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아걸·f(x), 아이돌 걸그룹에서 그 어떤 단계로 발을 디디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씨야, 가비엔제이 등 소몰이 걸그룹 시대에서 소녀시대의 ‘Gee’와 원더걸스의 ‘Tell me’의 대히트로 후크송 걸그룹 시대로 넘어온 게 벌써 2008년의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걸그룹 사운드는 소몰이에서 후크송 시대로 건너올 때의 그 신선한 청량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보기 좋고, 흥얼거리고 좋고, 춤추기 좋지만 딱 거기까지.

현재의 걸그룹은 어떤 정형화된 코드 안에서 계획되고 만들어지는 감이 있다. 귀여움과 섹시함을 겸비해야 하지만 적정치를 넘어서면 안 되는 안전지대에 그녀들은 서 있다. 그녀들은 사각의 브라운관, 스마트폰 화면 안에 있어야 할 뿐 그 밖으로 튀어나와 대중을 도발해서는 안 된다. 아니, 어쩌면 도발도 가능하지만 사랑스럽고 안전한 도발이어야 한다. 그룹 쥬얼리의 멤버였던 예원의 “언니, 나 싫죠?” 같은 도발은 위험하다. 반면 <진짜 사나이>에서 교관의 울음을 그치라는 명령 앞에서 보여준 혜리의 눈물 애교 도발은 걸스데이와 혜리의 이름을 더 널리 알렸다.

현재 걸그룹이 추구하는 노래는 자극적이면서도 익숙한 사운드, 그러니까 다소 인스턴트하게 들리는 댄스음악들이다. 그녀들의 노래는 귀로 듣는 것만으로는 다소 부족하다. 항상 무대 위 그녀들의 섹시한 춤과 애교 섞인 표정은 필수다. 앨범 아닌 음원 시대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보는 지금, 적당한 음악과 화사한 3분의 무대로 승부하는 걸그룹은 적합한 아니 가장 만만한 콘텐츠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동영상의 삭제가 몇 초 만에 가능한 시대이듯 콘텐츠로 소비되는 현재의 걸그룹 또한 언제든 쉽게 사라질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현재의 걸그룹들은 이 비슷비슷한 코드 안에서 도드라지려 애쓴다. 좀 더 소녀스럽거나, 터프하거나, 가창력으로 승부하거나 아니면 예능에서의 개인기 같은 전략으로. 하지만 수많은 걸그룹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나타났다 금방 사라지는 시대에 그 특유의 매력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신인 걸그룹 여자친구의 데뷔곡 ‘오늘부터 우리는’의 ‘꽈당’ 영상은 현재의 걸그룹 시장의 날 것을 보여주는 영상 아닐까? 넘어져도 일어나서 사랑스럽게 미소 지으며 긴 머리를 찰랑거리고, 다시 넘어졌다 일어나도 아무 일 없었던 듯 그녀들은 춤을 춘다. 더욱 아이러니한 건 이런 그녀들의 ‘꽈당’무대가 오히려 고만고만한 신인 걸그룹들 사이에서 그녀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체설, 소속사 이적 등으로 한때 활동이 뜸했던 에프엑스와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컴백은 인상적이다. 컴백 자체가 인상적인 게 아니라 바로 그녀들의 새로운 음악이 인상적이라는 의미다. 두 그룹 모두 눈으로 봐야만 느껴지는 게 아니라 귀로 들어도 매력적인 결과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에프엑스에서 가장 아이돌에 가까운 분위기를 연출했던 설리의 탈퇴로 에프엑스는 꽤 긴 공백이 있었다. 하지만 에프엑스의 새 앨범 ‘4walls’은 오히려 전 멤버의 빈자리를 다른 멤버들이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과감히 과거의 아이돌스러운 분위기를 삭제한다. 과거 그녀들의 앨범에서 느껴졌던 엉뚱하고 발랄한 아이돌의 색은 이번 앨범에서 아예 사라졌다. 대신 ‘4walls’에는 여백 있으면서도 묵직한 딥하우스 사운드로 가득하다.

사실 에프엑스의 앨범은 그 이전부터 듣는 맛이 있었다. ‘일렉트릭 쇼크>’나 ‘사랑니’ 같은 곡을 타이틀로 들고 나올 걸그룹이 과연 있을까? 또한 앨범의 숨겨진 명곡들인 ‘Beautiful Stranger’나 ‘Airplane’, ‘미행’, ‘종이심장’ 등을 통해 세련되고 감성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앨범 ‘4walls’는 과거 그녀들의 앨범처럼 일렉트로닉 종합선물 같은 사운드가 아니다. 앨범의 수록곡 ‘Diamond’처럼 필요한 사운드만 세공해서 여백의 미가 담긴 소리들을 모았다. 그 위에 크리스탈, 엠버, 루나, 빅토리아 각각의 개성 있는 음색이 정교하게 겹쳐진다. 타이틀곡인 ‘4walls’는 오버하지 않고 필요한 사운드만 쌓아올린 일렉트로닉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더구나 ‘4walls’에서 들리는 딥하우스의 분위기를 시종일관 마지막 수록곡까지 유지하면서 기존의 앨범에 비하면 훨씬 더 통일성 있는 앨범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반면 발랄하고 엉뚱한 노랫말들은 훨씬 더 함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바뀌었다. ‘4walls’를 통해 에프엑스는 섹시하기보다 시크한 성인식을 보여준 셈이다.

한편 브아걸은 소몰이 걸그룹 시대의 막차를 탔던 데뷔 십 년 차에 가까워지는 장수 걸그룹이다. 그녀들은 이후 ‘love’와 ‘어쩌다’로 성공적으로 후크송 시대에 안착했다. 그리고 ‘Abracadabra’의 시건방춤으로 그녀들은 인기의 정점을 찍는다. 그녀들 특유의 매력은 아마 보컬그룹으로서 네 명의 호흡이 어떤 사운드에서나 매끄럽게 조화를 이룬다는 점일 것이다.



해체설이나 소속사와의 갈등 문제 등을 딛고 브아걸이 오랜만에 발표한 ‘Basic’은 매력적인 보컬과 풍성한 사운드가 만났을 때 어떤 효과를 남기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타이틀곡인 ‘신세계’는 브아걸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노래이면서 그 노래의 확장판이라 볼 수 있다. 1970년대 디스코 사운드를 세련되게 변주한 이 곡은 거기에 브아걸의 시원한 보컬과 함께 꽤 그럴듯하게 신세계로 듣는 이를 유도한다.

그녀들의 앨범 ‘Basic’은 타이틀곡보다 수록곡들에서 그녀들의 변화가 확실하게 감지된다. ‘Basic’은 아이돌의 앨범이나 걸그룹의 앨범을 떠나 복고풍의 사운드를 흥미롭고 매끄럽게 재현한다. 언뜻 보면 이효리의 ‘모노크롬’ 앨범이 떠오르는 ‘웜홀’ 같은 경쾌한 복고풍 사운드는 이효리보다 풍성한 그녀들의 보컬이 얼마나 노래를 잘 살려주는지 보여주는 예가 될 것도 같다.



한편 1990년대 후반 한국의 초기 언더그라운드 힙합 사운드가 떠오르는 ‘Light’는 멤버 미료의 랩핑과 더불어 그 특유의 묵직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또한 브아걸의 보컬과 미끄러지듯 세련된 1990년대 레니크레비츠의 사운드 같은 복고풍 감각이 어우러진 ‘아이스크림의 시간’은 기존의 브아걸에서 느끼지 못한 매력이 물씬 풍긴다.

무엇보다 이번 컴백 앨범으로 에프엑스와 브아걸 모두 인기 정점을 찍었던 아이돌 걸그룹에서 그 다음의 어떤 단계로 넘어간 것 같다. 탄탄한 소속사의 영리한 전략이건 아니면 멤버들 각각의 노력의 성과이건 간에 두 그룹은 현재 각자의 위치에서 정체성을 음악으로 확실히 보여준다. 걸그룹의 유통기한이 길어야 오 년인 케이팝 시장에서 그들은 다른 팀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디딘 셈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M엔터테인먼트, 미스틱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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