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집 새집’이 분양에 성공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최근 문화 관련 사업의 화두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서점, 옷가게, 식당 등등 ‘문화’를 판매하는 곳에서 라이프스타일 제안은 필수 요소다. 우리 방송에서도 마찬가지다. 광고와 구분이 안 가던 맛집 소개는 그 집이 왜 맛있고, 그 맛이 무엇인지 탐미하는 식도락가 콘셉트로 넘어갔고, 요리 행위에 문화적 감수성과 삶의 가치관이 투여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TV예능도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시청자의 일상을 파고든다. 웃음을 넘어서 삶에 만족과 가치를 주어야 한다. 이제 취향은 돈이 되고 일상은 모든 것이 시장이 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쿡방을 이을 주자로 집방 대세론이 뜨고 있다. 사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에서는 1990년대부터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방송과 매체가 붐을 이뤘다. 흐름은 대략적으로 옷에서 먹거리로 그다음 공간으로 넘어갔다. 물론 접근 가능성과 소비 비용과 기회라는 측면에서 ‘공간’이 폭발적인 콘텐츠가 되진 않았지만. 2000년대 중반 게이 콘텐츠로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던 <퀴어아이 포 스트레이트가이>를 떠올려보자.

해외에서 인테리어와 공간을 다루는 콘텐츠는 보여주는 형식의 정보성과 메이크오버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자리 잡았다. 인테리어와 공간에 관한 수많은 잡지, 무크지, 단행본이 있는 일본의 경우 방송도 타인의 공간을 살펴보는 콘텐츠가 많다. 26년째 유명 탤런트 와타나베 씨가 집을 소개해주는 <와타나베의 건물탐방>이 대표적이며, 단독주택, 리뉴얼, 땅 사는 것부터 완공까지 집짓는 과정 등 세세하게 분야별로 파고든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킨포크> 같은 포틀랜드발 문화도 유행하고 있지만 자본을 앞세운 규모 자체가 어마어마한 메이크오버 프로그램들이 줄을 잇는다.

JTBC 새 예능 <헌집줄게 새집다오>는 모든 면에서 앞선 두 가지 장르와 다르다. 한마디로 <냉장고를 부탁해>의 인테리어 편이다.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정보의 제공 측면이나 보여주기보다 ‘베틀’ 방식을 도입해 스포츠처럼 소화한다. 전 세계적인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지만 ‘인테리어 쇼’는 유례가 없는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인테리어 쇼의 포인트는 취향이나 삶의 가치관을 제안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실용적 팁을 제안한다. 그런데 셀프인테리어 꿀팁을 주겠다는 의도가 시청자들의 일상과 로망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방송으로 볼 만큼 멋진 삶의 제안이 될지는 물음표다. 쿡방만 하더라도 우리의 살림을 윤택하게 해주는 실용적인 정보가 쉐프들이 만드는 화려한 볼거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런데 페인트 색, 블라인드 설치 등등 오랜 시간이 걸리고 눈을 즐겁게 할 퍼포먼스랄 것이 요리보다 부족하다. 게다가 전월세의 경우 못질도 민감한 풍토, 고급 빌라와 아파트일수록 획일화되는 문화적 토양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99만원 내의 리폼 공사가 시청자들에게 얼마만큼 실용코드로 다가올지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렴함이 과연 실용성을 강조한 포인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실용성은 누구나 따라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기준일 것이다. 그러나 99만 원이란 예산 안에서는 벽에 칠하거나 리폼을 하거나 소품을 활용한 꾸미기 대결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가구, 조명, 패브릭 모든 면에서 취향의 제안이라는 디테일을 놓치고 가는 거다. 한마디로 방송 출연자 중 자신의 집을 일부러 그렇게 꾸미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란 말로 정리할 수 있다. 저렴한 예산으로 시청자들의 로망을 자극할 수 있을까? 공간을 꾸미는 것은 원래 돈과 오랜 관심이라는 안목이 드는 일이다. 그것을 안 하려면 수납법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그 예전 인테리어와 공간을 다루던 콘텐츠라고 하면 모델하우스 같은 멋진 화보와 부잣집 연예인 집을 부럽게 그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이런 사람은 이렇게 산다. 이렇게 살 수도 있다. 혹은 이런 것은 어떠니, 잘 봤지? 그런데 너는 어떻게 살래? 라는 삶의 가치관을 담는 방향으로 변했다. 이게 라이프스타일 제안 차원에서 구르메 다음 인테리어가 주목받은 이유다. 그런데 <헌집줄게 새집다오>는 공간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건너뛰고 바로 셀프인테리어를 위한 실용적인 팁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프로그램은 결정적 한 수로 집 안을 스튜디오로 옮겨왔다. 공간을 다루는 콘텐츠가 예능으로 가볍게 다가오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공간을 다루려면 그 공간의 주인이 살아온 삶과 생각을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공간은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의 직업, 취미, 취향 등의 살아온 맥락이 드러나는 곳이다. 카탈로그가 아닌 이상 공간에 비춰진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거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아무리 재현해도 실제 살아가는 공간이란 정서까지 가져올 순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헌집줄게 새집다오>가 앞으로 겪게 될 어려움이다. 실용적인 팁을 대거 방출해 실컷 꾸몄지만 실제 집이 아닌 방송 세트로 남는 거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일은 언제나 흥분된다. <헌집줄게 새집다오>는 인테리어와 공간이 본격적으로 예능의 품으로 들어온 출발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자칫 예능화라는 방법론에만 몰두하다가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이란 큰 흐름 속에서 ‘공간’이 주목받는 이유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곡해의 소지가 되진 않을지 염려된다.

이런 차원에서 1회 출연자 예정화는 이 프로그램의 가훈으로 삼을 만한 말을 남겼다. 셀프인테리어 전문가 제이쓴이 꾸민 방이 예쁘긴 했는데 청소할 자신이 없어서 선택 안 했단다. 집 안에 캐노피와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방송이나 모델하우스에서는 보긴 좋지만 살림의 관점에서는 낙제다. 옥상이 없는 집에서 침구 빨래는 곤욕이다. 게다가 그걸 언제 다리고 있겠는가. 고급 실크나 린넨이라면 드라이를 자주 맡겨야 한다는 비용도 문제가 된다.

방송의 캐치플레이스로 내세운 ‘공간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꾸미는 것’만으로도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에 본격 시작한 인테리어 예능은 공간에 가치를 투영하고 취향을 학습하는 어려운 길 대신 일상의 접목이란 실용적 팁을 택했다. 공간에 대한 관심과 학습이 무르익지 못한 우리네 문화적 토양에서 찾은 답일 것이다. 그러나 정수를 빼고 쉬운 길을 택했다. 그 기회비용이 얼마나 큰지, 취향과 사람이 빠진 공간 이야기가 얼마나 갈 수 있을지, 아무래도 괜히 공사장을 지키는 집주인의 심정으로 지켜보게 될 것 같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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