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꿈꾸는 배우들, ‘1박2일’ 김주혁에게 배워라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김주혁이 KBS 예능 <1박2일>을 떠났다. 그는 마지막 방송에서 ‘이 일이 주업이 아니며, 늘 민폐라고 생각했다’고 하차의 변을 밝혔다. 겸손함보다는 담담함이었다. 아침에 라면을 끓이는 것 외에 대단한 이별의식은 없었다. 대신 게임 앞에 목숨을 걸던 보통 때처럼 웃고 까불던 것보다는 차분하게 큰형과의 추억을 멤버들, 제작진, 시청자들과 나누며 마지막 촬영을 마쳤다. 김주혁이 함께한 마지막 방송은 지금까지 끈끈하게 잘 굴러온 ‘이 멤버 리멤버’에 대한 기념촬영 같았다.

김주혁은 예능 시청자들에게 매우 낯선 인물이었다. 차태현과 같은 배우지만 연기 이외의 사생활 노출이나 대중 친화적 활동이 거의 없었던 터라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무도 몰랐다. 그나마 그를 주목한 사람들은 패션을 읽었지만 김주혁은 연애설 이외에는 ‘배우’ ‘연기’ 이외에는 할 말이 없는, 쉽게 말해 지적인 연기파 배우였다. 그런 그가 험한 예능의 대표 격인 <1박2일>에서 먹고 자기 위해 구르고 뛰고 장난치는 게임쇼에 큰 형님으로 들어온다니 의아했다. 김승우, 엄태웅 등 일전의 실패 사례들도 떠오르면서도 뭔가 신선한 기대감을 품게 했다. 소속사 대표는 사회성이 결여된 김주혁에게 좋은 기회인 것 같다며 캐스팅을 밀어붙였다. 그러니까 김주혁의 예능 출연은 대중적 노출이 없는 스타의 숨겨진 인간적인 면을 부각해 호감 있는 캐릭터로 키워내는 나영석 사단과 비슷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촬영 후 스토리텔링을 하는 관찰형 예능과 달리 <1박2일>의 출연자는 자신의 존재감을 카메라가 돌아갈 때 어떻게든 드러내야 한다. 제작진, 출연자, 시청자 모두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를 때, 김주혁은 노래방 기계에 맞춰 춤을 추며 자신의 포부를 드러냈다. 수줍음과는 조금 다른 김주혁의 내성적인 성향과 예능에 녹아들려는 그의 노력이 합쳐지면서 기존 예능 캐릭터에선 잘 볼 수 없었던 없던 뭔가 소심하고, 늘 운이 없으며, 게임에 능하지 못하지만 만만하지는 않는 ‘구탱이형’ 캐릭터가 탄생했다.

여기서 김주혁과 <1박2일>이 상생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그는 기존에 실패한 배우 출신 예능 선수들과 달리 주변에서 그를 위한 판을 깔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성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곧 찾아냈다. 그리고 팀에는 그와 겹치거나 비슷한 성향을 가진 멤버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새 단장한 게임쇼의 캐릭터 구성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완료되었다. 또 한 가지, 김주혁은 수준 높은 아메카지 패션을 선보이며 <1박2일>의 센스를 한층 업그레이드했다.



이번 시즌 <1박2일>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복불복보다도 멤버간의 친밀도다. 대세가 바뀌었음에도 운신의 폭이 한정적인 게임쇼가 여전히 시청자들과 정서적 공감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정’ 때문이었다. <1박2일>은 2000년대 중후반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의 사람 냄새가 남은 유일한 쇼라고 해도 무방하다. 복잡해지고 정교해진 예능판에서 <1박2일>이 여전히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온 가족이 모이는 일요일 저녁처럼 무심한 듯 따뜻한 정, 사람의 정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웃고 떠들며 지켜보는 가운데 함께한다는 공감대는 구탱이형 김주혁부터 얍스 김준호까지 자신만의 확고한 캐릭터를 갖춘 멤버들의 조화를 바탕으로 피어날 수 있었다.

역대 그 어떤 ‘1박2일’ 멤버보다 명예롭게 하차하는 김주혁의 결정에 박수를 치면서도 아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큰 스케일과 화려한 게스트를 활용하는 <런닝맨>이나 멤버들의 역할분담과 역학관계를 한창 다시 재조합 중인 <무한도전>과 달리 <1박2일>이 현재 단단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유치함이 한 스푼 들어간 멤버들 간의 끈끈한 유대 덕이기 때문이다. 그 우정이 시청자들의 충성을 이끌어냈는데 그 중 한 명이 떠난다고 하니 아쉽고 섭섭한 것이다.



<1박2일>에서 김주혁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가끔 짜증을 내거나 애교를 부릴 뿐이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오버와 적당한 유치함이 따스함을 만드는 <1박2일>에서도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학습이 안 된 어색함이 화면에서 묻어난다. 그는 마지막 촬영에서도 ‘여느 때처럼’ 담담하고 일상적으로 임했다. 대신 멤버부터 스태프 모두가 함께했던 그 어떤 현장보다 “가장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말을 남겼다. 김주혁의 소회는 정준영과 김준호가 그들다운 모습으로 산통을 깨는 통에 더욱 와 닿았다.

윤종신, 데프콘 같이 주업을 병행하며 예능에 정착한 케이스는 많지 않다. 주업이 예능이 아닌 선수들에게는 한정된 롤이 있고, 때로는 고착화된 이미지가 본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김주혁은 함께하며 웃음을 주면서도 결단을 내렸다. 어색하게 들어와 어쩔 줄 모르던 그가 무려 2년이란 세월동안 시청자들 앞에 예능인으로 매주 나섰다. 그런 그에게 한 회를 통틀어 송별회를 마련한 것은 당연했다. 바쁜 와중에 멤버들은 각자 김주혁과 함께한 추억이 가장 많이 남은 장소를 다시 다녀왔다. 그렇게 모아온 영상과 사진을 본 다음 아무렇지도 않게, 그 다음이 또 계속 될 것처럼 잠자리에 들었다. “한 명 빠진다고 티가 안 난다”고 웃으며 농담을 나눴지만 이 멤버 리멤버에 대한 아쉬움은 당분간 어쩔 수 없는 아쉬움으로 남을 듯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