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을 대표하는 11인의 한국 영화배우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작년처럼 올해를 대표할 몇 명의 한국 배우들을 추렸다. 상 같은 건 아니다. 올해 언제나처럼 준수한 연기를 보여준 전도연이나 송강호의 이름은 여기에 없다. 악감정이 있거나 영화나 배우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새롭게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 이병헌

고백하자면 더 이상 자연인 이병헌의 얼굴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기가 힘들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지난 몇 년 간의 우스꽝스러운 스캔들이 떠올라 저절로 피식피식 웃게 된다. 그가 아주 작정하고 나쁜 인간이었다면 차라리 괜찮았을 텐데, 이 코미디에서 그의 역할은 ‘재수없고 귀찮고 멋없고 재미없는 한국 아저씨’였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영화배우에게 이런 망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올해 선보인 두 편의 영화 <협녀: 칼의 기억>과 <내부자들>에서 보여준 연기는 여전히 훌륭했다. 더 놀라운 건 적어도 영화를 볼 때만큼은 그 ‘로맨틱, 성공적’ 따위의 우스꽝스러운 자연인 이미지를 거의 완벽하게 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프로페셔널리즘의 힘이다.



◆ 이정현

최근 몇 년 동안 이정현은 <파란만장>, <범죄소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등과 같은 일련의 소규모 영화들로, 자신이 얼마나 좋은 배우인가를 다시 알려왔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이정현은 최고였고 그 연기는 청룡영화상에서 보답을 받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들의 영화로 오로지 이정현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의 영역이 있음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 이유영

올해의 신인이다. 1년 전에는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이 배우는 <봄>, <간신>, <그놈이다> 등에 연속으로 출연하면서 모두 빼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각각의 역할이 극단적일 정도로 달랐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각각의 영화에서 보여준 외모 변화도 극단적이었다. 이런 행보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우린 정말 흥미로운 경력의 시작을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꾸준히 재료가 되는 캐릭터와 영화들이 들어와야겠지만.



◆ 박소담

역시 올해의 신인이다. 이유영과 마찬가지로 연기폭과 테크닉이 상당한 신인으로, 올해만 해도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검은 사제들>, <사도>, <베테랑> 등과 같은 쟁쟁한 영화에 다양한 비중으로 출연했다. 이유영과 차별점이 있다면 로맨틱 코미디에서부터 사극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를 커버하면서도 호러에 강점을 보이며 자신만의 분명한 개성을 다졌다는 것이다. 이유영이 느긋하고 신중하게 저공비행하는 스타일이라면 박소담에겐 아이돌의 폭발력이 있다. 차기작으로 영화가 아닌 연극 <렛미인>을 고른 것 역시 뜻밖이면서도 일관성이 있다.



◆ 전지현

올해의 여성 스타다. <암살>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전지현이라는 스타를 얼마나 야무지게 써먹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영화이다. 추레한 군복을 입은 독립군 저격수에서부터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에 이르기까지 온갖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자신만의 확신에 찬 페이스를 유지하며 알파미를 날리는 모습을 보면 <엽기적인 그녀> 이후 이 배우가 낭비한 시간에 치가 떨릴 지경이다.



◆ 강동원

올해의 남성 스타다. 작년의 <군도>에 이어 <검은 사제들>에서도 장르와 상관없이 관객들을 끌어모으는 힘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장점과 한계에 대한 명확한 이해, 스타성의 적절한 조율, 과도한 자의식을 흘리지 않으면서 팬들을 배려하고 조련하는 그의 태도는 모두 모범적이기 짝이 없다. 절대로 따라할 수 없는 외모 강점을 무시한다고 해도 스타 지망생들이 그를 연구하고 배워야 할 거리가 너무나도 많다.



◆ 류승룡

<손님>과 <도리화가>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언제나처럼 좋았지만, 이 리스트에서는 이미지 관리를 망쳐버린 슬픈 예로 뽑혔다. 지나치게 많이 출연한 광고에서 쌓은 코믹한 이미지(여기서도 연기는 잘 했다)가 영화 속 진지한 캐릭터들에게 끼친 손해만 해도 상당한데, <손님> 홍보 때는 영화를 선택하지 않은 관객들에게 훈수를 두고 <도리화가> 홍보 때엔 칭찬이랍시고 공연배우 배수지의 ‘애교’에 대해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라 꾸준히 이미지를 까먹었다. 둘 다 제대로 된 사후관리가 따르지 않았다는 것도 어이가 없다.



◆ 김꽃비

이 배우가 <거짓말>에서 보여준 상습적 거짓말쟁이 캐릭터의 연기는 마땅히 더 주목을 받고 정당하게 평가를 받았어야 했다.

◆ 고아성

<오피스>에서 보여준 고아성의 인턴 연기는 올해 최고의 호러 연기 중 하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부터 같이 작업해왔던 감독들의 영향력을 떠나 고아성만이 가능한 특유의 영역이 독자적으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정재영

홍상수 영화 속 배우들을 자로 재는 것처럼 깔끔하게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홍상수 영화들은 모두 하나의 물줄기처럼 이어지는 연속체이고 배우의 연기 스타일과 그들이 연기하는 캐릭터 모두 이 흐름 속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최근에 이 흐름에 합류한 정재영이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 무심한 듯 강렬하게 남긴 자국을 무시하는 건 불가능하다.



◆ 황정민

황정민은 올해 두 편의 천만영화 <국제시장>과 <베테랑>의 주연이었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에서 기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정치적 성향이 전혀 다르면서도 아무런 의심없이 ‘보통 한국 남자’를 대변하는 이 두 캐릭터들은 모두 위험할 정도로 선동적이고 얄팍했으며, 배우 역시 여기에 의미있는 입체성을 추가하지 못했다. 잠시 속도를 떨어뜨리고 뒤를 돌아볼 때인 것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내부자들><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그놈이다><사도><암살><검은 사제들><손님><거짓말><오피스><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국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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