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의 시동을 건 공중파 예능, 본격적인 질주 시작되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연말 시상식 시즌이다. 그러나 솔직해지자. 한 해를 정리하면서 그간의 공로와 자축의 박수를 보내는 방송 3사의 연예대상 시상식은 방송사의 행사일 뿐 더 이상 대중의 관심사가 아니다. 물론, 트로피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지난 10년간 급성장한 예능의 위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연예대상의 권위를 낮춰버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MBC 예능 <무한도전>에서 시작된 예능의 장르적 확장은 문화를 가장 잘 안다는 기업 CJ와 종편(중에서 JTBC)이 가세하면서 시상식의 결과가 예능의 경향과 성과를 정리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쇼의 형태를 벗어나면서 더 이상 몇몇 특급 MC 섭외에 의존하던 스타 마케팅이 통하지 않게 됐다. 즉, 잔칫집이 아닌 데 잔치를 벌이는 모양새에 연말 분위기 조성도 안 되고 긴장감, 궁금증이 일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방송 3사의 연예대상 전망이나 리뷰 대신 간단한 연말 결산을 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연예대상 시상식을 진행한 KBS는 의욕적인 한 해를 보내긴 했다. 예능국이 전담하던 제작 시스템에서 벗어나 콘텐츠 창의센터, 협력 제작국을 신설해 새로운 예능에 도전할 창구를 확장했다. 그 결과는 방송 3사 중 가장 많은 십여 개의 파일럿을 쏟아내는 것으로 이어졌다. 예능국에서는 <용감한 가족> <나를 돌아봐> <청춘FC>를, 콘텐츠 창의센터에선 <작정하고 본방사수> <레이디액션>, 협력 제작국은 <나비효과> 등을 선보였다. 그러나 낮은 완성도와 시대 흐름에 맞는 정서를 함유하지 못하면서 대부분 사라지고 화려한 캐스팅의 <나를 돌아봐>와 <청춘FC>만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두 프로그램도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다. 스포츠 만화나 다큐에 더 가까운 <청춘FC>는 애초에 장기 아이템이 아닌 데다, 비예능인들이 등장해 ‘축구’를 하다 보니 대중성에서 한계가 있었다. <나를 돌아봐>는 화려한 캐스팅을 감당하지 못하고 기획의도에 맞게 출연자를 통제하지 못하면서 무너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진짜 고민거리가 따로 있다는 데 있다. KBS 예능의 간판 프로그램들은 하나 같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 이휘재가 대상을 받긴 했지만 육아예능은 이제 화려한 시절을 뒤로 하는 중이고, 온 가족 콘텐츠의 대명사였던 <개그콘서트>는 시청률 두 자릿수가 무너지며 브랜드 가치가 곤두박질치는 중이다. <해피투게더>는 유재석와 박명수 투톱을 쓰고 있지만 계속해 가라앉고 있다. <1박2일>은 시청률은 훌륭하지만 초기 리얼버라이어티의 구성에서 못 벗어나고 있어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라 내세우기 민망하다. 다시 말해 젊은 시청자들이 KBS를 떠나는 것을 막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지만 아직까진 희망의 가능성을 보지 못했다고 정리할 수 있다.
SBS는 KBS와 같은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으나 다소 보수적으로 접근했다. 파일럿 제작 편수도 비교적 적었고, 그나마 파일럿으로 각광을 <아빠를 부탁해>는 정규편성 됐지만 관찰형 예능의 핵심인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생기자 바로 막을 내렸다. SBS 예능국의 올 한 해 전략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례는 간판 프로그램인 <스타킹>과 <힐링캠프>의 리뉴얼이다. 트렌드에서 한참 벗어났고, 시청률마저 처참하게 떨어진 두 프로그램을 버리는 대신 어떻게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쪽을 선택했다.
‘버라이어티쇼’의 전형인 <스타킹>은 잠시 휴지기를 갖고 파일럿 형식으로 재단장한 다음 평일 시간대로 옮겼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달라진 것은 편성표 상 전투가 유리한 방영 시간밖에 없다. <힐링캠프>는 주인인 이경규와 성유리 대신 김제동만 남기고 그의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다시 서장훈과 광희를 영입해 3MC체제로 다시 돌아갔다. 달라진 것은 이리저리 뜯어고치는 중 남게 된 공개 토크 방식과 MC의 명함이다.
<스타킹>이 중장년층에 힘입어 <무한도전>과 비등한 적도 있으나 그 때는 MBN이나 TV조선이 없던 시절이다. 예능 시청자 입장에서 <힐링캠프>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당시와 오늘날은 예능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마치 밀레니엄팔콘호를 타고 광속 비행을 한 이후처럼 너무나도 멀리 와 있다. 더 이상 토크쇼에서 연예인의 진실한 내면을 기대하는 시청자는 극히 드물다. <런닝맨>은 더 이상 내수 프로그램이 아닌 관계로 우리 시청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평가는 생략하겠다.
MBC는 올해 방송 3사 중 연예대상의 향배가 유일하게 궁금한 방송사다. 2년 전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예능 패러다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던 MBC는 올해도 예능이란 큰 틀에서 트렌드를 이끌었다. 뿐만 아니라 <무한도전>이 여전히 최고 예능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라디오스타>는 수많은 신흥 경쟁자의 등장에도 수요일의 왕좌를 사수했다.
<불후의 명곡><히든싱어><너의 목소리가 보여>와 <쇼미더머니> 등 이제는 더 나올 것이 없어 보였던 가창 서바이벌 예능 시장에 <복면가왕>은 ‘재능’과 ‘추리’ 이외에 ‘편견과 선입견의 봉인’이란 새로운 요소로 감동을 주며 가왕으로 떠올랐다. 가장 마이너한 방송 형태인 인터넷 1인 방송과 TV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실시간 소통 방송을 공중파에서 구현한 <마리텔>은 혁명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새로운 세대가 만든 새로운 버전의 예능이었다.
‘2015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과 방송영상산업발전유공 예능부문 ‘국무총리 표창’에 빛나는 <마리텔>은 <능력자>를 비롯해 새로운 예능 대세로 떠오르는 콘텐츠 예능(소재주의 예능)의 전성시대를 활짝 열었다. 공중파임에도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세대의 정서와 화법을 방송에 그대로 접목한 구체적인 타겟팅부터 당연히 그래야 할 것 같았던 예능인에 의존하는 캐스팅을 버리는 전략, 시청자를 방송의 주체로 참여시키는 방법론까지 기존 공중파 예능이 감히 도전하지 못했던 여러 불문율을 동시에 넘어섰다. 그 결과 쿡방으로 대표되는 콘텐츠 예능 시대를 열고 시청자와 프로그램의 소통 거리를 획기적으로 좁혔다.
또한 예능인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시청자들과 나눌 수 있는 콘텐츠를 가진 인물들이 대거 예능 판 안으로 진입하는 창구가 됐다. 고정 출연 제도 대신 로테이션을 가동하면서 시청자 입장에선 일상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면서도 신선한 인물들을 만날 기회가 늘어났다. 이런 유연한 캐스팅은(노동법이 참고하면 안 되겠지만) 시즌제의 도입이 (회사 사정상) 어려운 공중파 예능의 새로운 출구전략이기도 했다. 사정상 준비기간이 많이 필요하고, 캐릭터의 소모가 빠른 요즘 예능 환경에 신선함을 유지하고 콘텐츠 예능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내년엔 또 어떤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고, 올해의 쿡방과 스타셰프처럼 어떤 흐름과 인물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공중파의 반격이 보다 본격화될 것이란 것은 분명해 보인다. JTBC의 2차 공습이 시작되고, CJ가 점점 영토를 넓혀가고 있을 때, 2015년이 시동을 거는 해였다면 2016년은 공중파 채널이 본격적인 질주를 시작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즌제의 도입이나 짧은 호흡의 편성 등 시스템 차원의 정비 등 여러 가지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2015년 MBC가 올린 성과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어차피 아무도 머무를 생각은 없을 것이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혼돈의 예능 전선에서 움츠리며 아류 전략을 쓴다면 썩은 동아줄을 잡게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을 이제 모두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채널A도 예능을 보강하는 시대다. 내년에는 공중파 방송 3사가 대마불사의 반등을 이룩할지, 어떤 선택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올 해보다 더 큰 기대와 응원을 보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KBS, 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