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은 평균 5%, 작품성은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드라마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2015년 한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올해의 드라마들을 생각해보면 하나의 기현상이 존재한다. 보통 시청률과 작품성은 완전히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 비슷하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2015년 드라마 세계는 다소 달랐다. 평균 시청률 5%대로 저조한 성적을 나타내면서도 작품성이나 재미 면에서는 다른 드라마들을 훌쩍 뛰어넘는 작품들이 적잖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연기와 대본, 그리고 연출의 합이 좋을 때 웰메이드 드라마가 탄생한다. 그런데 평균 시청률은 대개 5% 안팎, 작품성은 다섯 손가락에 안에 드는 이 드라마들은 웰메이드인 동시에 신선함도 잃지 않았다. 과거에 보지 못했던 신선한 감수성을 지녔거나, 혹은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잘 시도하지 않았던 소재를 과감히 밀고나갔다. 그런 익숙하지 않은 도전 탓에 어쩌면 이 드라마들이 채널경쟁에서 밀려났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드라마란 이야기에 집중해서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소파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편안하게 꼴깍꼴깍 마시는 탄산음료 같은 드라마와 달리 올해의 이 드라마들에는 좀 뼈가 있고 가시가 있다. 답답하고 숨 막히는 무언가에 목이 콱 막히는 기분도 들고 재미를 느끼려면 복잡하고 날카로운 은유와 상징의 가시들을 조심스럽게 발라먹는 수고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들은 올해가 지나고 몇 년이 지나도 다시금 기억하고 곱씹을 만하다. 만약 당신이 이 드라마들을 놓쳤다면 그리고 무언가 몰입해서 이야기에 빠져들고 싶은 욕망이 든다면 언제라도 이 5%대 드라마들을 봐주기를.

“넌 널 버린 사람만 있고, 널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내가 널 기억할게.” (정선호 <너를 기억해>)

KBS 월화드라마 <너를 기억해>는 올해의 기억할 만한 5% 드라마의 첫 출발이었다. <너를 기억해>는 몇 년 간 유행해온 수사물 드라마의 연장선이라는 오해를 살 만한 작품이었다. 혹시 이승기, 고아라 주연의 시시한 수사물 드라마와 비슷한 작품이 아닐까 오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를 기억해>는 예상한 것처럼 가벼운 부분도 있지만 생각보다 무겁고, 기대보다 사랑스러웠으며, 더불어 깊이 있는 감수성을 지닌 드라마였다. 그건 이 드라마가 주인공인 천재 프로파일러 이현(서인국)이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실체를 찾아내는 그런 단순한 수사물이 아니어서였다.



<너를 기억해>는 인간, 그것도 오해받고, 상처받고, 의심 받고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불행한 인간들에 대해 연민을 품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연기의 백미는 사이코패스 법의학자를 연기한 배우 최원영과 이 드라마 특유의 감수성을 책임진 이현의 잃어버린 동생 정선호 변호사를 연기한 신인배우 박보검일 것이다. 물론 주연배우 서인국과 장나라 또한 제 몫은 다했다. 당신이 젊은 배우들의 멋진 연기와, 장르물의 재미 그리고 신선한 감수성을 함께 갖춘 작품을 찾는다면 <너를 기억해>를 찾아볼 것을 권유한다.

만약 당신이 한국정치에 넌덜머리가 난다면 KBS 수목드라마 <어셈블리>를 보고 한바탕 웃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 같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같은 딴청계 국회의원 진상필(정재영)이 보여주는 국회 우화 <어셈블리>는 아직도 착하고 우직한 주인공이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하다.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의 정현민 작가의 <어셈블리>는 사실 기대와는 다른 작품이었다. 현실 정치에 대한 치밀한 은유로 가득했던 사극 <정도전>과 달리 <어셈블리>는 현실 정치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현실 정치의 혐오스러움을 피하기 위해서일까? 작가는 이 현실 정치판에 조선소에서 정리해고 당한 3년차 실직 가장 출신의 국회의원을 던져 넣는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이득이 된다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정치공학의 국회에서 진상필의 패기 넘치는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저요, 나라 전체와 국민을 함께 생각하는 그런 진짜 국회의원, 저요, 정말 국민들한테 떳떳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그런 진짜 국회의원이 되고 싶습니다.” (진상필, <어셈블리>)

그리고 정치공학에 물든 국회의원들을 쥐고 흔들며 돌아다니는 진상필의 모습은 어느 순간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에서 진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얼굴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물론 여기에는 연기공학 따지지 않고 이 진상필을 얼굴 붉어지며 진실 되게 연기한 배우 정재영의 열연도 한 몫 한다.

한편 JTBC 드라마 <송곳>은 국회가 아닌 노조를 이야기하는 드라마다. 시청률 5%도 아닌 1%와 2%를 오가는 이 드라마는 작품성으로는 올해의 드라마 중 1, 2위에 꼽아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 드라마에는 현실이 있고, 그 현실을 충실하게 화면으로 옮기는 힘이 있다. <송곳>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원작 웹툰이 있고 그 웹툰이 드라마화한 이후에도 힘을 잃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이 이야기 자체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과 공명하는 스토리이기 때문일 거다.



<송곳>은 푸르미 마트의 과장에서 사측의 불의를 참지 못하고 마트 직원들과 노조를 만드는 이수인 과장(지현우)의 이야기를 천천히 하지만 꼼꼼하게 훑는다. 그리고 이수인을 돕는 노동 상담소 소장 고구신(안내상)을 통해 자본주의의 풍요로운 외양 속에 척박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현실을 알려준다. <송곳>은 당신이 외면하고 싶었던 혹은 외면하고 싶은 현재의 나를 보여준다. 그리고 아마 이 드라마를 완주한 사람이라면 당신의 마음속에서 불뚝거리던 심장박동이 어느새 송곳으로 변해 세상 밖으로 뚫고나올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한 걸음 내딛고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고구신, <송곳>)

SBS 올해의 수목드라마를 꼽는다면 현빈의 <지킬>도 아니고 시청률에서 꽤 괜찮은 성적을 올렸던 수애의 <가면>이나 김태희와 주원의 <용팔이>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로 시청률 5% 안팎을 오르내리던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야말로 올해 SBS 수목드라마의 진정한 승자 아닐까?



아치아라에 들어온 외지인 미술선생인 김혜진(장희진)의 백골 시체를 캐나다에서 온 외국어 교사 한소윤(문근영) 발견하면서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은 시작된다. 그리고 드라마는 첫 회부터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의심스럽고 그들의 알리바이는 변주되거나 바뀌었다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서투르거나 빤하지 않다. 그리고 오컬트, 강간, 아동학대 등등 수많은 자극적인 소재가 등장하지만 그것 때문에 미간이 찌푸려지지 않는다. 그저 말초적 자극을 위한 것이 아니라 드라마 전체의 이야기의 구조를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납득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마을은 이런 마을의 속내를 다 드러내면서 평화로워 보이는 인간 아래 얼마나 끔찍한 진짜 괴물의 얼굴이 숨어 있는가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수많은 사건들이 얽힌 아치아라의 이야기를 이토록 정교하게 숨 쉴 틈 없이 긴장을 유지하면서 16부까지 끌고 온 걸 보면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은 분명 올해의 괴물 같은 드라마다. 그리고 당신이 그 탄탄한 이야기의 근육을 지닌 괴물에 매혹 당하고 싶다면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은 한번쯤 완주할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JT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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