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병헌에게 2015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배우 이병헌에게 2015년 한 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2015년 이병헌은 빅 히트작을 하나 얻었고 그에 맞먹는 유행어를 하나 터뜨렸다. 2014년부터 50억 소송 스캔들로 얼룩진 그의 사생활은 2015년 초 이병헌의 카톡 문자 공개로 화제가 됐다. 상대방 측에서 공개한 이병헌의 문자 ‘로맨틱, 성공적’은 곧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일파만파 퍼졌다. 나이트클럽 웨이터가 뿌리는 명함에도 ‘로맨틱, 성공적’이란 문구가 등장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아마 예원의 “언니, 저 맘에 안 들죠?”와 박근혜 대통령의 “혼이 비정상”과 함께 올해 가장 핫한 유행어가 아니었나 싶다. 이렇게 의도치 않은 곳에서 빵빵 유행어가 터지니 <개그콘서트>에서 개그맨들이 치는 유행어들이 시시하게 여겨질 수밖에.

하여튼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 <그해 여름> 등으로 로맨틱 미남의 정수를 보여준 이병헌은 그가 지닌 로맨틱한 매력에 스스로 재를 뿌린 셈이다. 더불어 여자 아닌 도넛과의 문제 때문에 불거진 던킨 스캔들 이후 이병헌은 해외에서는 한류스타일지는 몰라도 국내에서는 다시 한 번 국민 놀림감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2015년이 지나가는 지금 이병헌은 다시금 흥행배우의 자리에 올라 있다.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700만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 <내부자들>의 성공 덕이다. <광해> 이후 또 하나의 호쾌한 흥행작인 셈이다. 흥행과 작품성 모두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으니 말이다. <광해>에서 그의 바보 광해와 진지 광해 1인2역의 연기가 돋보인 것처럼 <내부자들>에서도 이병헌의 걸쭉한 양아치 연기는 남다르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한쪽 팔을 잃고 복수를 꿈꾸는 안상구(이병헌)에 빠져들 뿐 올해의 로맨틱한 배우 이병헌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그게 배우 이병헌이 살아남은 방식이기도하다.

아마 배용준이 KBS <겨울연가>의 욘사마로 이병헌이 SBS <아름다운 날들>의 뵨사마로 각각 일본에서 사랑을 받은 이후의 행보를 보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배용준은 스스로를 ‘욘사마화’하며 일본에서 그의 신도들을 불려갔다. 하지만 <아름다운 날들>로 멋진 ‘실땅님’의 모든 것을 보여준 뵨사마는 계속해서 그 이미지로 남아 있진 않았다. 지금의 이병헌에서 ‘실땅님’ 시절은 멀고도 멀다.



한국 영화계에서 이병헌의 존재감은 거기에 있다. 이 배우는 스크린 밖과 안이 다르다. 혹은 배우와 스타로서의 이미지가 다르다. 최민식, 송강호, 황정민, 류승룡 등등 많은 남자배우들은 그들의 연기와 스타의 이미지가 중첩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영화가 달라져도 분명 그런 교집합의 부분들이 슬며시 배어나온다. 광기어린 인간, 소박한 인간미, 지친 일상인, 광고에 좀 그만 나왔으면 등등.

하지만 이병헌은 그게 없다. 영화 속 이야기 안에서 이 남자는 영화 속 캐릭터로만 움직인다. 그것도 그 인물의 감정 하나하나를 동물적으로 각각 다르게 살려내는 재주가 있다. 그런 까닭에 <공동경비구역 JSA>와 <번지 점프를 하다>와 <악마를 보았다>와 <광해>, 그리고 <내부자들>에서의 이병헌은 각각 다르다. 아니 배우 이병헌이 사라지는 대신에 영화 속 캐릭터가 전면에 드러난다. 그 캐릭터들이 공유하는 건 이병헌 특유의 깊은 눈빛과 느릿하고 무거운 분위기 있는 목소리가 전부다.

물론 이병헌이 영화에서 변신이 능한 이유는 깎아놓은 미남이나 모델 같은 길쭉한 체형과는 다소 거리가 먼 외모 덕도 있다. 이병헌의 얼굴은 울퉁불퉁한 기암괴석 같은 미남에 가깝다. 그 덕에 카메라의 각도 따라 그 얼굴에 꽤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을 수 있다. 또한 인간적인 비율의 체형으로 풀샷으로 잡았을 때 무언가 꾀죄죄한 느낌을 만들어내기 쉽다. 영화 <내부자들>은 사실 이병헌을 가장 투박하고 멋없게 잡아내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인 작품이다. <달콤한 인생>이 이병헌의 가장 분위기 있는 모습을 추출해 낸 영화인 것과 정 반대로 말이다.



하여튼 영화 <내부자들>의 성공으로 배우 이병헌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스타 이병헌도 성공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KBS 드라마 <내일은 사랑>으로 데뷔했던 건강하고 풋풋한 청년의 미소를 대중들이 이제 기억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여전히 이병헌의 영화를 좋아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이병헌을 “혼이 비정상”인 산타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영화 <내부자들>에서 안상구의 모텔 장면은 묘하게 지금 스타 이병헌을 바라보는 대중의 심리와 겹쳐진다. 모텔 안에는 양아치 안상구(이병헌)와 검사 우장훈(조승우)이 한 방에 있다. 그리고 검사 우장훈은 우윳빛 유리벽 너머 욕실에 앉아 있는 안상구를 찌푸린 얼굴로 바라본다. 그때 안상구 혹은 이병헌은 바지를 깐 채 변기에 앉아 있다. 그의 흉한 자세는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무얼 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 지금 스타 이병헌은 스크린이란 우윳빛 환상 안에 겨우 숨겨져 있다. 대중은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를 사랑한다. 하지만 스타의 ‘응가’ 자세까지 사랑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영화 <내부자들><광해>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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