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빈과 이나영이 은퇴라도 해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제12강. 남이사 [남+이사]

[관용구] [비표준어]
1. 상대의 결례에 가까운 오지랖을 나무라는 구어적 표현.
2. 누가 결혼을 언제 어떻게 하고 첫 애 소식을 어떻게 전하든.

[엔터미디어=이승한의 TV키워드사전] “소통을 잊은 ‘일방향성’ 행보”, “‘사생활 보호’와 팬들의 관심에 응답하는 ‘소통’을 분간하지 못하는 자세”, “기본적 정보를 묻는 질문을 ‘눈 가리고 아웅’라는 거짓말로 넘긴 후, 부인할 수 없는 사진 등 증거가 공개된 후에는 사과를 하지 않는 방식의 연속”. 누가 보면 대단한 범죄라도 벌어진 줄 알겠지만 이 거창한 서술이 지칭하는 상대의 정체를 알고 나면 김이 샌다.

이 호들갑스러운 표현들은 죄다 원빈과 이나영의 득남 소식을 접한 한 매체의 기자가 쓴 칼럼 “[이슈is] 비공개 투성이 원빈·이나영, 연예인 생활 로그아웃 하라”에 등장한 문구들이다. 결혼식도 대중의 시선을 피해 비공개로 진행하고, 속도위반이 아니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했다가 결혼 7개월 만에 소속사를 통해 출산 소식을 전하는 등 가십 매체의 취재를 철저히 따돌리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한 것에 대해 지면을 빌어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 것이다.

클릭수와 조회수가 제법 나왔을 법한 기사 거리를 놓친 것에 대한 분노는 이해하는 바이나, 이게 ‘거짓말’이니 ‘눈 가리고 아웅’ 등의 표현을 써가며 공공연하게 부부를 비난할 만한 일인가에 대해선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임신 초기에 임신인 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허다하거니와(괜히 드라마 속 단골대사가 “축하합니다. 3개월입니다”이겠는가.) 설령 기자의 추측처럼 부부가 결혼 당시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들 여전히 비난할 이유는 없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대중에게 자신들의 정확한 임신 시기와 출산 예정 시기를 굳이 알려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아무리 연예인이 “대중에 자신들의 이미지를 소비하며 살아가는” 직업이라 해도, 제 가장 내밀한 사생활까지 대중에게 일일이 보고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들도 연예인이기 이전에 자연인일진대, 생애 가장 중요하고 사적인 결정들을 온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누리겠다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모든 정보가 ‘비공개’라면 왜 SNS를 하며 왜 연예인을 할까.” 기사의 도입부에 달린 사뭇 진지한 훈계엔 실소가 터지는데, 일단 두 사람 모두 딱히 SNS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은 둘째 치고라도 “모든 정보가 ‘비공개’”라는 표현에서 기자가 ‘정보’라고 생각하는 범주가 무엇인지 너무 노골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원빈과 이나영이 결혼 사실을 숨겼나, 아니면 출산을 하고도 자식의 존재를 숨겼나. 신작을 찍어 놓고는 그 정보를 알리지 않은 채 음성적인 경로로 유통을 시키길 했나. 그러니까 이 기자에겐 “언제 어떻게 결혼식을 할 거고 임신은 언제 했으며 산후조리는 어떻게 할 거니 기자 여러분께선 스케줄을 참조하시고 취재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알려줘야 비로소 ‘정보’라고 인정받을 수 있기라도 한 건가. 기자가 직계 가족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부부가 사생활을 꽁꽁 감춘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비공개로 한 결혼식인데 초대한 적 없는 언론사가 잠복을 해서 결혼식 사진을 찍어다가 대서특필을 하고, 한 여성지는 부부가 아이를 언제 낳았는지 정보를 캐려고 며칠씩 정선 집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망원렌즈로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찍고 집으로 들어오는 식자재를 분석하더니 두유가 산모에게 좋네 연근이 산후조리에 좋네를 운운하며 ‘007 작전을 방불케 한다’고 말한다. 왜 평범한 산후조리 과정이 007 작전을 방불케 하게 된 건지 잘 생각해보라. 초대한 적 없는 이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내 은밀한 사생활에 망원렌즈를 겨냥하고 있으면, 자연스레 만사가 조심스러워 지지 않겠나?



“왜 연예인을 할까.” 뭐 이런 무의미한 질문이 다 있나. 배우는 연기를 하려고 연예인을 하고, 가수는 노래를 하려고 연예인을 하고, 코미디언은 사람을 웃기려고 연예인을 한다. 워낙 과작 중인 원빈이야 그렇다 쳐도, 이나영은 올 3월 월간지 ‘W Korea’ 창간 10주년 기념 단편 영화 연작 <여자, 남자>에 출연해 신작을 선보인바 있다. “왜 연예인을 할까”를 묻고자 하거든 그들의 연기력이나 배우 활동에 대해 고찰을 해야 할 일이다. 고작 사생활 공개 여부로 직업 정신을 논하다니.

케이트 블란쳇은 사생활을 한 톨도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왜 배우가 됐느냐”고 묻지 않는다. 보컬리스트이자 프로듀서인 시아는 2011년 이후 제 단발머리와 뒷모습만 공개할 뿐 얼굴을 보여주는 건 단호하게 거부하는 탓에 종종 ‘작작 하라’는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왜 가수를 하느냐”고 묻는 저널리스트는 없다. ‘연예인’이란 직업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만큼 사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직군 단위로 고수하는 이들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남의 공생활을 보도하는 게 아니라 사생활에 기생하는 가십매체 종사자다.

아무도 기자가 자기 사생활을 어떤 식으로 관리하는지를 놓고 기자의 직업정신을 논하지 않는다. 나도 해당 매체의 기자가 사적인 영역에서 무엇을 하는지 관심도 없거니와 평가할 생각도 없다. 배우는 연기로 말하고 글쟁이는 글로 말하며 기자는 보도로 말해야 한단 원칙대로 셈하자. 남이사 애를 언제 낳고 그걸 언제 알리든 말든.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이든나인, 영화 <여자, 남자: 슬픈 씬>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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