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다큐가 아닌 예능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려다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 예능 <위대한 유산>이 정규 편성됐음을 아는 시청자는 많지 않다. 심지어 2회째인데도. <위대한 유산>은 지난 추석 연휴 기간 선보인 파일럿 중 가장 성공한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매우 신선하다거나 화려한 캐스팅 덕은 아니었다. 부모가 평생을 바쳐온 일터에 자식이 동반 출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 소재나 연출 방식은 <인간극장>류의 다큐에서, 가족 중 연예인이 있는 집안의 부모자식 간의 관계 회복이란 주제와 공감대는 <아빠 어디가>부터 <아빠를 부탁해>에서 느끼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추석 연휴를 보내던 시청자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연예인들의 잔잔한 이야기에 큰 호응을 보였다. 제작진이 ‘흰죽’ 같은 프로그램이라 정의하듯 그 어떤 인위적 연출도 배제했다. 연예인이란 신분을 놓고 찾아간 가족의 그리운 품은 포근하고 따뜻했다. 마냥 우리와 다른 연예인으로만 여겼던 이들이 화려한 무대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전혀 다른 소시민적 삶의 터전과 사연 깊은 가족사를 드러냈다. 철든 연예인의 모습은 우리 스스로 가족과 주변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처럼 성적도 평가도 의의도 좋은데 정규편성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MBC 예능의 무덤인 목요일에 편성되어서 그럴까. 시청률은 파일럿 방송 대비 1/3로 떨어졌다. 정규화되니 파일럿을 띄워주던 훈풍은 사라지고 편성표 속 닌자가 되었다. 의도도 좋고, 평가도 좋았지만 정규편성 후 시청자들의 차가운 외면을 받는 이유는 추석 연휴와 평일의 분위기 차이에 있다. 비교적 시간이 많고, 가족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명절에 한 번씩 보면서 감동도 받고 마음을 돌아보긴 적당한 콘텐츠다. 하지만 매주 즐겨찾기에는 포복절도 속에서 가족의 정을 다루는 동시간대 <자기야-백년손님>의 가벼움과 유쾌함을 이길 수가 없다.



<위대한 유산>은 관찰형 예능이 아닌 100퍼센트 다큐다. 그리고 눈물, 관계회복, 그리고 가족의 사랑을 전하겠다는 의도를 담은 기존 다큐와 차별점이 없다. 다큐가 예능보다 언제나 늘 관심과 시청률이 낮았던 상황을 역전할 특징이 없는 것이다. 제작진은 인위적 연출을 배제한 것을 장점으로 내세웠지만 이것은 이런 상황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자막, 음악의 예능화된 사용 자제가 문제가 아니다. 관찰형 예능으로든, 다큐로든 이야기 속에서 정서과 감동을 전해야 하는데 <위대한 유산>은 어떤 장르에 대입하든 드라마가 부족하다. 정규 편성되면서 소시민적 삶을 사는 연예인 부모님의 일터를 보여준다는 그나마 특색 있던 기획마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로 확장되어 더욱 밋밋해졌다.

기러기 아빠로 우리나라에 건너온 외국인 노동자의 가족을 찾아가 아빠의 품으로 초대하는 과정을 다루는 EBS <아빠 찾아 삼만리>처럼 목표와 구성이 확실한 이야기도 아니고, EBS <리얼극장>처럼 갈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관계회복, 철든 연예인을 보여주는 방향은 정해져 있고, 집 안에서 다룰 수 있는 이야기는 한정적이다.

그렇다면 <위대한 유산>이 가진 유일한 장점은 연예인의 출연이다. 겉만 화려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속이 꽉 차 있다. 대견함과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공감대가 호감을 이끈다. 그러나 무대 아래로 내려온 연예인에 대한 관심은 한차례 이슈가 될 순 있어도 지속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차라리 <인간극장>류의 인물 다큐처럼 주인공을 두고 집중도를 높여 긴 호흡으로 관계를 풀어냈으면 이야기가 더욱 두드러졌을 것이다. 지금처럼 예능의 방식에 따라 여러 가족을 교차 편집하니 감정선이 뚝뚝 끊어진다. 기존 다큐보다는 응원하게 되는 정서가 약하고,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관찰형 예능의 기능은 없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한정된 공간과 관계에서 이야기를 생산하려다 보면 기획의도가 점점 더 둥글어질 수밖에 없다. 벌써 낚시를 가고 사우나를 갔으니 조짐은 시작됐다. 초반 호응 속에 기획의도대로 아빠와 딸의 관계에 몰두했다가 점차 이벤트만 벌이다 끝났던 <아빠를 부탁해>가 떠오른다.



관찰형 예능과 다큐 사이에서 선택을 했어야 했다. 기획의도를 살려서 조금 더 긴 시간을 들이고 공들여 밀착된 드라마와 감정을 보여주거나, 차라리 예능적 요소와 미션을 투입하는 편을 고민했어야 했다. 이도저도 아니게 <위대한 유산>은 예능의 빠른 진행(제작) 방식으로 다큐의 정수를 잡아내려 했다. 그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착하긴 한데 이야기가 없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뜻하고 의미 있는 것은 좋으나 재미(웃음을 넘어선 개념으로)가 있어야 착하든 뭐든 의미가 빛을 본다. 그런 점에서 <위대한 유산>은 콘셉트와 착하다는 당위에 기댄 어정쩡한 다큐가 되어 버렸다.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인위적 요소를 배제할 때가 아니라 훨씬 더 제작진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해 보인다. <위대한 유산>을 다큐가 아닌 예능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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