량 떨어졌다. <냉장고를 부탁해>의 셰프들을 대부분 키워낸 올리브TV는 야심차게 리뉴얼했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쿡방 열풍 이전의 시청률로 돌아갔고 셰프의 출연과 시청률의 상관관계는 홈쇼핑 채널이 아닌 다음에야 <해피투게더><인간의 조건> 등에서 이미 무너졌다.



쿡방이 유행을 지나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나타나는 거품 감소 현상이다. 그런데 쿡방의 온기가 식으면서 시청자들은 선두에 있던 <냉장고를 부탁해>의 맛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시청률의 점진적 하락세와 맞물려 대폭 사라진 화제성은 위기의 시그널이다. 변화를 위해 새로운 셰프들을 CJ로부터 계속 공수 받고 있지만 셰프라는 낯선 존재의 익숙함을 뛰어넘는 바람을 일으키는 이는 없다. 멤버를 교체한 <비정상회담>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것이 첫 번째 위기의 징후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요리를 예능화한 첫 사례다. 요리 경연에 스포츠 중계의 요소와 예능적 장치를 도입했으며 셰프들에게 각자 스토리와 이미지에 맞는 캐릭터를 입혔다. 예능 선수들이 그러하듯 정형돈과 제작진이 셰프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고 만들어내면서 시청자들은 이 새로운 요리쇼를 익숙한 문법으로 보기 시작했다. 케이블 요리채널에서만 활약하던 셰프들이 예능으로 점프하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캐릭터를 갖게 되면서 요리를 넘어선 예능화된 관계망이 형성됐고, 친목과 반목(방송상에서)은 시청자들이 매주 찾아볼 스토리의 재료가 됐다.



백종원의 경우도 칼럼니스트 황교익에 따르면 캐릭터를 영민하게 갖추고 방송에 ‘다시’ 나서 대중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그만큼 이번 쿡방 열풍은 요리에 대한 관심만큼 세련된 캐릭터화가 대중적 영향력을 확보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방송가에서 몇 안 되는 셰프를 너무 많이 모시다보니 가진 콘텐츠보다 이미지를 너무 빨리 소비했다. 예능에서 캐릭터의 힘이 떨어지면 프로그램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프로그램의 캐릭터쇼에 최현석 셰프와 함께 가장 큰 공을 세운 정형돈의 부재 또한 악재로 작용될 전망이다.

<냉장고를 부탁해>에 드리운 두 번째 위기의 징후는 일상성의 후퇴다. 쿡방의 전성시대가 열린 가장 큰 요인은 요리가 살림이 아닌 문화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데 있다. 백화점이 본격적으로 식품관 영업을 하듯이 작은 사치, 니치마켓이 트렌드로 자리를 잡은 사회문화적 배경 위에서 꽃을 피웠다. <냉장고를 부탁해>도 일류 셰프들이 근사한 요리를 직접 만드는 레시피 쇼와 집에 있는 냉장고 재료라는 설정을 붙이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됐다. 살림인 주부의 영역과 고급 외식의 영역인 셰프를 접목한 극과 극 전략이 신선했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먹방의 정서적 접근을 넘어서서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새로운 예능 콘텐츠로 쿡방의 가능성을 드러냈다.



그런데 누구나 냉장고 속 재료로 쉽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요리라는 콘셉트는 점점 화려한 보여주기로 바뀌었다. 셰프들도 15분이 버겁다. 출연자들은 자신의 취향의 드러내는 폭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강남이나 판교 식품관 수준의 냉장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일상과의 접목은 희미해졌다. 미션을 수행하는 셰프들의 기술과 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초점이 변해갔다. 물론 손쉬운 요리만 선보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런 TV에서 시연되는 요리를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고개를 돌리거나 관심이 줄어들 때, 셰프들의 예능은 무기를 잃게 된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셰프들의 풀을 넓히면서 레시피의 다양성과 더 많은 캐릭터 확보를 하려했다. 그런데 셰프 콘텐츠에 대중이 질려버리면, 신선한 캐릭터를 수급한다하더라도 승부와 중계의 방식을 택하는 이 쇼는 어쩔 수 없이 공룡이 될 수밖에 없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정형돈과 장동민의 자리이동보다 더 심대한 숙제를, 어느 순간 쿡방이 앞으로 나아갈 향방을 부탁받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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