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빠 찾아 삼만리’, 착하면서도 재밌는 모범생이 나타났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15년 방송계 화두 중 한 가지가 장르 간 융합이다. 사실, 지난해부터 두드러진 현상이나 올해 들어 이른바 결합상품들이 방송가의 주력 상품으로 자리를 확실히 잡았다. 드라마의 스토리라인에 예능의 문법이 더 해지기도 하고, 다큐제작 방식과 결합한 예능에 드라마의 스토리라인이 추가됐다. 지난 대선 이후 시사와 예능 토크쇼의 결합은 이제 특정 채널의 밥줄이 됐다. 그리고 보다 정교하고 다양한 방향으로 더욱 더 활발하게 새로운 결합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올해 가을 시작된 EBS 다큐멘터리 <글로벌 아빠 찾아 삼만리>는 꽤나 신선하게 다가온다. 가정의 소중함과 정이란 휴머니즘과 외국인 근로자 100만 명 시대에 EBS다운 교훈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로드무비 형식과 결합했다. 그리고 로드무비 속을 채우는 소소한 사건들과 몰래카메라 콘셉트는 다큐에 거꾸로 오늘날 관찰형 예능의 방식과 정서를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가족의 애틋함이란 휴머니즘을 다루지만 신파가 아니다. 예능의 정서를 가미한 경쾌한 발걸음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선다. 이처럼 장르 간 결합을 통해 빚어낸 재미 속에서 다큐 고유의 유익함과 감동을 잃지 않고 전한다.

<글로벌 아빠 찾아 삼만리>는 외국인 노동자 버전 기러기 아빠 다큐다. 돈을 벌기 위해 기러기 아빠가 되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가족과 몇 년 간 생이별을 하면서까지 우리나라로 돈을 벌기 위해 온 사연과 힘들게 일하는 주인공의 삶의 현장을 보여준다. 그런 한편 카메라는 몽골, 베트남,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키르기스스탄 등등 주인공의 가족이 사는 고향 집으로 날아간다. 우리는 그들을 외국인 노동자로 보지만 그곳에서 그들은 한 가정의 가장이고 누군가의 아들이고, 동네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즉, 우리와 다른 외국인 노동자 중 한 명이 아니라 인생의 역사와 꿈을 가진 한 명의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남편도 돈을 벌지만 부인도 가정에 보탬이 되고자 악착같이 돈을 벌고 모은다. 다시 완벽한 가정을 이루고 살 미래를 그리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과 함께, 남편이자 아버지 몰래 한국에 찾아가기 위한 준비에도 돌입한다. 선물도 사고 아이들은 한국 여행을 위한 한국어 배우기에 돌입한다. 관찰형예능의 재미는 귀여운 아이들이 아버지를 보겠다는 열정을 뿜어내는 데서 빛이 발한다.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인천이란 대형 공항에서부터 서울이란 낯선 대도시를 거쳐 아버지가 일하는 안산부터 완도까지 전국 구석구석으로 직접 찾아가는 여정이 이 프로그램의 백미다.

그리고 주인공 몰래 가족을 우리나라로 초대해 아버지의, 남편의 일터에서 깜짝 놀라게 해주는 몰래카메라 상황극이 펼쳐진다. 가족에게 송금하느라 휴가 차 고향에 들리는 것도 어려운데,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서 가족을 만나는 엄두도 못 낼 일이 벌어지는 거다. 그간의 그리움과 고단함, 외로움이 녹는다. 그리고 짧지만 다시 단란한 가족으로 시간을 보낸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기존 다큐의 경우 한국에 ‘들어온’ 며느리 등 한국사회가 끌어안아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책무와 인식에 대해서 고민하게 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생김새와 국적이 다를 뿐 외국인 노동자들도 우리와 다른 남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상식과 감정과 책임을 가진 ‘똑같은 사람’ 이라는 것을 말한다. 외국인 노동자라고 구분지어 바라보는 그들이 공동체의 위협요소나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가족이 누구보다 소중하며 그런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사는 우리네 아버지와 똑같은 직업인이자 가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매우 당연한 것인데 그렇다.



떨어져 있던 가족이 만나는 여정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더 나아가서는 가난한 나라 사람이라는 배타적 인식)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녹아내린다. 가족과 재회하는 순간, 동료들도 눈물을 흘리지만 저 멀리 있는 고용주와 한국인 직원들도 눈물을 훔친다. 말이 안 통하고, 외모가 다를 뿐, 모두가 같다. 방송사와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의 협력 하에 펼쳐지는 이 작은 쇼는 주인공들에겐 인생의 선물이고,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겐 따스한 감정과 세계시민 의식을 고취시킨다.

사실, 아빠를 찾아온 가족이 아빠와 만나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요약하면 이게 끝이다. 스토리라인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런데 눈물바다가 아닌 잔잔한 웃음이 흐르고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 관심이 가는 건 가족의 진심과 관찰형예능에서 빌려온 요소들이 잘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모로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거기다가 유익하고 감동적이니 그 쉽지 않다는 착하면서도 재밌는 유쾌한 모범생 같은 프로그램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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